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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온도
엄마를 직접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지혜 지속가능한 가족돌봄의 회복탄력성
이은주
헤르츠나인 2023.07.01.
베스트
감성/가족 에세이 top20 2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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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사랑이 가까이 있다
천국은 지금 다 함께
서로 돌보는 아이와 할머니
구두수선집에서 만난 소중한 것들
엄마의 전자담배
아서 클라인먼 되기
엄마 여생 설명서
나 좀 안아줄래?
엄마의 장기요양보험 신청
예쁜 치매는 없어요
엄마의 나박김치 키트

엄마,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라는 우울에 대하여
애도는 엄마 살아계실 때부터 시작된다
명절에는 다 그래 엄마
엄마의 말을 모아서
엄마는 나의 직업을 사랑했다
간장의 맛
엄마의 틀니
엄마여서 그런 말은 어렵다
엄마 살기로 결심하다
딸의 마음은 밤의 네온처럼

폼나는 맥가이버식 돌봄 나눔의 현장
마지막 잎새의 심정
힘낼 때까지 힘내서 수저를 들고
무감각 슬픔은 자가돌봄 신호였다
10년 동안 빌려 쓴 그녀의 휴지
나머지 50년을 선하게, 동원 씨의 빅픽처
네 번의 알았어와 돌봄의 기술
나는 엄마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신들의 교실에 들어서다
치유의 문학, 문학의 치유
돌봄 받는 능력
사랑을 주세요

그 옷 나 줘
돌봄 민주화와 회복탄력성
당신 탓이 아닙니다
엄마에게 그렇게 해드릴 수 있잖아요
돌봄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서툰 돌봄이라도 이들처럼 사랑한다면
스텔라 님의 경험 속 발탈의 깨달음
부모돌봄이 긍지가 되는 사회
건조한 기록 속에 담긴 눈물의 흔적
나도 저런 사랑 한번 하고 싶다

엄마의 상태변화 기록지
나를 잘 돌봐야지
왜 같이 안 사세요?
왜 같이 안 사세요에 답하기 위해
돌봄의 매뉴얼화와 ‘돌봄의친구’ 제도
삶을, 시간을, 붙잡는 마음
영 케어러를 위한 제언
죽은 자리엔 새 삶이 돋고
돌봄의 경쟁력 북돋우기
미안한 돌봄
이런 돌봄 동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과의 인터뷰

저자 소개 1

에세이스트, 일본문학번역가, 요양보호사. 번역가가 되기 위해 20대부터 꿈을 키웠으며,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를 번역하면서 꿈을 이루었고, 이후로도 문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4년 동안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번역한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열린책들’에서 나왔을 때는 일본대학 입학 때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기분이 들었다. 이후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죽을힘을 다해 투잡, 쓰리잡을 했지만, 문학에 대한 갈망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3권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근무 틈틈
에세이스트, 일본문학번역가, 요양보호사. 번역가가 되기 위해 20대부터 꿈을 키웠으며,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를 번역하면서 꿈을 이루었고, 이후로도 문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4년 동안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번역한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열린책들’에서 나왔을 때는 일본대학 입학 때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기분이 들었다. 이후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죽을힘을 다해 투잡, 쓰리잡을 했지만, 문학에 대한 갈망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배를 타라』 3권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근무 틈틈이 번역하면서 ‘꼭 등단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조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후 할머니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돌봄과 나눔에 대해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이 문학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최근 인지증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재가 요양보호를 통해 돌보며 번역, 집필 활동과 각종 방송 출연,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번역가에서 에세이스트로의 변화를 꿈꾸며 네 편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한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주의산만증ADHD인 조카손자 정명이와 세상의 모든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 20대 유학시절에 만난 인연과 문학을 향한 분투를 담은 『동경인연』을 출간했으며,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직접 재가 요양보호를 담당한 이야기를『돌봄의 온도』(헤르츠나인, 2023)로 정리했다. 옮긴 책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좋은책만들기),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작가정신), 『나는 드럭스토어에 탐닉한다』(갤리온),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열린책들), 『배를 타라』(북폴리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고릴라에게서 배웠다』(마르코폴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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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28*188*20mm
ISBN13
9791186963548

책 속으로

나는 잘 듣고 있다가 A/S 기간도 지나버린 세탁기를 고정해 줄 분을 섭외하기 시작한다. 엄마와 나의 대화가 ‘세탁기가 흔들려서 고치고 싶다’는 말로 마지막이 된다면 어쩌지, 조바심을 내면서. 지난주에 엄마는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쁜 날 나에게 조간신문을 던졌다. 늘 엄마와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잎새’의 심정으로 사는 나에겐 납득할 수 없는 마지막이었다. 아무래도 이날 돌아가시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와 나의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는 끝날 수 없었다. 나는 찰리 채플린처럼 시계 안에 갇혀 시간을 돌리고 돌려서 엄마와 나의 좋았던 관계로 되돌리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을 생각한다. 혼자 생활할 수 없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지 하고 생각이 미치는 건 똑같을 것이다. ‘마지막 잎새’와 같은 신호를 놓칠까 봐 나는 두렵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 나의 인류애는 엄마의 돌봄에서부터 시작한다.

-
이 시기가 지나면 그리워지겠지. 몹시 그리워질 거야. 후회가 될까? 그러다가도 멀쩡히 일어나 앉아 방금 한 말을 부정하려는 듯 국그릇을 비우는 낯선 엄마 곁 딸의 마음은 밤의 네온 간판처럼 꺼졌다 켜졌다. 화났다 서글퍼졌다 미안해졌다 그리워졌다 한다. 나는 이제 낯선 여성과 사귀어야 한다.

-
엄마보다 빨리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고 죽음만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자가돌봄 신호’라고 매뉴얼화했다. 이 자가돌봄 신호라는 것은 타인을 돌보기 전에 자신을 돌보라는 신호이다. 돌보는 사람이 아닌 자격으로 세상과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나는 앞치마를 풀고 엄마의 식탁과 부엌에서 멀어진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친구들을 만난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본다. 식료품 코너에서 처음 보는 허브를 사서 샐러드를 만든다. 송로버섯이 든 치즈를 잘게 조각내어 음미하며 먹는다.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는다. 긴 잠도 청한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자둔다. 한 12시간쯤. 나는 회복한다.

-
오늘 난 억지에 가까운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의 튼 손을 끌어다가 얼마 전에 사드린 영양크림을 듬뿍 발라 드렸다.
“얘가 왜 이래. 난 십 분마다 화장실에 간단 말이야. 로션을 발라도 소용이 없어. 난 끈적거리는 건 싫어한다니까.”
영양크림에서는 실바람에 날아오는 여인의 향기가 났다. 잠시 노인의 방 공기에 생명이 깃들었다. 끈적이지 않는다는 걸 당신이 제일 잘 알면서…. 영양크림이 줄어드는 게 그저 아까운 게 아닐까? 뜨거운 내 손이 차가운 그녀의 손과 마음을 녹일 수는 없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얇은 피부 아래 감추어 둔 엄마의 말을 읽으려고 마사지를 계속했다.

-
“나 좀 안아줄래? 추워.”
엄마가 아기처럼 몸을 말고 부탁한다. 돌봄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백신 후유증으로 근육통을 앓고 있던 내가 타이레놀 두 알을 꿀꺽 삼키고, 엄마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가 눕는다. 엄마의 등 뒤로 가서 누구보다 긴 팔로 엄마의 어깨를 감싼다. 누구보다 긴 왼쪽 다리는 엄마의 골반을 감싼다. 태아처럼. 몇 달 사이 배만 올챙이 배처럼 볼록하고 팔다리 근육이 다 빠져버린 엄마. 누워서 엄마는 말한다.
“오래 앓지 말고 가야 할 텐데….”

-
문밖에 둔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채우며 중얼거린다. 미워하면서, 엄마의 우울을 혐오하면서 마치 가족이라는 군대에 입대한 것처럼 탈영도 못 하고 인생 끝나는 날까지 가족을 위해 쓰이다 죽어질 몸이다. 엄마, 그 병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내가 손을 잡고 그 벽을 넘게 해드리지 못해 미안해.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 그냥 지켜보면 나을 줄 알았고 병원에 가자고 하면 화부터 내니까 내가 대신 그 약을 십여 년간 먹었다는 걸 알아줘. 내가 그 약을 먹고 엄마의 점심을 차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만 기억해줘. 노인은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고 문턱을 넘으려는 나에게 미안한 듯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한다.
“고마워.”

-
“천국에는 동물병원 할아버지도 있고 엘리스도 있다고 했지요?”
“응.”
“할머니도 죽으면….”
“어른은 돌아가시는 거라고 하는 거야.”
“그럼 할머니도 돌아가시면 천국에 가지요?”
“그럼.”
“그럼 우리 지금 다 같이 천국에 가는 게 어떨까요?”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을 채웠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우정이나 사랑, 연민이 아이의 등에서 흔들리는 책가방 속 필통과 함께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다정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
“고모?”
“응?”
“고모도 할머니가 되면 요양원에 가는 거예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한다.
“그래.”
“아휴, 그럼 전 돌볼 사람이 많네요. 할머니도 돌봐야 하고, 고모도 돌봐야 하고.”
천장에 쏘아 올린 달과 별을 보며 마침내 내가 말한다.
“그러네. 정명이는 돌볼 사람이 많네.”
아이는 감정이 충만한 한숨을 폭 내쉬며 애착 담요에 코를 박는다.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돌볼 사람이 많은 사람의 표정이 어찌 저리 평화롭고 달콤할 수가 있을까. 사랑이 가까이 있다.

-
다 드신 후 끄윽 한다. 소화가 되는 소리에 안심. 벌써 세 번째 보는 〈겨울 연가〉 앞에서 엄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저런 사랑 한번 하고 싶다.” 나는 부엌에서 TV를 향한 채 앉아 있는 엄마를 본다. 엄마, 죽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사랑, 오직 하나뿐인 사랑, 그런 사랑이 받고 싶구나. 엄마의 현관문을 닫고 나오면서 외로움에 빠졌다. 나도 언젠가는 엄마처럼 하루 종일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 TV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하겠지. 거품처럼 꺼져버린 시간 속에서 지난날 미루어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누렇게 빛이 바래도록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인생 황혼을 맞이하겠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소원할까.

-
“명절에는 다 그래 엄마. 평소에 안 먹던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그래. 2층 할머니도 쌌고, 8층 할머니도 쌌는걸.”
“어머, 8층 할머니는 왜?”
“나이 들면 근육이 풀어져서 다 그래.”
“그러니? 이제 됐다. 마무리는 내가 할게.”
엄마가 마무리를 하는 동안 나는 망원시장으로 가서 바지를 샀고, 속옷 가게에서는 다리에 고무줄이 되어 있는 사각 면 팬티 두 장을 샀다. 장갑을 끼고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을 나서는데 사나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
방에서 엄마는 독백처럼 이렇게 말했다.
“어디 힘낼 때까지 힘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
나는 안도한다. 그러면서 미소 짓는다. 어쩐지 익숙한 내용이다. 엄마 집 화장실 문에는 ‘전남대 박상철 교수’의 칼럼 복사본이 따스한 비데에 앉아 볼일을 보면 싫어도 매번 읽게 되는 위치에 붙어 있다. ‘노화는 죽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라는 내용이 알기 쉽게 잘 정리된 칼럼이다. 이 글은 책방 ‘지하비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것을 한 장 얻어와 붙여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떠날 수 있고 두려움 없이 떠나려면 미련이 남지 않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칼럼 내용을 마음으로 잘 곰삭혔다 무심결에 내뱉은 엄마의 말에 기운이 난다. 이렇게 또 한고비를 엄마는 넘긴 것이다.

-
엄마의 맹꽁이 같은 배에 가는 다리를 보니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근육이 다 빠져버린 살가죽만 남은 부모의 몸과 만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엄마는 목욕의자에 앉아 자신의 몸에 알맞은 온도가 될 때까지 물을 조절하고 있다.
“엄마, 샴푸는 두 번 할 거야.”
엄마가 안방에 앉아 있는 동안 드라이기를 가져와 젖은 머리를 말린다. 개운해진 엄마는 이제 잠을 청하려는 듯 천천히 침대 위에 가 앉는다. 나는 안방 문을 닫아드리고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목욕 후에 물 한 잔을 따라드릴걸. 돌봄은 매 순간 미안한 돌봄이고 미완의 돌봄이 된다. 그래서 내일이 또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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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이던 성격은 의심하는 성격으로 심화과정을 겪고 있어서 둘만 있으면 괴롭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엄마의, 엄마가 아닌 모호한 실체와 마주 보며 나는 혼란스러워 설거지를 한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오르락내리락한다. 정서적인 지지를 해 주려면 엄마와 마주 앉아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긍정의 언어로 그 볼펜 삼십만 원이나 하니까 다음 달 월급 타면 사드리겠다고 완곡어법을 쓸 걸 그랬다. 거기서 귀 안 들리니까 소용없다는 소릴 해서 매를 번 것이다. 엄마가 아닌 다른 뮤즈에게는 정말 다정하게 대하면서 엄마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했으니 공정하지 못한 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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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마지막으로 원망과 분노로 이별의 아쉬움 따위 헤진 담요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가려나 보다. 치매교육을 아무리 받으면 뭐 하나. 평생 내 앞에서 다양한 요구와 기대로 부풀 대로 부풀었던 소녀 엄마에게 나는 더는 드릴 게 없다.

-
형편에 맞아서 하는 돌봄이란 없다. 돌봐야 하기 때문에 돌보는 것이다. 돌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절하고, 생활비에서 돌봄에 드는 예산을 세워 지출하는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심리적인 부담을 가족 안에서 골고루 나누어 가진다면 미혼인 자식이나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에게만 치우치는 돌봄이 조금은 공평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
엄마의 믿음이 언젠가부터 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미안함은 속상하고 애틋하여 이상하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 인생에 화를 내고 있었고, 나는 내 인생에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각자의 마음이 아프고 아파서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
그녀를 처음 만났던 4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편안해 보였다. 체념이라고 할까, 돌봄 성숙기에 들었다고 할까.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기본만 해도 좋은 것. 서툰 돌봄이 차라리 좋은 돌봄이라는 것. 나머지는 엄마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과 가족의 몫도 남겨두는 돌봄을 찾은 것 같다.

-
건강하실 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두는 게 살면서 너희 모두에게 회복탄력성을 줄 거야. 왜냐하면 고모는 너희들을 돌보는 십여 년간 자신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회복탄력성을 갖게 되었거든. 이건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 내게 어떻게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나도 참 신기해. 핵심은 돌봄인 거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도움을 줄 수 있고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 사랑이 그렇게 힘을 주는 것 같아. 가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향후 사회생활을 할 때 안전망이 되어 너희들을 지켜줄 거야.

-
「케어」에서 아서 클라인먼은 타인의 아픔을 돌보는 일은 곧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고 했다. 나도 뮤즈와 제우스, 엄마와 조카들, 손자와 이웃을 돌보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용기’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이 찾아와도, 모든 비용을 돌봄에 써버리고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불안으로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나날들이 모여 삶의 의지를 만들었고, 돌봄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를 얻었다. 돌보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다고 낙담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진 것을 다 잃은 기분이 들고 정신까지 탈탈 털리기 전에 몸의 신호, 마음의 신호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을까? 돌봄 시스템과 돌봄 네트워크가 잘 연결되어 독박 돌봄, 가족 내 돌봄으로 더 이상 헌신과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고 살 권리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얻은 것만으로도 나의 돌봄은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 돌봄이란 돌봄 이후의 시간, 돌봄 이외의 시간도 대상자를 돌보는 마음씀씀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자식을 키운 세대와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교육받은 세대와 오직 자신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대의 조합이 오늘날 총천연색 돌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엄마는 ‘요양원’에는 절대로 안 가겠다는 세대다. 자신의 전부를 걸었으니 그 요구가 타당하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으나 무소속이나 다름없기에 늙어서도 스스로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 자식에 대한 돌봄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서 서너 가지 대비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엄마의 엄마가 되기 위해
더욱 소중한 내가 되어야 한다


『돌봄의 온도』는 노화와 치매로 점점 소녀가 되어 가는 엄마를 가족요양보호로 ‘케어’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 이은주가, 엄마와의 애틋한 동행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실패하지 않는 가족돌봄의 비결과 지속가능한 가족돌봄을 위한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전하는, 가족돌봄의 마음과 재가요양보호의 실천을 담은 에세이다.

치매와 질병으로 고생하는 피돌봄인의 매일매일 급변하는 기분을 어루만지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병환의 차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처하는 일은 요양보호사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이게 우리 엄마의 일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베테랑 요양보호사인 이은주에게도 엄마의 엄마가 되는 일. 자신의 엄마를 온 마음으로 돌보는 일은 차원이 다른 고통과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힘든 과정이었다.

엄마와의 고된 동행을 거듭하면서 이은주는 깨달은 바가 있다. 바로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해선 돌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족돌봄은 감정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마음돌봄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기돌봄 신호를 간파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돌봄을 실행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공동돌봄 요청하기였다. 가족들에게 부모돌봄을 사랑과 의무로 여기고 함께하자고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신들의 요양보호사 이은주가 제안하는 실패하지 않는 가족돌봄의 비결은, 바로 회복탄력성을 위한 자기돌봄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당당하게 요청하는 일이다. 사랑의 본질, 희생의 고귀함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서 돌봄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발견해 낸다면, 고립과 고통이라는 숙명을 건너 회복탄력성에 대한 놀라운 경험과 신뢰와 지지에 기반한 따사로운 평화에 다다를 수 있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돌봄의 역량, 이것이 바로 ‘돌봄의 온도’이다.

“『돌봄의 온도』는 치매 단계에 들어선 엄마를 돌보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나와 엄마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되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에 대해서 쓰는 것은 나에게는 물론 엄마에게도 숨기고 싶은 아주 사적인 부분이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내게 된 것은 더 나은 돌봄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며, 독자들과 돌봄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직 돌봄에 개입하지 않은 세대에게 돌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더불어 이 기록은 부모돌봄이 갖는 문제점과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고, 가족돌봄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직면하는 기회였다. 직접 당면한 일이 아니기에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과제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정책과 제도, 사회적 인식의 문제도 그렇고, 개개인이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도 많았다.”
- 신들의 요양보호사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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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기사1

  • 이은주 "나는 엄마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이은주 "나는 엄마의 요양보호사입니다"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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