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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진정한 황홀은 무욕의 상태를 재발견하는 것ㆍ9
추천의 글·용타 스님ㆍ13 추천의 글·미산 스님ㆍ17 제10장 진심출사眞心出死 경험하는 모든 것은 내 느낌의 세계이다ㆍ24 생사는 개념에 의해 남겨진 느낌ㆍ33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이 없는 죽음을 두렵게 한다ㆍ39 생사를 초월한다는 말의 의미ㆍ47 우주는 하나로 얽혀있다ㆍ52 이미 본질 속에 있음을 알아채라ㆍ57 태어난 것이 없기에 멸할 것도 없다ㆍ62 내 몸은 감각적인 느낌에 기반을 둔 감지적 느낌의 덩어리ㆍ72 ‘나’라는 것의 탄생 과정이 모두 마음의 작용임을 철저히 보라ㆍ83 제11장 진심정조眞心正助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은 이미 사용되고 있다ㆍ91 분별의 기능은 쉬어도, 마음이 잠들게 하지는 말라ㆍ95 사랑과 자비는 조화이며 중용ㆍ100 무심공부를 하면 왜 마음거울의 먼지가 잘 닦일까?ㆍ106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것은 평등한 마음이 아니다ㆍ110 ‘지금’이라는 것은 안목이 높아질수록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진다ㆍ114 진정한 선의 모습ㆍ119 진정한 선함은 옳다/그르다의 분별을 떠나있다ㆍ122 더 높은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선을 이룬다ㆍ130 자아를 강화시키는 잘못된 보시ㆍ134 본성을 잠깐 맛본 것이 진심을 이룬 것은 아니다ㆍ138 제12장 진심공덕眞心功德 점수의 세계에는 있지만, 무심無心에는 그 어떤 변화와 도약이 없다ㆍ145 상태가 변함으로써 일어나는 기쁨에는 ‘나’라는 자기 이미지가 필요하다ㆍ151 모든 신기한 능력은 무심에 나타난 표지일 뿐이다ㆍ155 점수漸修의 함정ㆍ156 그 모든 의문과 아픔마저 보이는 찰나의 순간ㆍ159 제13장 진심험공眞心驗功 진심이 드러나는 방식ㆍ169 성숙, 습기의 나타남을 겪어내다ㆍ175 자아는 없애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라 진리가 드러난 한 모습이다ㆍ180 진심의 성숙도를 시험하기ㆍ186 모든 속임수는 사실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는 것ㆍ195 제14장 진심무지眞心無知 앎이 없는 앎 - 모든 지식과 경험은 사용되는 데이터일 뿐 그 주인이 따로 있지 않다ㆍ203 역경과 순경으로 나누는 것은 마음의 병일 뿐ㆍ211 내가 대상을 바라본다는 그 느낌이 일어나고 있는 침묵의 공간 ㆍ217 드러난 마음의 두가지 원천ㆍ220 쓰면 쓸수록 활기차니 없지 않다 ㆍ226 중도中道, 순간순간 마음을 내어 쓰는 것ㆍ231 진정한 공은 있음에도, 없음에도 속하지 않는다ㆍ237 왜 무욕의 상태가 최고의 황홀한 상태일까?ㆍ240 모든 움직임은 평평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ㆍ246 ‘나’라는 것은 일종의 저항ㆍ253 분별을 얻고 기쁨을 잃다ㆍ261 이미 늘 있는, 갈 데가 없는 마음, 여기서 순간적으로 깨어남을 경험한다ㆍ266 단견은 묶이게 하고, 상견은 움직이게 한다ㆍ274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이순간 함께 흔들리고 있다ㆍ278 느낌이 있다는 것이, 이미 거기서 떨어져 나왔다는 의미ㆍ290 ‘되어감becoming’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ㆍ295 제15장 진심소왕眞心所往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머무는 것이 문제ㆍ307 허무라는 것조차도 분별 속의 일이다ㆍ313 생각이나 감정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ㆍ322 각覺의 본성ㆍ329 움직임의 루트, 존재가 아니라 현상인 이유ㆍ337 각성覺性은 경험이 아니다ㆍ344 진심에 도달했다는 것은 표현일 뿐ㆍ347 마음에 경험되는 것은 모두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모습의 변화일 뿐ㆍ353 탄생과 소멸은 모두 마음의 상相임을 보라ㆍ358 모든 나타남은 의식의 장에 나타나는 잠시의 현상ㆍ364 감사의 말ㆍ367 |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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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황홀은 무욕의 상태를 재발견하는 것]
욕망을 만족시켰던 순간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여러분이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의 마음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최고의 축복은 바로 그 순간에 도달한 때 일어납니다. 오랜 추구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만족하고, 기쁨에 들뜨고 황홀하죠. 축복의 순간입니다. 그때의 마음은 무욕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서 결국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욕구가 없는 상태란 말입니다. 더 이상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멈춘 마음이에요. 깨달음이라는 상태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똑같습니다. 추구하는 마음 자체가 멈춘 무욕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면 될까요? 그렇게 마음을 먹지만 저 밑바닥에서 뭔가 자꾸 올라옵니다. 그렇게 올라오는 마음이 모두 멈춘 상태가 무욕의 상태이고 가장 만족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추구할 무언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상태입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럼 애초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어린아이가 그렇죠.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을 즐깁니다. 이미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점차 마음의 구조가 형성되어서 나와 대상이 생겨나고,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생겨나면 이제 그것을 향해 평생 달려갑니다. 열심히 달려가서 그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고, 목표를 이루고서 다른 목표를 정해놓고 또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도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가는 마음만 경험합니다. 추구가 멈춘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끝없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떠나갑니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경험하고 즐기면서 충분히 자유롭게 에너지를 쓰면서 살다가 가도 됩니다. 그것이 삶이니까요. 다만 매순간 욕망에 시달리지 말고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말이에요. 이미 우리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욕구만 멈추면, 이미 무욕의 상태에요. 욕구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구조로 인해 생겨나는 흐름이에요.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그러면 멈춰야지.’한다면 마음이 멈춘 상태를 상정해놓고 그만 달리겠다는 ‘의도’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또다시 그 의도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됩니다. 모든 의도는 마음을 달리게 합니다. 의도를 멈추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의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 자체가 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상태’가 ‘얻을 것이 없는 상태’라는 굉장히 묘한 구조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어렵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마음은 정지합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원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 마음상태가 되죠. 즉 무욕의 상태입니다. 가장 커다란 만족은 결국 욕망 없음에 이르렀을 때 얻어집니다. 아랫배와 연관된 물질적인 욕망과 육체적인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면 이제 가슴의 기쁨이 느껴지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가슴의 욕망이 충족되어 커다란 기쁨이 오면 가슴이 벅차죠. 그리고 다음은 지성적인 황홀감으로 이어집니다. 인도에는 이런 에너지 흐름에 관한 차크라chakra 개념이 있습니다. 최상의 누진통漏盡通을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렸다’고 표현합니다. 상징일 수도 있고 에너지 흐름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이 아랫배에서 완전히 충족되면 가슴의 충족으로 이어지고, 가슴이 충족되면 지성적인 황홀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황홀감은 어떤 건가요?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빙 둘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무욕의 상태이지요. 그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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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낸 월인 거사와는 오낸 세월, 전화로 혹은 만나서 많은 법담을 나누어 왔다. 담박한 나눔 속에는 늘 정스러움이 있어 왔다. 월인 거사는 깨끗하고 바르며 사려가 깊다. 진국중 진국이다. 나는 이분을 이 시대의 현자 한사람으로 본다. 사람은 대체로 세 구동축으로 산다. 지성축, 감성축, 의지축이다. 곧 지정의知情意다. 많은 영성가들은 이 세 축 중 다른 두 축을 두루 아우르되 어느 한 축에 방점을 둔다. 석가모니는 단연 지성축에 방점을 둔다. 8정도의 1~2번을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로 정하신 것을 봐도, 삼보, 5계, 사성제, 12연기, 3법인, 3학 등의 논리적인 체계를 봐도 지성축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영성가들 중 지성축에 방점을 두는 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성理性으로 사유해서 깨닫는다는 지성축의 영성가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월인거사와 나는 단연 지성축 명상문화를 가풍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하고 있다. 반야경이든 금강경이든 이성적 사유 없이는 수긍할 수 없듯이 진심직설도 그러하다. 사유력이 깊으신 월인거사가 보조지눌의 진심직설을 해설해 놓았다.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필독을 권한다. - 용타스님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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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님의 『니르바나, 번뇌의 촛불이 꺼지다: 진심직설 강의』는 선어록의 백미白眉인 『진심직설』을 쉽고 명징하게 풀어 놓았습니다. 읽으면서 바로 진심에 접속하여 체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강설합니다. 『진심직설』은 첫 장인 진심의 바른 믿음[眞心正信]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장인 진심이 이르는 곳[眞心所往]까지 진심의 구조, 체계, 이명, 본질, 쓰임 등 진심의 핵심을 직결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선의 학술서입니다.
... 월인 님은 『진심직설』 강설에서 진심에 접속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종일관 느낌이 일어나는 곳에 유도합니다. 다섯 감각 정보와 생각과 감정들은 모두 접촉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감지로부터 시작되고, 이 감지는 내면에서 몸, 에너지, 의식 세 가지 형태의 느낌으로 발현된다고 봅니다. 감지의 발견 과정 중 마지막인 미묘한 의식적 감지에 ‘나’라는 느낌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즉석에서 ‘나 없음’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안내합니다. - 미산스님 (상도선원 회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