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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파도가 모래밭으로 밀어다 준 이 이야기를 모닥불로 말려, 문장 하나하나를 떼어 내었다. 이야기 속 단어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 넣었다. 나를 미소 짓게 한 어떤 이야기.
---p.3 사람의 마음처럼 바다도 비밀로 가득 차 있어. 사람은 가슴이 넘실거릴 때면, 펜을 들고 빈 종이를 바다삼아 자기를 짓누르는 무언가를 던져버리지. 우리는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 ---p.5 고래의 미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유머라고는 없는 이야. ---p.34 한 통의 편지에게, 떠남이란 아무것도 아니야. 한 사람에게, 떠남이란 모든 것이지만. ---p.40 엄마 뱃속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 뱃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생명의 소리지. 엄마는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아기에게 말을 걸어. 수많은 약속을 하지. 따뜻한 우유를 줄게. 많이많이 껴안아줄게. 품 안에 꼭 안고 자장가를 불러줄게. 아기는 엄마의 약속을 믿어. 아기들은 그래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자그마한 심장은 멈춰 버릴 테고. 되는대로 흘러가 버리겠지. ---p.58 난 사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나오는 게 더 좋아. 고래 사냥꾼들 때문에… 이해하지? 태양이 떠올라 사냥꾼들에게 들켜버리기 전에, 고래는… 서둘러 잠수를 했지. 희망의 시로 가득 찬 검은 하늘을 향해 숨을 내뿜으면서 말이야. ---p.62 나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던 너… 언젠가, 모래사장을 산책하다… 파도에 밀려온 책을 한 권 발견하게 된다면… 꼭 챙겨다 주기를 바라, 부탁이야. ---p.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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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만이 닿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
바로 여기, 이야기가 있고 예술이 있고 삶이 있다 그래픽노블 『고래 도서관』은 소설과 그래픽이 결합한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아주아주 깊은 바다에 커다란 고래가 있고, 고래 배 속에는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도서관이 있고, 바다우체부가 고래를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빌려온다니, 이런 이야기를 어떤 장르가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고래가 빌려준 책에는 해적을 사랑하는 인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육지의 이야기와 달리 인어는 두 다리를 얻어 사람이 되는 대신 해적처럼 검은색 안대를 하고, 애꾸눈 해적 ‘붉은 수염’은 천둥 같은 인어의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고래는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고래는 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늘을 나는 기계와 화산, 태양에 대해 고래가 쏟아놓는 질문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고 우체부로서는 한번도 떠올린 적 없는 궁금증이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질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알고 보면,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다. 『고래 도서관』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을 닮았고, 문장은 시처럼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고,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신비로운 그림이 글자와 글자 사이의 여백을 파도처럼 드나들며 철썩인다. 그래픽노블이 아니라면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여기 있다. 작고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생명들로 가득한 바닷속, 고래 배 속에서 나온 우체부가 맞는 희부연한 아침, 고래가 마침내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고래의 심장, 고래 도서관에서 쏟아져나온 책들이 당도한 바닷가에서 이야기에 몰입한 사람들의 어깨 위로 내리는 별빛들. 우체부가 가져다준 낙엽에서 사랑과 죽음과 슬픔을 읽어낼 줄 알던 고래는 낙엽을 수집하고 싶어 했지만 무방비하게 우체부를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통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우체부는 고래사냥꾼 대신 죄책감과 슬픔을 느낀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을 망치는 인간과 잘못을 통감하는 인간은 일치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슬픈 이야기를 싫어하는 고래를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고 파도에 밀려온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소금 맛이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고래 도서관』에는 도서관답게 온갖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있고 갖가지 이야기를 넘나든다. 고래와 우체부가 검은 밤바다에서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그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여정”이 된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체부가 고래에게서 빌려온 책을 만삭의 아내에게 읽어주고, 이야기 속에서 인어는 해적에게 입을 맞춘다. 도서관을 지닌 고래와 만삭의 아내는 똑같이 이야기를 품은 존재들이고, 인어공주와 푸른수염의 이야기는 바다로 가서 해피엔딩이 되었다. 이야기는 만나고 부딪히고 섞이고 다시 흩어지면서 구석구석 세계를 담아낸다. 그러니 끊임없이 파도가 치고 들썩이는 바다는 이야기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 사랑을 확인하고 죽음을 이해하고 슬픔을 달랜다. 이야기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래 도서관』은 시와 이야기와 픽션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그래픽노블의 존재 의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도 물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