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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맞춤복 거리가 있다
이은하
이유출판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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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맞춤복 가게가 모여 있는 거리를 아시나요?
이 안에 옷 만드는 모든 게 다 있어요
- 샬롬의상실 김옥희 대표
1981년생이 본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삶
- 샬롬의상실 김혜진 실장
맞춤복 거리에서 제2의 삶이 시작됐어요
- 2022 뉴욕국제디자인 초대전 Best Of Best 상을 수상한 청년 배재영 씨
맞춤복 거리의 청년 1호
- 바르지음 김희은 대표
여기 맞춤복 거리에서 태어난 토박이예요
- 현대교복 이정수 공동대표
맞춤복 안에 인생이 담겨 있어요
- 14년째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이수정 고객

에필로그 - 맞춤복 거리, 대전의 소중한 유산이 잘 계승되기를

저자 소개 1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기자와 시사 프로그램 전문작가로 일했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과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에서 일했다. ㈜책이밥 대표로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 믿고, 생애사를 써나가고 있다. 청소년들의 이타적 자서전 쓰기와 노인들의 생애사 쓰기를 교육하고 있다. 저서로 『페미니스트 비긴스』, 『이정순 평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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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40g | 125*195*14mm
ISBN13
9791189534479

책 속으로

그때는 사람들이 버스 대절해서 옷 맞추러 목동까지 오던 때였어요. 수십 명이 단체로 와서 원단 구매하고, 그걸로 옷맞추고 하던 때였어요. 장사가 아주 잘됐어요. 그래서 대동에서 몇 년 양장점 운영하다가 89년 중촌동 맞춤복 거리로 들어왔어요. 진짜 잘된 거는 말도 못 하게 잘됐어요. 그때는 어떤 집이든지 들어오는 일감을 다 못 받았어요. 우리가 주문 받은 옷이 이렇게 100장이 있잖아요? 그러면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게 100장이 있고, 여기 주문받아 놓은 게 또 있고, 한 덩어리는 대기 중이고 그랬어요. 맨날 하루 종일 일만 했어요.
--- p.46

엄마가 거기다 데려다 놨으니까 한 거예요. 우리가 또 견디는 건 잘하거든. 그래서 그냥 참고 견디고 했어요.
나는 원래 손재주 없었어요. 재주라고 하는데 재주가 아니더라고요. 재주로 하는 거 같으면 나는 못 했을 거야. 근데 시간의 힘이라는 것이 그래요. 내가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내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이렇게 되더라고요.
--- p.68

엄마의 평생이 여기 들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키고 싶고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이 가게는 그냥 엄마예요. 엄마 같아요. 나도 우리 엄마처럼 능력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 p.78

저희가 디자인을 하면 선생님들이 맞춰서 만들어주고 그런 형태의 협업을 생각했어요. 학생들은 협업 과정에서 이런 디자인은 의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그런 걸 알게 되고, 선생님들도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성복의 디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죠. 판매하시는 기존의 맞춤복에다 저희 디자인을 접목시켜서 새로운 디자인을 또 탄생시키기도 했어요. 그걸 패션쇼에서 선보이기도 했고요.
--- p.87~88

최근 희은 씨는 자신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공개했다. 중촌동 맞춤복 거리 장인들의 기술과 청년들의 디자인 감각이 결합되면 ‘맞춤복은 중촌동’이란 얘기를 들을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희은 씨. 그 꿈이 패션 놀이터로 어떻게 발현될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희은 씨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 p.116

성심당이 제빵계의 삼성이라고 불리잖아요. 그런 곳과 지금까지 거래를 쭉 하고 있어서 너무나 자부심을 느끼죠. 내가 만든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굉장한 자부심을 느껴요.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대교복이 경쟁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대전 지역 업체인데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거래가 이어져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귀한 인연이죠.
--- p.129

저는 진심으로 이 동네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여기 상인들이 부자가 되고 이런 걸 떠나서, 제가 지난 14년 동안 느낀 재미를 다른 사람들도 좀 소소하게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자신만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 p.158

출판사 리뷰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그리고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단단하고 색깔 있는 책들을 선보여 온 다섯 출판사가 2년 넘게 함께 기획하고 제작하여 동시에 5권의 책을 펴냈다. 처음 듣는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들, 그리고 수도권밖에서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 전하는 지역의 목소리. 작지만 가볍지 않게, 다양한 색깔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기록을 인문 시리즈로 담아냈다.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는 2022년 제6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화려한 양장의 시대, 그 주역은 맞춤복 장인들

‘샬롬의상실’의 김옥희 대표는 30년째 중촌동을 지키는 안방마님이다.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양장점을 차리게 되었다. 딸이란 존재를 살림 밑천으로만 여기던 시대에 자신의 삶을 개척하도록 용기를 준 어머니의 리더십을 물려받아, 현재 중촌동패션상인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쪽잠을 자가며 하루 종일 일해도 버스를 대절해 몰려오는 손님들의 주문이 쌓여만 가던 호황기, 그에게 양장점은 일터인 동시에 자녀를 돌보는 공간이었다. 김옥희 대표의 딸 김혜진 실장은 엄마의 삶이 그대로 누적된 의상실을 물려받아 2세 경영을 준비 중인 젊은 디자이너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모이는 패션 거리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배재영 씨와 ‘바르지음’ 김희은 대표는 맞춤복 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청년들이다. 2022년 〈뉴욕국제디자인〉 초대전에서 상을 받은 배재영 씨는 샬롬의상실 2층을 작업실로 제공한 김옥희 대표와 소통하며 기술을 익힌 덕에,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귀한 현장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배재영 씨는 40~50년 동안 맞춤복 제작을 고집한 장인들과 꼬박 3년을 함께한 덕분에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맞춤복 거리에서 창업한 청년 1호 김희은 대표는 장인들의 기술력과 패션전공생들의 디자인 역량을 합쳐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글로벌 패션 놀이터로 재탄생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장인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멋을 발견하는 고객

맞춤복 거리의 오랜 고객인 이수정 씨의 인터뷰는 우리가 왜 맞춤복 거리를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기성복보다 저렴한 가격에 맞춤복 거리를 찾게 된 이수정 씨는 장인과 의견을 나누며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발견하면서 재미와 매력을 느낀다. 기성복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옷이 장인의 손길로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안목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자신의 취향에 공감해주는 장인에게서 끈끈한 동지애도 느끼게 된다. 이는 맞춤복 거리의 상인과 고객들이 서로를 하나의 생활 공동체로 여기는 이유이다. 이수정 씨는 맞춤복 거리의 문화가 확산되어 자신만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한다.

패션의 메카를 꿈꾸는 대전의 또 다른 모습

1970~80년대의 고성장 시대에 어딘가에선 미싱이 씽씽 돌고 있었다. 그 시절의 흔적은 21세기가 되어 자취를 감춘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도심 한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패션 공동체를 이룬 중촌동 맞춤복 거리가 우리나라 패션의 한 축임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호황기를 누리던 중촌동 맞춤복 거리엔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며 재봉틀을 돌리던 여성들, 산더미처럼 쌓인 주문과 원단들, 미싱 테이블 사이로 뛰어다니며 놀다 모서리에 부딪쳐 다치던 아이들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곳은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의 장인들은 남아있는 불씨를 지피며, 바삐 돌아가는 미싱과 화려한 색감의 원단 더미에 파묻혀 활기차고 창조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맞아 변신을 거듭하며 묵묵히 일에 몰두하는 장인들의 삶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대전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머리말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린다. ‘○○백화점 세일 중’ 메시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의 옷 사랑은 유난하다. 유행이 계속 바뀌며 빠르게 소비되는 탓에 옷을 고쳐 입기보다는 원하는 옷을 새로 사 입는 게 더 편리한 사회. 우리는 패스트 패션 시대에 살고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로 일하면서 60대 이상의 노인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내가 만난 어르신 중 한 분은 “21살에 공장에서 일했는데, 힘들 때마다 맞춤 양장을 빼입고 고향에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했다.”라고 말했다. 70세가 훌쩍 넘은 반백 머리 할머니의 눈은 ‘양장 입은 모습이 성공의 바로미터’라고 말하고 있었다. 맞춤복 거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건, 대전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에 패션플랫폼을 지어 올린다고 지역 신문들이 앞다퉈 보도했던 기사를 읽은 뒤였다. 예산이 100억이라고 했다. 들어가는 예산이 10억이라도 놀랄 일인데 100억이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중촌동에서 살았다. 내 기억에 중촌동 맞춤복 거리는 허름한 골목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성복을 입고 자란 나에게 그곳은 어딘가 생뚱맞고 촌스럽고, 좀처럼 발길이 향해지지 않는 장소였다.

중촌동 지역은 80년대부터 아파트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로는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맞춤복 거리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게다가 대전시에서 100억 원의 돈을 들여 거리를 재정비한다니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맞춤복 장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명인의 솜씨로 일대일 맞춤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인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대전시에서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대전의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2011년에 패션특화거리로 지정한 사실도 알게 됐다. 중촌동 맞춤복 거리가 전국에서 원스톱 방식으로 맞춤복을 해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 사실을 알고 나자 한번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인 정신을 지키되 젊은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찾는 이가 많아진다. 대전시가 거리를 재정비하고 패션플랫폼을 운영하려는 이유가 청년과 장인들이 협력해 맞춤복 거리를 살릴 방안을 모색하려는 취지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맞춤복 거리를 지키는 장인들은 적게는 30년에서 많게는 50년까지 맞춤복을 지어왔고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많이 못 배운 채 일찍 생계 활동에 뛰어들었다.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결혼하고 자녀를 키웠다. 평생 재봉틀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힘든 시기에는 같은 여성 동료 장인들과 서로 버팀돌이 되어주며 이겨냈다. 인생고락을 함께 나눈 사이이기에 서로를 또 다른 가족 같은 공동체로 여기고 살았다.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기둥은 바로 고객이다. 이곳의 고객들은 특별하다. 10년 이상 옷을 해 입으며 장인들과 친구 혹은 언니 동생 사이로 정을 나누어 오고 있다. 맞춤복 거리의 상인과 고객들은 서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며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어떤 디자인을 원하세요?”라는 응대에서 시작된 관계가 어떻게 내밀한 속 이야기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을까?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로 50년 이상 존속되고 있는 맞춤복 거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보물을 캐는 심정으로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쌓인 이야기를 들려줄 여섯 명의 인터뷰이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샬롬의상실 김옥희 대표다. 김 대표는 중촌동패션상인협의회 회장이다. 동구 대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다 1989년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입성했다. 90년대 들어 중국 시장이 개방되고 세계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저가의 옷이 대량 생산돼 전 세계적으로 팔려나갔다. 맞춤복 시장은 큰 타격을 받았다. 김 대표는 중촌동패션상인협의회 회장을 맡아, 맞춤복 거리가 활성화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김 대표야말로 50년간 맞춤복 거리에 쌓인 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맞춤복 거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 김혜진 씨, 세 번째 인터뷰이는 대학 3년을 장인들과 함께 보내며 맞춤복 거리가 제2의 집이 되었다는 20대 청년 배재영 씨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그 명맥을 잇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튼 청년 사업가 김희은 씨다. 이 세 명은 모두 청년층이다. 장인들 대부분이 고령인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운명은 이러한 청년들의 손에 달려있다. 맞춤복 거리 장인들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정수 씨를 만났다. 지금은 구의원으로 동네 일을 더 체계적이고 넓게 챙기는 분이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고객 이수정 씨다. 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전직 고위공무원에게서 예전 동료 직원이었다는 그를 소개받았다. 전직 공무원 분은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관한 책을 쓴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이 거기서 옷을 맞춰 입었어요. 그 덕에 우리 집사람도 같이 가서 옷을 맞춰 입었지요.”라며 수정 씨를 소개해 주었다. 수정 씨와의 만남은 이 책을 쓰는 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맞춤복 거리를 지키는 장인들의 기술과 정신을 문화유산이라고 여겨 매번 이곳에서 옷을 맞춰 입는 고객이다. 기성복의 편리함을 마다하는 그에게서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마음이 무엇인지 배웠다.

최첨단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직접 옷을 만드는 사람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일구고 어려움을 불행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이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왔다. 이제 그들의 삶 한 부분을 들어보려 한다. 그들의 흔적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관련 통계 자료를 함께 담았다. 지금부터 맞춤복 거리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는 여섯 명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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