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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주세요
누구나 주머니에 접어둔 이야기가 있다
신미나
마음산책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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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주세요 (큰글자도서)
[도서] 다시 살아주세요 (큰글자도서)
신미나 저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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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주세요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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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작게 접은 자국

1 밤과 낮

당신의 마지막 악기
모양이 나쁘네요 1
옹고집전
최선의 영미

2 오르골 속의 자매들

짧은 소설―여우비
부라보콘의 맛
짧은 소설―밤은 지나가고 나는 노래하네
언니에게

3 큰불이 지나간 서늘한 동굴

모양이 나쁘네요 2
다리 위에서
짧은 소설―기분만 남은 꿈

4 눈 뜨고 꾸는 꿈

나의 식물시서植物時序
미나리를 좋아하세요?
달걀말이 인생론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다
소에 대하여
스승의 애호박
평범해도 괜찮아
엄마의 그릇
세모의 정경
약과 예찬
매일매일이 소풍은 아닐지라도
아버지의 돋보기

저자 소개1

申美奈, 싱고

시인·시툰 작가이다. 1978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라는 필명을 쓴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백장미의 창백』,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 시툰 『詩누이』 『서릿길을 셔벗셔벗』 『청소년 마음 시툰: 안녕, 해태』(전3권) 등을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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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78g | 133*201*20mm
ISBN13
9788960908406

책 속으로

장례를 마치고 나는 여느 때처럼 노트북 전원을 켰다. 퇴고를 하고, 간소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불현듯 슬픔이 왔다.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골목을 지나다가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이 들려올 때도 슬픔이 왔다. 그렇다. 슬픔이 왔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슬픔은 매복했다가 느닷없이 터졌다. 사납고 맹렬한 불이 등을 훑는 것 같았다. 나는 웅크린 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p.8

그 무렵 우리는 많은 약속을 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가고 싶은 나라의 수도에 동그라미를 쳤다. 수영장에 등록해서 접영을 마스터하자고 했고, 방 세 개에 거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 가자고도 했다. 해가 갈수록 약속은 미뤄졌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밤바다 위의 부표처럼 떠 있었다. 부표는 해변에 닿지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갔다. 그와 내가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스티로폼 조각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런 몽상 속에서 캄캄하게 머리카락을 적시다 보면 어느 결에 잠이 들었다.
--- p.24

통각은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통증은 허상이 아니라, 확실한 감각이었다. 수술이 끝났다. 나는 작은 죽음을 통과했다.
--- p.35

그때 우리는 별로 웃기지 않은 일에 배꼽을 잡고 웃었고, 웃다 보면 정말 우스워졌다. 그렇게 웃고 나면 군색한 세간살이도 금방 설거지를 마친 접시처럼, 반짝 생기가 도는 것만 같았다. 농담은 그런 때 적절한 지혜였다. 자꾸만 어둡게 덧칠되는 우울의 농도를 조금이나마 옅게 해주었다.
--- p.43

누구에게나 빵이 필요한 만큼 장미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빵이 육체의 허기를 채우는 양식이라면, 장미와 같은 취향은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다. 그건 일조량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요소였다.
--- p.45

떠나고 싶어 했던 만큼 언젠가는 이 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거실에 우두커니 남겨진 옹고집처럼. 정을 붙이자니 무겁고, 산뜻하게 잊기엔 섭섭한 신혼이 그렇게 지나간다. 발끝으로 살얼음을 톡톡 깨트리다가, 나는 불현듯 알았다.
--- p.49

언니, 도대체 그때 난 뭘 배웠던 걸까? 정작 내가 배운 건,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고, 몸으로 새긴 것인지도 몰라.
--- p.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이유는 시를 쓰는 이유가 바로 나의 노동이고, 밥이고, 나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을 대신하는 목소리가 되기 때문이야.
--- p.131

언니들의 삶을 통과해서 또 다른 세상의 언니들을 봐. 언니들로부터 출발하여 세상 밖으로 서서히 확장되는 서사를 봐.
--- p.132

너는 고통을 특별한 경험인 것처럼 과장하는 사람. 평범이라는 재능 없음을 무서워하는 사람. 결핍을 전시하고 고통을 끌어안는 사람. 고통이 떠나가 버릴까 봐 겁내면서도 고통을 피하고 싶은 사람.
--- p.144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나에게는 건강을 잃는 것보다 경제적 무능이 더 큰 공포였다. 가난은 실존의 위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p.151

나는 엄마의 눈을 보는 게 두렵다. 당신의 생애를 압축할까 봐. 달착지근한 애상으로 포장할까 봐 겁이 난다.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을 닮은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우울한 기질을 물려받아 슬픔을 유골함처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될까 봐. 감정의 지하 계단으로 한 계단씩 내려가면서 멜랑콜리한 기분에 취한 채, 실재보다 현상을 과장할까 봐. 그게 진짜라고 믿어버릴까 봐.
--- p.159

“요즘 뭐 써요?”
“가족 얘기, 쓰고 있어요.”
“가족 얘기를 굳이 왜 해요? 개인적인 일 쓰는 거, 좀 민망하지 않나.”
온화한 말투 속에 날카로운 적의가 번뜩였다. 그는 내가 가족을 소재로 이용한다고 단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할 힘이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나는 대답했다. 경험을 통과한 글이기 때문에 쓸 수 있다고. 그는 수긍하는 척했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봤다. ‘내 몸을 통과한 이야기니까 써요. 그게 제 내러티브고요.’
--- p.182

나는 불을 마셨어요. 엄마를 마시고 소화하고 흡수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나의 피부와 눈물과 근육이 되었어요. 나는 당신을 먹고, 다시 뜨겁게 낳았어요. 당신은 나의 피 속에서 흘러요. 엄마. 다시 살아주세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 살아주세요.
--- p.191

한동안 잊고 지냈다. 유한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시간임을. 인간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몸을 빌려 사는 존재인 것을.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67

출판사 리뷰

“어쩌면 진실은 높고 티 없이 고결한 것이 아니라,
도둑이 장판에 찍고 간 발자국처럼 얼룩덜룩한 모양 아닐까”
시인의 몸을 통과한 가족 이야기


첫 산문집을 묶는 시인은 자신의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심스레 살피기 마련이다. 일곱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신미나는 어머니의 투병, 석쇠에 김을 굽고 소를 키우던 아버지, 친구처럼 지냈던 언니들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자신을 이루어온 가족에 대해 털어놓는다. 시인에게 가족 이야기란 ‘내 몸을 통과한 이야기’이자 자신의 ‘내러티브’이다. 가족을 이야기하며 기억은 삶을 거슬러 올라가고, 유년 시절을 지나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까지 닿는다. 봄밤의 개울가 다리 위에서 처음 만났던 시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월을 함께 겪으며 노인이 되었다. 신미나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늘 꼿꼿했던 어머니가 조금씩 기력이 쇠해가는 모습을 본다. 엄살이 없고 자존심이 강했던 어머니의 투병을 보며, 시인은 슬픔과 함께 자신의 ‘쓰고자 하는 욕망’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머니의 아픔보다 자신의 이기심이 먼저일까 봐 두려워하는 그에게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윤리를 살피며 글을 쓰는 시인의 자의식과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이조차 당신을 직접적으로 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에는 나를 살리는 이기로 귀결된다는 것이 뼈아프다. 당신은 기억을 지우며 죽어가고, 나는 당신의 기억을 복원하며 살아간다. 그 사실이 이상하고, 아름답고, 지독하다. 나는 다만,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_161쪽

네 명의 언니들은 험한 시절을 앞서 살아갔던 여성들이기도 하다. 언니들은 서울, 인천 등 도시로 가서 산업체부설고등학교에 다니며 일을 했다. 신미나는 무섭고 험했던 시절을 먼저 통과한 언니들을 향해 “지독한 야만의 시대에 언니들은 어떻게 서로의 어깨를 겯으며, 그 사납고 무서운 시간을 견뎠을까”라고 묻는다. 노동을 하며 서로의 곁을 지켰던 여성들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내며, ‘나’의 이야기가 ‘타인’의 서사로까지 넓어지도록 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과 우정 어린 연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시인 자신의 투병에 대해 쓸 때도 드러난다. 건강검진을 받다가 유방에서 종양을 발견한 후, 여성과 질병에 관해 끈질기게 사유하고 이를 쓴다. 그동안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던 것을 자각하며, 보다 온전한 몸을 응시하기 위해 애쓴다. 고통을 직시하는 시인의 태도는 자못 담담하다. 그러나 문장 안에 담긴 조용한 격렬함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 통과한, 혹은 언젠가 통과해야 할 질병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끔 이끈다.

“이야기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산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다”


아버지의 장례 후, 시인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돋보기를 발견하고 이를 소중히 챙긴다. 아버지가 생전에 돋보기를 사용해 시집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사랑의 기억은 삶을 계속 살게 하는 끈이 된다. 신미나는 첫 산문집인 이 책에서 사랑을 주고받았던 기억의 소중함과 글쓰기의 힘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추천의 글을 더한 최진영 소설가는 “당신의 고통이 그를 울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라고 썼다. 신미나는 고통과 슬픔을 씨줄과 날줄 삼아 원고를 쓰고 묶었다. 뜨거운 불이 지나가고 글이 되어 남은 이야기들은, 결국 사랑에 다다른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유한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시간임을. 인간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몸을 빌려 사는 존재인 것을.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하지만 이별은 우리에게 비탄만을 주지 않는다. 하루하루 남은 인생을 아끼며 살아야 하는 까닭을 되새기게 한다. 지금껏 살아온 날과 마지막을 맞이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가끔은 무릎이 힘없이 꺾이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불이 지나간 자리에 어린 쑥이 올라오듯이 생의 기쁨도 간지럽게 나를 찾아올 것을 안다. 지금, 이 여름을 지나온 마음은 비장한 슬픔이라기보다, 서늘하고도 담담한 다짐에 가깝다._267쪽

시와 그림을 통해 서정적이고 곧은 세계를 보여주었던 신미나는, 산문집을 통해 뜨겁고도 진중한 목소리를 더한다. 무엇보다 그를 통과한 이야기들은 개인적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책을 경유하여 타인의 공감을 부르는 보편적 서사가 된다. 특히 고통에 대해 쓰면서도 섣부르게 감정을 단정 짓지 않는 신미나의 담담한 태도는, 상실을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희미하지만 굳은 위로로 다가올 것이다.

추천평

그를 통과한 고통은 글이 된다. 그것에 피아 구분은 없다. 당신의 고통이 그를 울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신미나 시인의 엄정한 시선에는 ‘떨림과 울림’이 있다. 그의 문장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오래도록 껴안고 있을 것이다. 여기 깃든 귀한 숨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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