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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한글판 + 독문판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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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글판
제1부
제2부

독문판
Kapitel 1
Kapitel 2

저자 소개 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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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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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윈저 조 이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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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sor Joe Innis

저자 윈저 조 이니스는 미국의 신인상주의 화가로, 신선한 화풍, 탁월한 감각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조각가, 저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웨스트코스트〉신문사에서 정치부 필자, 편집자,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한국, 프랑스, 포르투갈, 터키, 일본, 영국, 멕시코 등지에서 생활하고 전시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멕시코 산미겔 인스티투토 아옌데(과나하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곳에서 고급예술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예술가를 위한 대중적인 수준의 조언을 담은 『이름난 화가가 되고도 그림을 그리는 법』(2000)
저자 윈저 조 이니스는 미국의 신인상주의 화가로, 신선한 화풍, 탁월한 감각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조각가, 저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웨스트코스트〉신문사에서 정치부 필자, 편집자,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한국, 프랑스, 포르투갈, 터키, 일본, 영국, 멕시코 등지에서 생활하고 전시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멕시코 산미겔 인스티투토 아옌데(과나하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곳에서 고급예술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예술가를 위한 대중적인 수준의 조언을 담은 『이름난 화가가 되고도 그림을 그리는 법』(2000) 『다시 떠오르다』(2000) 『이국의 순수-코아테펙 소녀들』(2008) 등을 집필했다. 현재 그의 이름은 저명한 인명사전 『후즈 후 인 아메리카』와 『게일 현대 작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개인소장은 물론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삶은 시각예술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국경을 넘어 인간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는 삶이었다. 각국의 인사들이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일본의 미카사 왕자와 고 이방자 황태자비(일본 황족 나시모토 마사코 공주)도 그의 후원자였다. 이방자는 그의 소품〈베터 타임즈〉를 수록한 작품집에 소개글을 쓰기도 했다.
국제적인 미술 비평가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에두아르도 시보리 미술관의 예술감독인 오시리스 치에리코 박사는 이니스의 초기 작품에 대한 비평을 출간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윈저 조 이니스는 집요하고 열정적으로 빛을 쫓는다. 치에리코 박사는 빛과 색의 관계를, 실재에 가하는 빛의 작용을 탐구한다. 굳이 요약하자면 그는 인상주의의 충실한 생존자다. 그는 미술사에서 19세기의 총아로 여기는 ‘인상’을 드러내기 위해 그 원류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추적했다가 그것을 훨씬 먼 미래에 투영한다.” 치에리코 박사는 이 화가의 작품에 내재된 요소들이 컨스터블, 세잔, 모네, 르누아르, 휘슬러, 부댕, 용킨트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최근에는 미국 비평계의 거두이자 뉴욕주립대학 석좌교수인 도널드 커스핏도 이니스의 감상여행기 《이국의 순수》에 대한 비평에서 그와 같은 의견을 표했다. “윈저는 단순히 고야의 것을 닮았다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워싱턴D.C. 어메리칸대학 정치학과 명예교수 제프 피셸 박사는 이니스의 삶과 작품을 조망하는 전기를 집필, 출간했다. 그밖에 윈저 조 이니스는〈아티스트 매거진〉에 매달 칼럼을 연재했고,〈아트 앤드 앤티크스〉〈포우진〉〈엘르〉〈마리클레르〉〈캐나디언 아트〉등 미국 전국 규모 잡지 및 세계 전역에 발행되는 신문들에 자신의 글과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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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헤세의 『헤세의 여행』, 『잠 못 이루는 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 『소송』, 『변신 외』,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헬렌 켈러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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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5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378g | 110*175*30mm
ISBN13
9788998450113

책 속으로

그건 그렇고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네. 고독은 낙원 같은 이 고장에서 내 마음에 값진 진정제가 되고 있어. 그리고 청춘의 이 계절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내 마음을 온갖 풍요로움으로 따뜻하게 해준다네. 나무 한 그루, 울타리 하나하나가 활짝 핀 꽃다발 같아. 그러니 풍뎅이가 되어, 향기의 바닷속을 떠다니며 온갖 양분을 얻고 싶은 심정이라네 p12-p13

그래,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목소리의 조화로움, 눈빛에 담긴 은밀한 열정을 생생히 묘사하려면 가장 위대한 시인의 재능을 지녀야 할 것 같아. 아니, 그의 존재 전체와 표정에서 풍기는 사랑스러운 분위기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그러니 내가 다시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어설프기 짝이 없어. 그는 여주인과의 관계를 내가 짝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그녀의 행실을 나쁘게 보지나 않을까 우려했는데, 특히 그 모습에 내 마음이 움직였어. 그는 그녀의 자태와 몸매에 대해 말했어. 젊은 매력은 없지만 그 몸매가 자기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사로잡는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내 영혼의 깊디깊은 곳에서만 재현할 수 있을 따름이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절실한 욕망과 뜨겁고 간절한 갈망이 이토록 순수하게 표현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야. 아니, 어쩌면 이처럼 순수하게 표현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꿈을 꿔본 적도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이러한 순진무구함과 진실함을 기억에 떠올리자니 내 영혼의 깊디깊은 곳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어디를 가든 이 충실하고 애정 어린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나 자신에게도 그 불길이 옮겨 붙은 듯 애간장이 타며 못 견딜 것 같아. 이런 말을 한다고 나를 책망하지는 말게. p29-p30

빌헬름, 나는 자신을 확장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며 세상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인간의 내부에 깃든 욕망에 대해 갖가지 생각을 해보았네. 그런가 하면 제한된 환경에 기꺼이 순응하고 정해진 관습을 따라가며 좌우 어느 쪽에도 신경 쓰지 않으려는 내적인 충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 p45-p46


인간은 아무리 기상천외한 것이라도 자꾸 설득하면 믿게 되어 있어. 하지만 또한 믿는 것은 곧장 단단히 붙어버리지. 그러니 그것을 다시 긁어내거나 지워버리려고 하다간 혼이 나게 마련이지!
p82

사랑하는 로테, 이렇게 심란한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그대가 본다면! 내 감각이 얼마나 메말라 버렸는지! 한 순간도 마음이 충만한 적이 없고,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마치 요지경 앞에 선 기분입니다. 난쟁이 인형과 말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헛것을 보고 있지 않나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나는 함께 놀이에 끼어듭니다. 오히려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하지요. p107

베르터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지낼 수는 없다!" 자신의 말로 베르터가 끔찍한 상황에 빠진 것을 감지한 로테는 온갖 질문을 하며 그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알겠어요, 로테!" 이윽고 베르터가 소리쳤습니다.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을 겁니다!" p170

"당신은 내가 찾아가리라고 기대하지 않겠지요! 내가 당신 말에 따라 크리스마스이브에나 다시 당신을 보리라고 생각하겠지요. 오, 로테! 오늘 아니면 영영 다시 보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당신은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덜덜 떨면서 사랑스러운 눈물로 이 종이를 적시겠지요. 나는 하려고 하고, 해야만 합니다! 아, 결심을 하고 나니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모르겠어요." p175

오, 날 용서해줘요! 날 용서해줘요! 어제 일 말이오!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어야 했는데요! 오, 그대 천사여!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전혀 의심의 여지없이 크나큰 희열이 나의 마음 깊디깊은 곳까지 타올랐습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다니! 그녀가 나를 사랑하다니! 그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성스러운 불꽃이 아직 내 입술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새로운 따뜻한 희열이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날 용서해줘요! 날 용서해줘요! p193

"알베르트, 나는 당신의 우정을 악으로 갚았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당신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고, 부부 사이의 불신을 키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끝을 내려고 합니다. 아, 내가 죽어 당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베르트! 알베르트! 천사 같은 부인을 행복하게 해줘요!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길 빕니다!" p200-p201

---본문

출판사 리뷰

독일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인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라떼 클래식 다섯 번 째 작품. 원문 감동 그대로 독문판 수록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제1부는 괴테가 베츨라에서 여름날에 보낸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민감한 젊은이인 베르터는 몇 가지 유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소도시 발하임으로 온다. 그는 어느 날 무도회에서 영지 주무관의 딸인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베르터는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베르터는 행복감뿐만 아니라 격정 때문에 로테의 약혼자 모습을 보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괴테와는 달리 베르터는 곧 다시 로테 곁으로 돌아온다. 독자들은 베츨라에서 일어난 일과 소설에서 벌어진 일의 유사성에 관심을 가졌지만, 괴테는 그들이 소설과 자전적 사실에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것에 곤혹스러워했다.

그런데 우리는 베르터가 곧 괴테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제1부에서는 괴테의 경험이 소재가 되었다면, 제2부에서는 괴테가 아닌 예루잘렘의 운명이 다루어진다. 허구적 소설에서 현실을 문학으로 재창조했기 때문에 괴테의 체험은 가공되어 문학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러나 괴테가 현실을 문학으로 바꿔놓은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고지식한 독자들도 있었다. 1776년 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예루잘렘의 무덤까지 행진을 했다. 그리고 전 유럽에서 순례자들이 그의 무덤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 이후 자살 사건이 잇따랐다.

그렇지만 그들이 괴테의 소설 때문에 자살했다고 볼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며 작가 빌란트는 소설의 상상력이 자살을 옹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괴테 자신은 오토 황제처럼 정신의 위대성과 자유를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세상을 떠나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불쾌감과 권태감에 사로잡혀 힘든 삶을 영위하면서 더 이상 삶을 견딜 수 없게 되면 마음대로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 탓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소설의 외적 차원을 구성하는 것이고, 은밀한 내적 차원에서는 여동생 코르넬리아가 결혼한 것에 대한 괴테의 트라우마가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773년 11월 1일 코르넬리아는 괴테의 친구 슐로서와 결혼했는데 괴테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에 괴테가 릴리 쇠네만과 결혼하려 할 때는 코르넬리아 역시도 양쪽 집안 분위기가 서로 맞지 않다며 극력 반대해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다. 심층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로테의 배후에는 괴테의 여동생이 숨어 있고, 그렇다면 괴테의 실제 연적은 케스트너나 브렌타노가 아니라 슐로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집필은 괴테에게 임박한 파국의 저지와 여동생과의 내밀한 관계의 가공뿐만 아니라 자기 치유의 목적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자의 작품 해석중에서

보고 읽는 이의 감정과 원문의 감동을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책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 고급스러움을 담은 책
장인의 정신을 담아서 한 권 한 권 수작업으로 만든 정성이 깃든 책

펭귄카페의 ‘라떼 클래식’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책 뒤편에 이 시대 마지막 신인상파 화가인 윈저 조 이니스의 그림을 실어서, 텍스트만으로 그렸던 상상 속 이미지와 윈저의 매혹적인 색채를 결합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 비평가 오리시느 체리코가 “윈저의 그림은 색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가르쳐준다”며 극찬할 정도로, 그의 매혹적인 색채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속 감동과 울림을 한층 높여준다. 특히 소설을 읽고 그림을 연이어 보면 소설에서 느꼈던 느낌과 여운이 그림으로 전이되면서, 텍스트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경험과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원서로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한글과 함께 해당 작품의 원어(독문)를 함께 수록하였다. 특히 한글은 원문의 감동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독일 번역 전문가로 독일소설과 인문서를 주로 옮겨온 홍성광 씨의 유려한 문체가 오롯이 녹아있다. 단순히 학습용 해설이 아닌, 원문을 해치지 않고 한글의 풍부한 단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이 책은 아름다운 내용만큼 정성을 다해 아름다운 그릇에 담았다. 펭귄카페의 ‘라떼 클래식 시리즈’는 핸드백에 들어갈 정도의 작고 가볍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초경량 특수 합판과 종이를 사용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자 하는 독자가 쉽게 휴대할 수 있도록 했다. 책 디자인 또한 고품격의 내용에 걸맞게 고급스러움을 지향하여 만들었다. ‘소장용’ 또는 ‘선물용’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 권 한 권 장인 정신을 담아서, 읽는 이의 기쁨과 즐거움을 자연스레 자아내고 있다.

리뷰/한줄평1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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