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영 첫번째 장편소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
완벽하게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꽃이 언젠가 지기 때문에 아름답듯 삶도 유한하기에 살아 있는 순간이 의미 있는 것. 속도감 넘치는 시대를 숨차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어느 평범한 노인의 시선으로 우리 모두의 혼돈과 내면의 고독감을 밀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
필명 : 생선
김동영의 다른 상품
|
어딘가에서 친구들이 나처럼 가면을 쓰고 버티듯 살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너무나 거대한 변화의 파도 한가운데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냈고 그때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믿었었다. 내가 젊고 나의 친구들도 젊었을 때 우리가 누렸고 소유했던 열망이 여전히 우리 안에, 세상이 변해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을 거라고. --- p.58
소녀와 헤어지고 여름과 가을의 오묘한 경계 속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이 설렘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 p.111 어쩌면 아는 것은 과거고, 의심하는 건 현재이며, 모르는 것은 미래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독하건 좋건 간에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기 마련이고, 현재는 그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짐을 정리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오래될수록 더 빛나는 대리석 조각처럼 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 또한 내 어깨를 스쳐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고 지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183 다만 사랑이 끝나고 찾아오는 이별의 외로움과 찬란한 감정이 지나고 한순간 변해버린 상대방의 마음이 날 몹시 두렵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난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겁하게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주저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 흔한 사랑을, 나이가 이만큼 들었어도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내 인생 자체도 사랑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문제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 인생을 사랑하거나 애착을 갖지 않았기에 불사의 시대 뒤 찾아온 자살의 시대에서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그녀들에게 원했던 건, 사랑이 아닌 그저 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 p.186 죽음은 존재한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가다 저 뜨거운 여름 햇살에 취해 널브러져도, 암이나 그 어떤 큰 병에 걸린다 해도, 이 세계는 우리를 억지로 일으켜세우고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의 낫을 빼앗아 저멀리 내팽개쳐버릴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생기를 잃은 채로 살다가 살다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오, 세상에…….’ --- p.223 누구나 나이가 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이가 들면 나는 빨랫줄에 널린 마른 수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아니 지금의 외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실은 볼품없어질 것이다. 그러다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듯 삶을 마감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 p.249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더이상 늙지 않으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내게 비춰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청춘은 오래전에 날 떠나버렸고 나는 빈껍데기가 되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열정과 이상도 모두 청춘을 따라가던 중에 실종되었다. --- 본문 중에서 |
|
어느 날, 사랑니 속 줄기세포를 추출해 이식수술을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나이의 외모로 평생을 살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의학은 점점 발전해 인류의 영원한 난제였던 암을 정복하고 평균수명은 120세를 훌쩍 넘겼다. 노화를 멈춘 젊은이의 얼굴로 노인이 되어 살아가는 인류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수학을 전공한 90세 노인과 그가 자주 가는 카페의 오십대 여주인 그리고 우연히 만난 여고생, 이렇게 세 사람은 묘하게 친구가 되는데…….
|
|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의 저자, 김동영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랑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찬란했던 시절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 꿈만 같은 상황이 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의학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여 사랑니 속 줄기세포를 추출해 이식수술을 받으면 원하는 나이의 외모로 노화를 멈추는 기술을 개발해냈으며,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던 암마저 정복했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120세로 사정없이 뛰어오르고, 우리 모두가 고대하던 ‘불사(不死)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것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아주 터무니없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달에 우주여행을 가고 하늘엔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그런 아주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소설은 인류에게 곧 도래할 근미래에 대한 설정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간군상의 허우적거림과 혼돈의 모습은 지금의 시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수명 연장, 그것은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고대하고 기다려온 축복이 아니라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시간은…… 언제나 흘러왔다. 태양계에서 지구에서 그리고 너의 손목시계 위에서도. 새로울 것도 없지.” 사람의 얼굴에는 살아온 시간만큼의 세월이 쌓이기 마련이다. 노화를 멈춰 젊은이의 얼굴을 가진 90세 노인의 얼굴에도 세월은 비껴가지 않았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 방대하게 늘어난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그렇게 노인의 얼굴을 바꾸어놓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늙지 않는 젊음이 아닌 바로 찬란했던 시절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모두 지나갔으며 이제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마치 좀비처럼 맥없는 삶을 이어가는 이 ‘젊은 노인’에게 어느 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다. 오십대의 외모로 90이 되어버린 할아버지와 중년의 카페 여주인, 그리고 말괄량이 여고생, 이렇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이해하는 친구가 되어버린 세 사람은 세대를 넘나들며 인생의 고독과 아득함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끈끈하고도 서늘한,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들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이 소설은, 인간의 생명까지도 엿가락처럼 늘려놓은 과학기술과 의학기술의 어마어마한 발전 속도를 아직 다 여물지 못한 나약한 인간의 내면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괴리감에 대해 어느 평범한 노인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이 노인에게만 닥친 현실이 아니라, 속도감 넘치도록 변화를 거듭하는 이 시대를 숨차게 살아가는 누구나가 겪고 있는 남녀노소 모두의 혼돈과 내면의 고독감을 밀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해,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이라는 주제를 놓고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표를 던진다. 거칠 것 없었던 시절과 그 시절이 완성한 현재 자신의 모습. 이 소설에서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그가 젊었을 때 좋아하고 열광했던 것들을 추억하고 글로 기록하는 데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것은 개인의 지극히도 사적인 일기장인 동시에 흘러간 시절을 기억하는 회고록이자, 한 남자의 찬란했던 청춘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밀한 묘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작사가 겸 라디오 음악작가로 오랫동안 일해온 김동영 작가가 실제 사랑하는 뮤지션과 문학가, 예술가들의 이름을 등장시킴으로써 더욱 탄탄하게 기능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 스스로의 모습을 소설 속에 어렴풋이 투영시키고 있다. 소설 속 할아버지의 지나간 젊은 시절은 김동영 작가의 현재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007년 출간된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와 2010년 출간된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여행에세이는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며, 이를 통해 이미 작가 특유의 고독하면서도 단단한 내면의 감수성과 탄탄한 필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이번 문학적 시도는 역시나 기대 이상이다. 등장인물의 꼼꼼한 설정이나 내구성 있는 스토리, 거기에다 기존 문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 실험적인 묘사는 그가 프로필에 스스로 적은 ‘작가로 평생을 살겠다’는 문장을 무색하지 않게 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초청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로 평소 수준급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동영 작가의 그림과 사진도 이 책의 분위기를 더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표지에 쓰인 그림과 본문 사이사이 들어간 사진 작업에도 직접 참여해 좀더 감각적이고 전위적인 소설로써의 완성도를 높였다. 소설 속 여고생 소녀가 묻는다. 젊음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카페 여주인이 묻는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그 역시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다. 그는 새롭게 만난 소녀와 카페 여주인과의 관계에서 깨닫는다. 정말로 아름다운 순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꽃은 언젠가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삶도 유한하기에 살아 있는 순간이 의미 있는 것.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소중하다는 그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잠시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완벽하게 영원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겠는가? 받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