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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 만행(萬 行), 나는 달린다 베트남 해우소 프로젝트 베트남과의 인연, 토안 안녕하세요, 이주노동자 스리랑카에서 온 스님과 다국적 부처님 신부들에게 잘해주세요 산부인과에 가다 새마을금고 잔고 0원 스님도 고기를 드세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무국적 아이들 울트라마라톤, 일본 1,000킬로미터 2부 ∥ 이주민 공동체의 꿈 아빠 스님 복지사 자격증을 딴 연꽃 같은 스님들 넘어져도 괜찮아, 오뚜기쉼터 야단법석 제주 라이딩 두만강을 건너온 지현이의 희망 달팽이 모자원에 찾아온 봄 독일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3부 ∥ 출가 이야기 불교 동아리에서 동국대까지 세상에 내어주고 얻은 눈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대둔사 부주지, 개 네 마리 진오는, 참 자비롭구나 오복 스님 ㆍ 진오 스님에 대하여 임동창/ 박원순/ 김명현/ 정목/ 김기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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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렸을까? 마라톤 첫날 5시간 만에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은주는 영상 38도. 수분이 계속 땀으로 배출되어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자 나중에는 눈앞의 길과 나무가 나에게 달려드는 환각에 시달렸다. 연신 눈으로 흘러드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얼굴을 꼬집기도 하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올해로 3년, 지금 이곳은 베트남 북부 타이응웬성 지역이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를 들고 달리는데 ‘코리안’을 알아본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p.17 '베트남 해우소 프로젝트' 중에서 “스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청년이 모자를 벗자 나는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왼쪽 뇌의 3분의 1을 잘라낸 토안의 얼굴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모습에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사람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20대의 젊은 청년은 오롯이 혼자 감내하고 있었다. 그 싸움이 얼마나 처절할지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나는 어떤 말도 선뜻 건넬 수 없었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울고 웃으며 아파하는 것이 인간일진대 안은 벌써 그 고통을 잊은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 너무 큰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에서 도피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힘들기 때문이다. 토안도 그런 과정을 겪는 게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pp.31~32 '베트남과의 인연, 토안' 중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사고로 다치면 사업주가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아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은 물론 일하지 않았다고 월급이 깎이기 일쑤였다. 심지어 노동력이 없어졌다고 공장에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소화제를 먹이거나, 많이 먹어서 체한 거니까 한 끼 굶으면 된다고 했단다. 공장 구내식당에서 고추장과 김치를 강요해 위장병을 앓는 노동자도 있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식으로 먹으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과 다름없다. 누군가 우리에게 밥을 먹지 말고 빵만 먹으라고 한다면, 김치 대신 버터만 먹으라고 한다면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들 입맛에 맞는 식단이 필요했다. p.51 '안녕하세요, 이주노동자' 중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들은 누군가의 귀한 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소중한 누이이며 동생이다.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딸이며 멀리 떠나보낸 까닭에 손가락 중에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라고 혹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딸이기에 더욱 그렇다. 두려움 속에서도 잘살아보겠다고 희망을 품고 온 그녀들을 향해 어떤 이들은 ‘너를 데려오기 위해 우리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아!’라며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이해할 정도가 되면 이주여성들은 뒤늦은 모욕감으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문화적 차이를 오해해 주먹질을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분노를 넘어 좌절감마저 들곤 한다. pp.74~75 '신부들에게 잘해주세요' 중에서 은행에서 이자 독촉 전화가 걸려오면 이러려고 출가한 것이 아닌데 하는 회의가 밀려들곤 한다. 나라도 구제하지 못하는 다문화 문제를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더 나쁘다고 설법하신 은사 스님 말씀을 되새긴다. 방마다 꺼진 전등도 다시 살피고 세탁한 물도 다시 받아 걸레 헹구는 데 사용하는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 스님이 무슨 돈이 있어서 베트남까지 가서 달린대? 후원금을 비행기 삯으로 쓰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한다고 한다. 매달 지급되는 국가유공자 연금으로 개인 경비를 사용해왔는데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너무 화가 났다. p.99 '새마을금고 잔고 0원' 중에서 그래, 아무도 우리를 몰라줘도 된다. 다만 언젠가 일본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진오 스님은 잊혀져도 한국 스님과 한국인 다섯 사람이 일본 민족을 위해 1,000킬로미터를 달렸다고 언젠가 되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한일 우호증진을 위한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일으키며 다시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42.195킬로미터가 일반적인 마라톤 풀코스라면 지금처럼 장거리로 달리는 걸 울트라마라톤이라고 한다. 울트라마라톤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는데 특정 거리 달리기와 제한된 시간 동안 달리기가 있다. 우리는 일본에서 1,000킬로미터를 달리는 먼 거리를 선택했다. p.140 '울트라마라톤, 일본 1,000킬로미터' 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세속에 사는 사람들이 보살임을 알게 되었다.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로 ‘위로는 부처님의 법을 받들고 아래로는 중생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는 자’를 말한다. 불교에는 여러 보살이 있는데 대표적인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현(化現)으로 불린다. 관세음보살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어 보통 절에서 여성 신도들을 부를 때 보살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성 불자들을 부르는 보통 명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p.161 '아빠 스님' 중에서 이곳 아이들을 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주위 환경과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했다. 그러나 열여섯 살 내지 열입곱 살 즈음에 남한으로 온 학생들은 북에서나 중국, 제3국에서 배웠던 교과과정과 우리나라의 교과과정이 너무나 달라 따라가기 힘들어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또래라도 우수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학습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의 편차를 줄여주는 일이 쉼터의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p.179 '넘어져도 괜찮아, 오뚜기쉼터' 중에서 완주의 기쁨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한동안 자전거 타기를 거부했다. 힘든 라이딩 이후 아이들의 자매애는 전우애로 옮아갔고 전보다 감정 표현이 더 분명해졌다. 가까운 미래에 나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을 달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얘기를 들으면 당장 머리에 띠를 두르고 궐기대회를 열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마지막 날 밤, 아이들과 시원한 카페에 가서 밤바다를 감상했다. 한참 먹을 나이여서 팥과 과일이 듬뿍 들어간 빙수를 1인당 하나씩 시켜주었다. “얘들아, 고생 많았고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언젠가 오늘의 힘든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간 서운했던 거 지금 내게 다 말하고, 마음 풀어라. 지금 먹는 빙수는 스님이 쏜다." p.200 '야단법석 제주 라이딩' 중에서 파독광부들 역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났던 교민 한 분은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먹고사는 게 어려워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함께 온 사람들 대부분이 대졸자였고 육체노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1,400미터 막장에 내려가면 덩치가 큰 독일 광부들 대신 한국 광부들이 무릎을 꿇고 곡괭이로 굴을 파가며 더 깊숙이 내려갔다. 그러는 와중에 사망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p.236 '독일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중에서 레이더 기지에 법회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새벽 4시 예불을 올리고 부대를 나와 차를 몰고 외진 길을 가다 눈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군 병원에 이송되어 있었다. 백미러가 내 왼쪽 눈을 찔렀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인지 나는 곧 서울의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주위는 온통 깜깜한 암흑이었다. 두 눈이 붕대로 감겨 있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 출가자라고 해도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p.257 '세상에 내어주고 얻은 눈' 중에서 실상사에서 잠시 공부를 할 때였다. 지리산은 웅장한 산세가 그렇듯 겨울이면 다른 지역보다 더 추웠다. 아직 겨울 같은 초봄, 산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어느 날, 공양간 음식 냄새를 따라 새끼 고양이가 스님들 공간으로 들어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미가 불안한 눈으로 새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았던 내가 손을 내밀자 새끼 고양이는 도망을 갔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길 여러 번, 나는 털신을 벗어놓는 댓돌 옆에 두부전을 잘게 부숴 놓아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부터 새끼 고양이는 하루에 서너 번씩 내가 놓아둔 음식을 먹으러 나타났다. 하루는 공부를 마치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새끼 고양이가 내가 벗어둔 털신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쉬고 있었다. 이 모양을 가만히 보시던 스승님이 한마디하셨다. “진오는 참, 자비롭구나.” pp.295~296 '진오는, 참 자비롭구나' 중에서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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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8000킬로미터, 철인 스님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길 위를 달린 기록
“부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장소와 인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부처가 계시는 곳이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내 스스로도 수없이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여기서 멈춘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새벽 2시, 굽이굽이 이어진 깊은 산골을 달리다 보면 간혹 전봇대가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아슬아슬할 때가 있다. 졸음이 밀려들면서 환각 상태가 찾아오고 앞이 보이지 않아 어지럼증이 도진다. 발은 물집이 잡혀 엉망이 된다. 한 발 디디기도 어려운 몸을 끌고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버티는 순간이다. 졸음이 몰려들면 허벅지를 꼬집고 뺨을 때리기도 하면서 달린다. 정말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나 싶어 눈물이 솟구칠 때가 있다.” ㆍ철인 스님, 그는 왜 달리는 걸까? -그에게 달리기는 기도요, 수행이다 달리기하는 스님이 있다. 달리기를 직업으로 삼은 것도 아니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저토록 지난한 고통 속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반복해가며 고행에 다름 아닌 달리기를 한다. 그는 구미 대둔사 주지로 있는 진오 스님이다. 그가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2002년. 다음 해에는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했다. 그러다 보니 별난 스님으로 TV에 소개되기도 하면서 달리기하는 스님으로 알려졌고, ‘철인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달리는지를 자주 묻는다. 승복을 입고 깊은 산중에 있어야 할 스님이 속세로 나와 달리기를 하니 궁금한 것이다. 그는 달리면서 1킬로미터당 100원 또는 200원의 후원금을 받고, 이 후원금이 모여 이주민노동자들, 이주민여성들, 통일(탈북)아이들의 쉼터와 먹거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러나 그가 단지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만 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달리는 일은 일종의 화두이며 수행이다. 부처님은 그에게 달릴 수밖에 없는 인연들을 보내주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머리 한쪽을 잘라내야 했던 베트남 청년 토안과의 만남은 인연이 깊다. 토안은 퇴근 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불법 유턴하는 자가용에 부딪혀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한 토안은 가해자와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조건으로 700만 원에 합의했고, 그 돈은 모두 베트남 가족들에게 보내졌다. 당시 토안은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진오 스님은 ‘만일 한국사람이 교통사고 피해를 당했다면 그것도 뇌를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은 상태라면 그 정도 돈으로 형사합의를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한다. 토안뿐 아니라 코리안 드림을 품고 우리나라에 온 많은 이주민노동자와 이주민여성들, 통일아이들이 각종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불이익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런 이들과의 인연이 그에게는 모두 달려야만 하는 이유이자 화두가 된 것이다. 부처님은 달리라고 설법하신 적이 없지만 ‘자비’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기셨고, 극한의 고통을 반복하며 달리기를 하는 것이 그가 선택한 수행의 방법이다. 또한 산중에 있지 않고 산 밑으로 내려와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것도 부처님 제자로서의 실천이라 믿기 때문에 그는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ㆍ중생 구제가 법당 예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다 진오 스님은 고등학교 시절, 출가(出家)를 결심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진학해 부처님 말씀을 배웠다. 출가자로 34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다른 자신을 만났고, 수없이 변해가는 세상과 만났다. 그가 보았던 삶의 현장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낯선 남의 나라로 건너와 편견과 오해, 냉대 속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목숨을 걸고 탈출한 뒤 남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신음하는 통일아이들이 있었으며, 가정폭력과 이혼, 사별로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 내몰린 다문화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도가 아닌 보다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복지 센터를 세운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중생 구제와 구도행위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스님은 산에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있어야 할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구도자로서 수행하는 길이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최근 이러한 종교적 신념과 그간의 행보를 담아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기존에 스님들이 주로 다뤄온 마음 다스리기나 상처 치유하기 등의 힐링 에세이와는 사뭇 다른 색채의 책이다. 이 책은 그가 지난하게 밟아온 수행의 기록이며, 상처받고 고통 속에 버려진 우리 이웃과 그들을 외면한 우리 자신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로 짐작할 수 있듯이 산속에서 염불이나 외워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종교 철학이다. 어떤 스님은 산사에서 공부와 명상을 통해 더 큰 가르침을 얻기도 하고 어떤 스님은 오랜 시간 묵언 수행하며 정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세속에서 사람들과 섞여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실천하는 수행이다. 그는 베트남으로 건너가 ‘해우소 108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황거(皇居) 공원에서 출발,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이시노마끼시까지 왕복 1,00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리고 2013년 한독수교 130주년, 그리고 파독광부 50주년을 맞아 독일의 옛 수도 본에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700킬로미터를 달렸다. 그가 부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장소와 인종은 무의미하다. 이 책에는 지난 12년간 끊임없이 달려온 그의 삶과 그를 달리게 했던 숱한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달리기를 함으로써 그가 만들어온 남다른 수행의 과정이 담겨 있다. 부처나 예수가 그리고 진리가 반드시 절이나 교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진정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주변에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성인들이 설파한 말씀을 실천하는 일임을 그는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실천을 통해 몸소 보여준다. 그가 자신과 이웃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쓴 이 책을 읽다 보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비’와 ‘사랑’을 배울 수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이 반드시 종교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ㆍ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비’와 ‘사랑’은 인종, 국가, 계층을 뛰어넘는다 이 책을 마감하던 중, 대한민국에는 온 국민이 통곡할 비극이 일어났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국민은 국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아이들은 어른이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2014년 4월 19일, 막바지 원고작업을 하던 와중에 진오 스님은 ‘아이들아 미안하다’라는 표어를 걸고 108킬로미터를 달렸다. 108은 인간이 갖는 번뇌의 숫자를 나타내기에 불가에선 참회와 발원을 다지는 수행법으로 108배를 하고, 108킬로미터 달리기도 여기서 착안했다. 물론 한 사람의 종교인이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엄청난 국가적 재난이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참회와 반성을 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사죄해야 하기에 그날도 그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재난 시스템만 부재한 것이 아니다. 이미 말한 이주민노동자, 이주민여성, 통일아이들, 그외 소외된 채 고통받는 숱한 이들을 위한 대비책 역시 부재하다. 그리고 국가가 맡아서 해결해줘야 할 문제들이 본인의 관할이 아니란 이유로, 경제적 효용성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단 이유로 거부된 채 방치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론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들조차 인종이, 종교가, 언어가, 계층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세월호 침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판박이인 것이다. 그와 동국대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정목 스님은 그를 생각하면 오래전에 봤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진오 스님은 혼자 포레스트 검프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사랑과 관심으로 동참해주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왜 모금액이 1킬로미터에 100원이냐고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찰을 지을 때도, 여러 사람들의 손길과 정성이 모일 때 더 좋은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이 10억 원을 내서 짓는 절보다 열 사람이 1억 원씩 내서 짓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1,000명이 100만 원씩 내서 짓는 것이 낫다. 더 나아가 1만 명이 적은 돈을 모아 사찰을 짓는다면 더 무량한 공덕이 쌓이는 것이다. 이렇듯 소액이지만 100원, 200원이 모여 누군가를 돕는 희망의 밑돌이 될 수 있다. 좋은 마음들이 모여 좋은 결실을 맺자는 의미로 나는 100원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2011년 3월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처음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만난 진오 스님의 눈빛이 맑고 밝고 웅숭깊었음을 회고하며, 마라톤 1킬로미터에 100원 모금이라는 기발한 방법을 창안해낸 것에 놀라워했다. 박 시장은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말처럼 착한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는 이들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한 명의 작은 움직임이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 자극이 되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고, 망치로 머리와 가슴에 쿵하는 깨우침을 줄 수 있다. 그런 희망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음을, 지금부터 작게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진오 스님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몸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달리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