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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은 위로 찾기
봄산/봄/밤나무와 달항아리/담장/숨은 그림 찾기/통장구/방/수각화/수각화 2/수각화―무덤/팥/기린의 어떤 힘/한 수 위/이야기꾼/두 편의 나무 시에 대하여/산벚나무/집이 나를 부른다/침(針)/풀피리, 버들피리/사슴벌레의 마술 2. 내가 사랑하는 것들 드러내다와 드러나다/보리수나무/나의 근대―옛날 옛적에/식구/소리와 한 모금/쇄골과 물그릇 이야기/재―혼나는 것은 끝이 없구나/노간주나무의 쓸모/목기/작두/나의 시론 1/접/고추씨 촉 틔우기와 파종/절구통에서 시작된 이야기/나의 시론 2/소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청기/작은 우화 3. 오래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감촉 이월/유레카/감자와 땅강아지/시감/매/레드우드 도롱뇽의 첫 번째 고뇌/사막의 노래/자두와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를 생각함/고통의 아름다움/자석을 찾아서/두부/애저라는 말에 잠기다/포대기/내 인생의 축복/팽이에 대하여/고슴도치, 그 아름다운 것/불곰과 버드나무의 애니미즘 4.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달밤에 반응하는 것들/야명조와 때까치/꿩알/거미와 잠자리채/소리통, 그 이름은 멱/돌나물/호랑이와 도리깨질/독수리와 글쓰기의 순간/나는 왜 동물의 언어에 집착하는가?―감각의 확장으로서의 동물 언어/백자와 개/뻘짓거리/나의 유산, 게으름/탁구와 글쓰기/사냥개 발바리/돌미나리와 거머리/구더기 시론/봄과 로드킬/펭귄/북극곰/어떤 반성/산불에 대한 기억/분리수거의 달인/지구의 아름다움을 찾지 말자/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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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떼가 밤나무의 심장이고 밤나무의 목소리이고 밤나무의 그림자다. 나는 목청을 따러 밤나무 숲으로 갔다. 사다리를 타고 밤나무에 올라서 벌집 구멍을 찾았다. 꺾인 나뭇가지가 주먹만 한 구멍을 아귀가 꽉 맞듯 가리고 있었다. 눈발도 출입문을 두드리다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벌집이다. 나는 곤하게 겨울잠에 들었을 꿀벌을 깨우는 대신, 큰 눈 오면 가지가 찢어질 것 같아 벌집 입구만 남겨놓고 썩은 나뭇가지를 잘라주고 사다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밤나무와 달항아리」중에서 죽음이나 비애는 얼룩으로 남지만 재첩국은 아버지 몸에 난 저승꽃을 지운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서 녹아 없어지고, 숨을 쉬는 것들은 저렇게 온갖 에너지의 파편으로 되살아난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아직도 검은빛을 띤 이유다. 아버지 역시 폐허에 대한 편견도 없이 살아왔으니, 이미 죽은 옆구리로 삶이 헛되지 않도록 꼿꼿이 서고자 했다. 산에서 자란 아버지와 물소리로 자란 어머니는 눈길 자주 닿는 곳에서 운명이 정한 자식을 아홉이나 두었다. 속이 다 비치지는 않지만 새파랗게 투명해서 침묵을 편애하는 자식을 두었다. ---「수각화」중에서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홀연히 어떤 대상을 응시하고 의미 있는 어떤 순간을 포착할 때, 아름다운 인간이 된다고 믿는다. 보리수나무는 나무로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잊지 않되 현실에 몸담을 수 있으며 앞으로 해야 할 삶의 일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해준다. 끝없는 일상에 대한 기억을 미각으로 말하기. 저 보리수나무는 어디에나 있겠지만 그 어디에도 물돌 같은 파리똥은 없을 것이다. ---「보리수나무」중에서 나는 버드나무를 끝없이 바라보면 불곰이 보여주는 말과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건 생명의 신비를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영원을 향해 기어가면서도 저 버드나무는 뚱뚱해서 눈부시고, 더덕더덕 붙은 고독으로 스스로 불곰인지 불러보며, 얼굴을 바꾸고, 몸과 발그림자를 바꾸고, 물의 세계를 성성하게 비추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버드나무가 저녁마다 불곰으로 몸을 바꿔 움직인다고 해도 도망가진 않을 것이다. 바로 첨벙거리는 소리 때문에 금방 눈에 뜨일 테니까. 저 불곰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내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불곰과 버드나무의 애니미즘」중에서 달은 진흙머리였다가 온순한 맨발이었다가 물새의 얼굴이었다가 눈먼 고인돌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달은 변신의 귀재였다. 오래 더럽혀져도 달은 노랗게 맑은 달이다. 달빛은 왜 자질구레한 것들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영혼이라는 말은 저 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달은 물질이 아니므로 삼키지는 말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저 빛이 미늘이다. 한 번 꿰이면 평생 노숙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물고기 아가미가 꽃잎같이 붉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달밤에 반응하는 것들」중에서 놀랍게도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돈다. 지구의 가장자리가 물인 것도 이런저런 생들이 몸빛을 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구의 아름다움을 찾지 말자. 그래야 그 아름다움 자체가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찾는 순간 아름다움은 훼손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 반성 중이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을 훔쳐봤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찾지 말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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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일상에서 끌어 올린 아름다움과 사유
내가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에는 시인 자신이 위로를 받은 대상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시인이 말하는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은 “여러 층위를 가진 빛이 있고 색이 있”는 ‘봄산’(10쪽)일 수도 있고, “엎드린 자가 벽 너머를 생각하고 누워있는 자가 천장 너머를 보는” ‘시골집 방’(26쪽)일 수도 있고, “너무 깊어 아홉 자식의 눈물을 모아 쏟아부어도 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쇄골’(98쪽)일 수도 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칡소와 돼지를 키웠던 일, 사슴벌레와의 만남, 거미줄로 만든 잠자리채에 관한 추억들은 그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온기와 위안을 전한다. 꽃가루 날리는 버드나무는 불곰에 관한 상상으로 이어지고, 접붙이기에 대한 생각은 존재와 몽상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며,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구를 이루는 어린 아들의 존재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을 자연과 연결해 준다. 자연과 일상에서 끌어낸 아름다움과 사유,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과 가축 또는 곤충, 벌집, 나무 같은 자연물에서 위로받은 소소한 기억들은 극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흰 얼굴과 붉은 얼굴을 가진 돌멩이인데, 그 돌멩이에겐 냄새와 감정이 있고, 목소리도 있다. 항상 주름으로 가득한 세상을 담고 있어 단단한 것인데, 그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순간에 집중하는 힘을 주었다. 팥은 나를 지나 어디로 가는지 한 숟가락 떠서 씹지도 않고 목으로 넘겼는데,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건 위로였다. 목을 마르지 않게 하는 힘이었다.(45쪽) “가장 은혜롭고 연약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이 없는 것들의 언어를 읽어내고 싶었다”(57~58쪽)는 시인은 그러한 대상들 내부에 숨겨져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에 집중하면 아득한 환상이 보이는데 이런 상상들은 시인을 ‘나’이면서 동시에 ‘타자’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시인에게 ‘회복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는 이병일 시인 시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녹명 정신’과도 이어진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녹명 정신이 갖는 의미 시는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다 ‘녹명(鹿鳴)’은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혼자만 잘사는 법을 배우는 데 익숙해진 각자도생의 시대에 시인은 굳이 ‘녹명’이란 말을 불러낸다. ‘자두와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를 생각함’이란 글에서 시인은 어릴 적 동네 자두나무에 관한 기억과 동화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 이야기, 성인이 된 후 지인의 자두나무밭에 들렀던 일을 차례차례 펼쳐놓는다. 자두 서리해 가는 아이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쥐어뜯어 놓은 동네 아주머니와의 일화에 이어지는 동화 속 마음씨 좋은 사과나무 주인 이야기, 그리고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지인 자두밭에서의 경험은 시인의 녹명 정신이 어떻게 물꼬를 트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에서는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피리, 달빛을 쫓아 물길을 오르는 민물장어 치어들, 아파트 가로수에 떨어져 걸려있는 명주이불, 새똥을 피하려고 버릇처럼 올려다본 하늘 등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을 향한 시인의 시선을 통해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다. 목소리를 가진 것, 그리고 사물에게 목소리를 입혀주는 것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며, 이러한 서술과 사유를 통해 시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시 쓰는 운명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닌 눈동자에 있다고 믿는다. 나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죄 없는 사물이면서 세상으로부터 몸을 감추지 못한 생명이다. 나는 마냥 걸으면서 일순간,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284쪽)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부를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첫 산문집인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역시 이렇게 안위를 살피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먹을 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먹어 치우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까지 불러들이는 그 울음 자체가 위안을 건네듯,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존재의 안위를 살피는 잔잔한 질문들은 지금의 각자도생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은근히 강력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