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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빠리의 기자들 |
Koh, Johng-Seok,高宗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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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홉 달이 마치 꿈결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세 계절을 제대로, 그러니까 공정하게, 되살려놓을 자신이 없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이고, 시간의 마모력이란 얼마나 당찬 것인가? 시간은 대체로, 나쁜 기억을 풍화시키고, 좋은 기억을 터무니없이 미화시킨다. (하기야 시간의 그런 불공평한 처사 때문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8쪽)
피부 빛깔과 문화 배경이 생판 달랐던 우리들은 그럼에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프랑스 동료는 하나뿐이었다). 우리들 모두가 파리라는 도시의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말하자면 아웃사이더끼리의 정겨움으로 묶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또 어느 정도 우리들에게 들뜸과 자유를 주기도 했다. 값싸다고도 말할 수 있을 센티멘털리즘과 멜랑콜리가 거기에는 있었다. 그 센티멘털리즘과 멜랑콜리의 힘으로 우리는 술을 마셨고, 노래를 불렀고, 춤을 췄고, 뽀뽀를 했고, 울었고, 싸웠고, 화해했다. 그리고 일했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저널리스트였다. (33~34쪽) “남한의 인철이야.” “세네갈의 압둘라이야.” “이름을 보니 무슬림이구나.” “맞아.” “그래서 술을 안 마시고 있는 거니?” “맞아.” “너 담배도 안 피우니?” “맞아.” “너 결혼했니?” “아니.” “너 그럼 무슨 재미로 사니?” “쾌락만이 삶의 다는 아냐.” (그가 너무 진지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41쪽) 그녀는 그 소설에서 자신의 유년기부터 파리 체류까지를 자전적으로 그렸다. 스웨덴어를 읽을 수 없었던 나는 그녀가 보여준 원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한다. 그녀는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4년간이나 정신병원에 출입했으나, 자신의 의지로 낙관주의를 체화한 텔레비전 기자다. “네가 우울증을 앓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넌 우리 가운데서도 가장 낙천적인데.” “그러나 그건 사실이야. 예컨대 동유럽 사람들이 그리고 있는 스웨덴 사회의 이미지와는 아주 동떨어진 게 내 유년기였어. 그리고 내가 아주 예외적인 것만도 아니었고. 완전한 사회는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 자랑스러워. 내겐 어엿한 직업이 있고, 내가 모은 돈으로 파리에 와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이만큼이라도 프랑스어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패배주의, 운명론 같은 말을 내 사전에서 지워버렸을 때 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어.” (45~46쪽)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럼, 비행기표 값만 마련하면 언제든지. 헝가리와 남한 사이에는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돼 있거든.” “그래도, 서울은 너무 아득해 보여.” “난, 그 아득한 곳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잖아.” “그래, 내가 서울에 가면 재워줄래?” “그럼, 네가 날 부다페스트에서 재워줬듯이.” “널 재워준 건 우리 엄마잖아.” “내 누이도 널 재워줄 수 있을 거야.” “네가 몹시 보고 싶을 거야.” “나도. 네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난 널 생각할 거야.” “또 그 과장.” “아냐, 부다페스트가 밤일 때 서울은 낮이거든. 네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네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렇구나. 그 역도 성립되네. 그 생각을 하면 잠을 아주 달게 잘 수 있겠는데.” (51~52쪽) 파리가 내게 아름다웠던 것은 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고, 특히 92년-93년 유럽의 기자들 때문이었고, 그 기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잔나 셀레슈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자신과 나의 인종적 친연을 강변하던 이 헝가리 여자의 따뜻함과 유쾌함 덕분에 내게 파리는 항상 따뜻하고 유쾌하게, 마침내는 아름답게 다가왔다. (84쪽) “그렇게 재미가 없었니?” “응, 넌 그렇게 재미가 있었니?” “정치나 경제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여러 형태로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관찰은 흥미롭잖아.” “넌 그걸 아직 몰랐었니, 이 꼬마 도련님? 부르디외는 그걸 굉장히 멋있는 말로 설명했지만, 난 그걸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는걸. 나만이 아니라 너도 그럴걸. 네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경험적 지혜를 저 영감은 아주 아카데믹하게 얘기하고 있을 뿐이야. 나는 저 사람이 이 나라에서나 이 나라 바깥에서나 왜 그렇게 유명한지 알 수가 없어. 하기야 모든 아카데미즘이란 게 비틀거나 금박을 입힌 격언 같은 거긴 하지만.” “내가 네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니?” “물론이지. 넌 내 귀중한 시간을 두 시간도 넘게 훔쳐갔잖아.”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하면 용서해 주겠니?” “네 하잘것없는 시간을 오늘 밤 네 시간 정도 빌려주면.” (93~94쪽) 인간은 모순적인 동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역사가 고작 이 모양이겠는가?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역사가 이 정도라도 됐겠는가? (109쪽) “예순네 해를 산 사람이 보기에 삶은 살 만한 것인가?” “삶은 사랑할 만한 그 무엇이고, 기록할 만한 그 무엇이다.” (32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짜 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그 삶의 세목에 대한, 마침내는 죽음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관심에 있었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지만 그 기록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남에 대한 기록이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자기가 엿본 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광고 충동, 그런 것들이 기자의 운명 아닐까. 그랬을 때 데보라와 마르틴은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순도 높은 진짜 기자였던 셈이다. 그들은 세속적이었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통속적이었다고나 할까? 통속! 세상과 통함! 그들은 민첩했다. 일단 행동해 놓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단순했다. 삶과 사물의, 자기 행동의, 그리고 원인들과 결과들이 만들어내는 사슬의 요모조모에 대한 신경질적 분석과 저울질, 과민한 배려 같은 것에 무심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열정적이었다. 사건이 있는 곳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대로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집요했다. 자포자기와 단념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세속성 또는 통속성, 그들의 민첩함, 그들의 단순성, 그들의 열정, 그들의 집요함이 그들을 진짜 기자로 만들었다. (329쪽)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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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종석의 첫 소설, 어쩌면 마지막 소설…
21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가장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고종석. 그는 2012년 가을,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 언젠가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접는다’는 말로 절필을 선언했다. 직업적 글쓰기를 접은 이후에 출간되는 이번 책 『빠리의 기자들』은 그의 첫 책이자 첫 소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앞서 발표한 글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 명문장가 고종석이 21년 만에 처음으로 개작을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 파리와 서울, 1990년대와 2014년이라는 시공간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파리라는 도시의 이방인이었던 주인공이 보여주는 ‘진짜’ 기자의 삶,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난 두 남녀의 연정. 고종석의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이 전하는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가 애틋하다. *표지 제목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 버전이 있습니다. 내용은 동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