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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피안 / 이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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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선악의 피안
철학자의 편견에 대하여
자유정신
종교적인 것
잠언과 간주곡
도덕의 박물학
우리의 학자들
우리의 미덕
민족과 조국
고귀란 무엇인가

2.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썼는가?
나는 어찌하여 이런 운명인가?

저자 소개 1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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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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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니체
1844년 독일의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이프찌히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1869년 24세 때 바젤대학에 초청되어 언어학을 강의하였으며, 이듬해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일생을 사색과 저술로 보내는 한편, 심한 불면증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끝에 1889년 정신병까지 겹쳐 1900년 독신으로 생애를 마쳤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1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5212192

책 속으로

진리에 대한 의지 - 이것은 앞으로 우리를 많은 모험에 유인할 것이다. 모든 철학자는 저 유명한 성실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해 왔다. 이 진리에 대한 의지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었던가! 얼마나 괴상하고 고약하고 의아스러운 문제들을! 그것은 이미 하나의 옛말이 되어 버렸다. - 그리고 그것은 지금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지 않는가? 우리가 드디어 이것을 시기하고 인내력을 잃고 등을 돌리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스핑크스를 향해 우리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가? 우리 중에서 '진리'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은 대체 누구일까?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이 의지의 근원을 알기 위해 이 이문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더욱 근본적인 의문 앞에 멈춰선 것이다. 그리고 이 의지에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물었다. - 우리는 진리를 원한다. 그리고 어째서, 비진리는 원하지 않는가? 불확실을 원하지 않는가?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 여기에서는 또 진리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혹은 우리 쪽에서 이 문제 앞에 걸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양자중에서 어느 쪽이 이집트에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스핑크스 였을까? 어쨌든 여기에 의문과 의문부가 서로 마주쳤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제기된 적이 없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보고 인정하고 감히 제기한 것이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모험이 있다. 더 큰 모험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의 모험이.....

--- p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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