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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 p.29 “그거 로맨스 스캠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매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다르지. 로맨스 스캠은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야. 가애는 말하자면 훌륭한 영화감독이나 셰프와 같지.” --- p.38 임플란트 장기는 과거의 삽입형 의료 기구나 인공장기처럼 한 번에 구매할 수 없고 정기 구독을 해야 한다. 모든 업체가 그렇게 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국민건강관리증진에 관한 특별법 제13호는 표면적으로는 임플란트 장기가 너무 비싸서 쓰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때 입법자들은 환호하는 시민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야. --- p.53 고수명 시대의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유치했다. --- p.74 “아이를 싫어하니까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서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인 채로 끝나지 않고.” --- p.83 “사람은 너무 오래는 함께 살 수 없도록 만들어진 건지도 몰라.” --- p.182 우리에게는 몸 안에 새겨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노화란 세금과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몰랐다. --- p.111 기억을 완전히 잃는 건 아니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마치 책에서 한두 페이지를 찢어놓은 것처럼 기억이 한 군데씩 드문드문 끊길 뿐이었다. 그렇게 기억이 끊기면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그 공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성아의 상상은 늘 현실보다 나빴다. --- pp.190~191 어릴 때였으면 100년 넘게 살았으면 삶에 별 미련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살아도 살아도 아쉬움뿐이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쉬운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아쉬웠고, 억울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삶의 놀이공원에서 영원토록 놀고 있을 텐데 말이다. --- p.229 138억 년은 모든 과거를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 큼 긴 시간이다. 고작 100년씩 살았던 기억을 모아 138억 년을 채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기억이 필요할 것이다. --- 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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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젊은 SF작가가 선보이는
가장 먼 날의 사랑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언제나 늙음을 의식하고 사람들이 좋게 나이들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속한 코호트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소설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자 인터뷰 중)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서윤빈이 첫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선보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온은 100년 이상의 삶을 살아왔으나, 임플란트 장기 덕분에 신체적 노화를 거의 겪지 않은 트랜스휴먼이다. 1997년생, 현재 한국 문단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 중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하는 소설가 서윤빈은 100여 년의 기억을 가진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을 향해 과감한 발걸음을 뗀다. 심장 임플란트 1년 플랜: 105억 원 정교하고 현실적인 의료 디스토피아 작품의 배경은 이론적으로는 영생이 가능해진 미래다. 사람들은 몸속의 장기를 임플란트로 대체하고 새 피부를 얻어 젊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한다. 단, 문제는 여기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장기 임플란트를 유지하는 비용은 개인의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고, 특정한 시점에 이르면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국가인데, 국가는 개개인에게 ‘건강 점수’를 부과하여 생존의 값을 매긴다. 그렇게 결정된 비용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임플란트 구독 종료로 인하여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작품 속 세계에서 이는 이상하거나 드문 일이 아니다. “‘생명은 존엄한 것이며 그 무엇도 사람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같은 말”(pp. 225~226)을 누구도 믿지 않는 세계, 생명을 유지하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디스토피아가 도래한 것이다. 주 3회 이상 음주하거나 한 번 음주하더라도 과음하면 -1점.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지 않으면 -1점······ 수많은 리스트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점은 적고 감점만 수두룩하다. 부당한 생명 정치라고 반발하는 이들이 없었던 건 아니나, 늘 그렇듯 그건 반발하는 이들이 바르게 살지 않은 탓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컸다. (p. 54) 사실 작품 속의 세계는 2024년의 한국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 중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정부, 낮아지는 출생률마저 개인의 이기심 혹은 불성실함에서 원인을 찾는 한국 사회의 풍조는 작품 속 세계가 “정말로 가능한 미래 중 한 가닥”(작가 인터뷰 중)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 망가진 세계에 대한 낭만적 회복 주인공 유온은 ‘가애’라는 방식으로 삶을 연장해온 인물이다. 가애란, 임플란트 장기 유지 비용 때문에 죽음을 목전에 둔 이에게 마지막 연인이 되어준 다음, 이들이 죽으면 유산을 얻어내는 일을 뜻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장기 임플란트 구독 시스템, 길어진 수명과 고립된 개인들이 빚어낸, 미래형 직업 혹은 관계인 셈이다. 그러나 직업적 냉정함을 유지해왔던 유온의 가애 인생에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난다.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내비치는 ‘성아’에게서 예기치 못한 끌림을 느낀다. 성아는 유온과 마찬가지로 가애이며 유온보다 젊은 인물이므로, 유산을 남겨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유온에게 이 감정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한번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유온은 좀처럼 예전의 “사랑받는 재주가 있”(p. 35)는 남자로 돌아가지 못한다. 유온은 비로소 자신이 과거의 “모든 순간, 나는 내가 아니었”(p. 248)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녹색이 살짝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운이 별빛을 머금었다가 내보내듯 한 시절을 지나온 눈이었다. 나는 내가 지금의 나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258) 고령화와 자본화된 의료 시스템, 개인의 신체마저 자신의 노력과 관리의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사회가 빚어낼 수 있는 고요한 디스토피아를 구현한 이 소설은 그와 함께 가장 낭만적인 방식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SF문학장의 새로운 기수 서윤빈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조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긍정을 통해 자신만의 미래상을 완성시키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과학소설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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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하는 이 소설은, 장기마저 구독 시스템으로 편입된 초고령화 시대의 초상을 그린다. 얼핏 미래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현실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사랑보다는 생존이 먼저’인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의심 없이 사랑할 것인가? 어쩌면 의심 없이 사랑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혹은 사랑과 의심은 한 몸이고, 그 불확실함을 껴안을 때 희미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심장을 파고드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존재통에 관한 환상적이고 더없이 지적인 이야기다. - 문보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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