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임화선의 다른 상품
|
귀양살이를 하는 신분이었지만 예조 정랑의 벼슬을 지낸 정 선비의 학식과 인품은 마을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게다가 누명을 쓰고 유배되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관직에 복귀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 p.13 고개를 조아리긴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하느작하느작 춤사위가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번 풍물패의 공연을 본 뒤로 밤이나 낮이나 장구 소리가 강무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들썩거렸다. 발걸음도 사뿐사뿐 가벼워졌다. 그렇게 춤추는 일에 빠져 있었으니 옆 마을이든 윗마을이든 풍물패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쫓아가서 구경을 하느라 글공부는 제쳐놓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강무의 행동을 정 선비가 모를 리 없었다. --- p.18 “오호라, 네가 춤 생각에 빠져 있으니 이 책이 손에 잡힌 게로구나. 이것은 궁중 무용을 설명해 놓은 《악학궤범》이란 책이다.” 강무는 책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붉은 가면을 쓴 채 오방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었다. --- p.22 “네. 저는 궁중 무동이 되고 싶어요…….” 강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춤추는 게 좋다고, 장구소리를 들으면 자꾸 가슴이 콩닥거린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그냥 입속으로 꿀꺽 삼켜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돌아가거라!” --- p.44 강무는 장구 장단에 맞춰 당실당실 어깨춤을 추었다. 발걸음을 사뿐사뿐 걷다가 빙그르르 원을 돌자 온몸에서 흥이 배어나왔다. 신이 났다. 밭두렁에서, 굴봉 언덕에서, 혼자 추어 보던 춤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낼 수 있다니! 춤사위가 점점 커졌다.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고 팔을 너울거렸다. 사마귀가 풀밭을 옮겨 다니듯 가벼우면서도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 p.61 “마을에서 바느질 제일 잘하는 아낙에게 부탁해 지은 것이다. 춤이란 게 참 이상도 하지. 그날 밤, 달빛 아래서 춤추는 네 모습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지더구나. 덕분에 내 병이 쉽게 나았단다. 한동안 네 춤이 그리워질 것 같구나.” --- p.84 “그렇지! 아무도 우리 춤을 따라하지 못하지. 얼쑤!” 고개를 까딱거리던 육손이가 같이 팔을 너울거렸다. 그러고 보니 육손이와 그의 춤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춤이었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것도, 팔이 휘어져 있는 것도 문제될 게 없었다. 두 사람의 춤은 살아 있었다. --- p.90 순간, 심사를 보는 관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강하면서 부드럽고, 빠른 것 같으면서도 고요한 춤이었다. 어린 무동의 춤사위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해금의 현이 “애앵, 애앵” 부드럽게 울려 퍼지자 그제서야 강무는 땅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모두들 얼이 빠진 듯 강무를 바라보았다 --- p.115 옥 선생이 들고 있던 종이를 휘리릭 펼쳐 보였다. 그동안 무동들이 연습했던 춤 동작과 연습 시간 등을 꼼꼼히 적어둔 일지였다. 무동들의 이름 밑에 그어진 표식을 보여 주자 몇몇 아이들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일지를 확인한 귀돌이가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한눈에 보아도 강무 이름 아래에 그어진 표식이 다른 아이들의 곱절은 넘었다. --- p.137 강무와 귀돌이를 비롯해서 다섯 명의 무동들이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황색 무의를 입은 강무가 중앙에 서자 청색 무의를 입은 귀돌이가 동쪽에 섰다. 그러자 백색, 흑색, 홍색 무의를 입은 무동들도 각각 서쪽, 북쪽, 남쪽을 향해 섰다. --- p.145 |
|
곰보 자국 가득한 열세 살 바닷가 마을 소년의 수채화 같은 성장기
강무는 바닷가 해풍마을에서 살고 있는 열세 살 소년이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돌림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못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간다. 할머니는 강무를 아껴주지만 강무 마음속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외로움을 느낀다. 게다가 얼굴에는 돌림병 때문에 얻은 곰보 자국으로 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강무는 대놓고 따지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다. 그런 강무에게 어느 날 꿈이 생긴다. 바로 춤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귀양살이 중인 훈장님은 그런 강무에게 “춤은 공부가 될 수 없으며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뿐”이라며 나무라지만 어느새 강무의 마음속에는 책에서 본 처용무를 추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 무동을 뽑는다는 소문을 듣는다. 강무는 친구 홍임이의 가야금 스승인 소해 선생을 다짜고짜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만 당하다가, 뒤늦게 강무의 열정을 알게 된 소해 선생에게 춤동작을 배운다. 그렇게 무동 경연에 지원하지만 강무는 자신감 있게 춤사위를 이어가지 못해 결국 떨어지고 만다. 경연에서 악공으로 붙은 홍임이는 강무를 위로해 준다. 가을이 되자 다시 역병이 돌고, 강무의 할머니는 역병에 스러지고 만다. 슬픔에 빠진 강무에게 훈장님은 강무의 아버지가 풍랑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살아 있으며 조만간 돌아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돌아온 아버지는 강무에게 ‘복된 춤’을 추라며 격려해 주고, 강무는 다시 무동을 뽑는 경연에 참석해 당당히 합격한다. 궁궐로 들어와 장악원에서 머물게 된 강무는 다른 무동들보다 더 오래 열심히 연습하며 실력을 다지고, 마침내 임금님 앞에서 공연하는 진연에서 오방처용무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강무는 진연에서 귀양이 풀려 서울로 떠났던 훈장님과 어엿한 악공이 된 홍임이를 만난다. 강무는 오방처용무를 추면서 지금까지의 춤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복된 춤을 추겠다고 마음먹는다. 강무에게 춤은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온전히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움을 춤으로 승화시킨 강무의 몸짓은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전하는 ‘복춤’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엄마를 잃은 슬픔과 역병의 상처를 견뎌낸 강무는 마침내 그 꿈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