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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우다영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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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이 아닌 누구였더라도 꼭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어떨 때는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쾌하지 않을 이야기를 굳이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사실 나는 서로를 가장 가깝게 여겼던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 p.12 새도 아파서 죽을까. 어떤 새가 아파서 죽고 어떤 새가 괴로운 삶의 과정을 겪을까. 어느 세계에나 그런 일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태어났다면 삶이라는 건 태어난 것들을 가만 내버려두지만은 않겠지. 몇마리의 새는 비틀거리겠지. 삶이란 건 원래 고통이라는 말에 큰 위안을 받곤 했을 때도 사실 내 깊은 곳에서는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 p.27 하지만 원경 앞에서는 뭔가를 일일이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되었고 심지어 사람들이 모두 부당한 일로 화를 낼 때, 그래도 나는 정당하게 화를 내는 사람들이 부러워,라고 말해도 되었다. 또 덤덤하게 내 결핍을 드러내도 지적을 당하거나 못나 보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고, 그저 나 자신 그 자체가 되었다. 해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고 그게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딘가 부족하더라도 왜인지 그것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세상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해왔구나, 그런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원경과 멀어지고 난 뒤에는 지금까지 가까웠다 멀어진 몇몇 사람들과의 경우와는 다르게 몹시 괴로웠다. 지금의 상황을 바꾸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나를 받아들이려 애썼으나 여전히 잘되지 않을 만큼. --- p.28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하던 일도 계속 하고.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짧은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날로부터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흐릿해진 것 같으면서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문득 아무 일이 없는데도 사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p.31 우리는 이제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글을 쓰는구나. --- p.101 나는 말없이 걸었다. 사실 자체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내 생각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아주 오랫동안 나는 가진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길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 p.151~152 나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을까. 기쁨이나 슬픔은 그렇지 않은데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오래되고 깊은 마음들은 왜 꼭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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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순간들을 담담히 돌아보며
‘해피 엔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기주’는 한때 각별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 ‘원경’에게서 문득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느냐는 연락을 받게 된다. 원경과의 다툼이 있고 2년 6개월 만에 온 연락이었다. 과거 원경은 결핍이나 부족해서 감추고 싶은 마음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고, 그런 원경이 삶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 기주에게는 오랜 시간 괴로운 일이었다. 원경과의 만남부터 시작해 다투던 순간 그리고 그 다툼의 현장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사람들까지도 곰곰 떠올려보던 기주는 원경을 만나러 갈 결심을 하게 된다. 원경은 기주가 사는 곳으로부터 꽤 먼 곳에서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애인인 ‘상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기주의 여행에 동행하는 이는 뜻밖에도 회사 동료인 ‘장과장’이다. 회사에서도 곤란할 때면 침묵하는 습관이 있는 기주에게 장과장은, 말수가 적은 기주와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주가 늘 궁금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여름옷을 모두 빨아 푹푹 찌는 날씨에도 기모바지를 입고 출근하기도 하지만 회사 공장에서 머무는 강아지 ‘가니’를 누구보다 성실히 돌보기도 하는 장과장에게, 기주는 “가는 길은 두렵고 돌아오는 길은 외로울 것 같아서” 동행을 부탁하게 된다. 중소기업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과장은 기주와의 여행 역시 브이로그에 담아도 되겠느냐고 묻고, 이를 기주가 승낙하면서 둘의 짧은 여행이 시작된다. 둘은 장과장의 조부모 집에 들르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우연히 장과장의 채널 구독자들을 만나기도 하며 원경의 까페에 다다른다. 막상 도착한 그곳에서 가장 처음 마주한 사람은 원경이 아닌 원경의 어머니였고, 기주는 그녀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인생이란 그렇던데.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던데.”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큰 상처를 준 원경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끝내는 원경을 찾아 나선 기주이지만, 사실 『해피 엔드』에는 기주와 가까운 곳에 머물며 기주에게 크고 작은 위로를 건넨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 곳곳에 서서 조금쯤 차가워진 기주의 마음을 미지근한 온도로 돌려놓곤 한다.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연인 상우, 품삯으로 못생긴 과일이나 달라고 하는 기주 어머니에게 기주는 예쁜 것을 먹어야 한다며 좋은 과일을 내놓는 황선아 아주머니, 여름휴가 기간에도 동네에 머무는 기주를 보고 휴가는 가지 않느냐고 묻는 편의점 사장님, 시끄러운 단체 손님들에게 떠밀려 가게를 나서게 된 기주에게 사이다를 서비스로 주며 미안해하던 전집 직원, 기주에게 향한 아버지의 폭력에 분노를 표하던 옆집 남자, 네 삶을 살라며 자신을 책임지지 말라고 해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 자기가 같이 오길 잘했느냐고 묻는 장과장까지. 기주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기주가 삶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이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가까운 이웃들이 나눠주는 소소한 마음, 전혀 모르는 이로부터 받은 친절 그리고 드물게 받곤 하는 타인으로부터의 아주 큰 위로가 우리의 삶에도 분명 존재한다. 이주란은 이렇듯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장면들을 붙잡아두고 그 위에 조심스레 돋보기를 올려 세밀하게 관찰한다. 새들의 마음까지도 걱정하는 시선으로, 이웃에게 얻어먹은 수프 그릇을 잘 씻어둔 장면을 따스하게 그려내는 마음으로. 그렇기에 이주란 소설 속 인물들이 건네는, 그들 스스로는 아주 작은 것이라고 생각한 마음들이 기주를 거쳐 우리에게 닿을 때는 그 온도가 몇배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미지근하게 기주의 마음을 덥혔던 그 마음들이 따스함으로 번져, 이 소설의 결말을 마주할 무렵에는 자연스레 지금 이 이야기를 손에 쥔 우리가 마주한 것이 곧 ‘해피 엔드’라고 떠올릴 수도 있겠다. 작가의 말 그날의 대화는 나에게 사건이 된 것 같아. 그날로부터 난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그날 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빼앗기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나 스스로 잃어버렸다는 걸 어제 알게 되었어. 자유 뒤의 책임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는 그 사람이 언제 자유로워질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러나 자유로워질 거라고 믿고 있다. 2023년 10월 이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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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는 기주가 이 여행을 예감하고 결심하고 실행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여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알고 싶고 또 그것을 알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을 품은 채, 원경을 만나러 가는 이 길은 끝없이 유예되고 정체되고 미끄러집니다. 소설의 시선은 실물의 세배 크기로 보이는 거울처럼 그것을 더 가까이 더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여정이 가진 본래 맥락과 핵심에서 슬며시 벗어납니다. 길을 헤매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아갈수록 모호해지는 행로 위에서 생생하게 남는 건 오직 지나온 길목의 요모조모와 마주친 얼굴들입니다. 낯선 이들의 대수롭지 않은 친절과 함께 나누어 먹은 음식들입니다. 사람이 가진 연약함과 외로움과 두려움입니다. 끝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렸기에 만난 풍경들. 저는 주란 언니가 보는 사람의 삶이 텅 비어 있지 않고 어린이처럼 작고 건강한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자주 안도하곤 합니다. 또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연히 포착한 장면들을 그러모아 지면 위에 소중하게 내려놓는 언니의 손길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것은 설명할 수도 없고 전해본 적도 없는 말이지만 왠지 변할 것 같지 않은 마음입니다. - 우다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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