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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전집

윤동주문학선집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정지용의 서문

제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서시(序詩)
자화상(自畵像)
소년(少年)
눈 오는 지도(地圖)
돌아와 보는 밤
병원(病院)
새로운 길
간판(看板) 없는 거리
태초(太初)의 아츰
또 태초(太初)의 아츰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時間)
십자가(十字架)
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族屬)
눈감고 간다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제2부 이적(異蹟)

초 한 대
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
가로수(街路樹)
삶과 죽음
창공(蒼空)
조개껍질 ― 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
창구멍
참새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남(南)쪽 하늘
비둘기
황혼(黃昏)
못 자는 밤
모란봉(牡丹峯)에서
가슴 1
가슴 2
가슴 3
종달새
애기의 새벽

산상(山上)
병아리
오후(午後)의 구장(球場)
비 오는 밤
호주머니
양지(陽地)쪽
곡간(谷間)
산골물
햇비
빗자루
비행기
둘다
무얼 먹고 사나
유언(遺言)
굴뚝

달밤
버선본
오줌싸개 지도
편지
아침
기왓장 내외

이런 날
풍경(風景)

빨래
그 여자(女子)
한난계(寒暖計)
사과
소낙비
거리에서
비애(悲哀)
명상(瞑想)
바다
거짓부리
산협(山峽)의 오후(午後)
가을밤
비로봉(毗盧峯)
창(窓)
만돌이
반딧불
겨울
산울림
이별(離別)
이적(異蹟)
사랑의 전당(殿堂)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어머니
코스모스
고추밭
햇빛ㆍ바람
빗자루
해바라기 얼굴
귀뚜라미와 나와

달같이
식권(食券)
장미(薔薇) 병(病)들어
산골물
울적(鬱寂)
나무
할아버지
야행(夜行)
트르게네프의 언덕
꿈은 깨어지고

제3부 쉽게 씌어진 시(詩)

팔복(八福)
간(肝)
위로(慰勞)
산림(山林)
황혼(黃昏)이 바다가 되어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참회록(懺悔錄)
사랑스런 추억(追憶)
쉽게 씌어진 시(詩)


제4부 산문

달을 쏘다
별똥 떨어진 데
화원(花園)에 꽃이 핀다
종시(終始)

제5부 해설 및 윤동주 연보

윤동주의 원죄 의식과 부활 사상 ― 박이도
윤동주 연보

저자 소개 2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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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59년 [자유신문]에「음성」이,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황제와 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회상의 숲』,『바람의 손끝이 되어』,『안개주의보』,『어느 인생』,『데자뷔』등 열다섯 권의 시집,『빛의 형상』,『순결을 위하여』등 다섯 권의 시선집을 펴냈다. [신춘시新春詩] 동인과 [사계四季]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존재와 삶에 대한 사유와 탐구의 조화, 그의 시의 공
1938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59년 [자유신문]에「음성」이,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황제와 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회상의 숲』,『바람의 손끝이 되어』,『안개주의보』,『어느 인생』,『데자뷔』등 열다섯 권의 시집,『빛의 형상』,『순결을 위하여』등 다섯 권의 시선집을 펴냈다. [신춘시新春詩] 동인과 [사계四季]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존재와 삶에 대한 사유와 탐구의 조화, 그의 시의 공간은 나와 사물과의 관계 성찰 속에서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순수시의 시세계로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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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48*210*20mm
ISBN13
9791189171797

책 속으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 p.27 「서시(序詩)」중에서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쭉한 일자(―字)를 쓰고…… 지우고……

까마귀떼 지붕 위로
둘, 둘, 셋, 넷, 자꾸 날아 지난다.
쑥쑥― 꿈틀꿈틀 북(北)쪽 하늘로,

내사……
북(北)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
(1936년 3월 25일)
--- p.69 「황혼(黃昏)」중에서

봄이 혈관(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창작 연도 표시 없음)
--- p.180 「봄」중에서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濃灰色)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氣流) 가운데 자조(自嘲)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生長)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 그대로 생존(生存)하나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기는 나는 세기(世紀)의 초점(焦點)인 듯 초췌(憔悴)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을 반듯이 받들어 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 머리를 갑박이 나려누르는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마는 내막(內幕)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무지 자유(自由)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 듯 있는 하루살이처럼 허공(虛空)에 부유(浮遊)하는 한 점(點)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하루살이처럼 경쾌(輕快)하다면 마침 다행(多幸)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구나!

이 점(點)의 대칭위치(對稱位置)에 또 하나 다른 밝음(明)의 초점(焦點)이 도사리고 있는 듯 생각킨다. 덥석 움키었으면 잡힐 듯도 하다. 만은 그것을 휘잡기에는 나 자신(自身)이 둔질(鈍質)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내 마음에 아무런 준비(準備)도 배포(排布)치 못한 것이 아니냐. 그리고 보니 행복(幸福)이란 별스런 손님을 불러들이기에도 또 다른 한 가닥 구실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까보다.

이 밤이 나에게 있어 어린 적처럼 한낱 공포(恐怖)의 장막인 것은 벌써 흘러간 전설(傳說)이오. 따라서 이 밤이 향락(享樂)의 도가니라는 이야기도 나의 염두(念頭)에선 아직 소화(消火)시키지 못할 돌덩이다. 오로지 밤은 나의 도전(挑戰)의 호적(好賊)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생생한 관념세계(觀念世界)에만 머무른다면 애석한 일이다. 어둠 속에 깜박깜박 조을며 다닥다닥 나란히 한 초가(草家)들이 아름다운 시(詩)의 화사(華詞)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벌써 지나간 제너레이션의 이야기요, 오늘에 있어서는 다만 말 못하는 비극(悲劇)의 배경(背景)이다.
--- pp.186~187 「별똥 떨어진 데」중에서

윤동주에게 그가 처했던 시대와 사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는 기독교를 신앙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또 조국을 떠나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조국은 하나의 감옥과 같이 육신의 삶이나 정신의 문화 공간이 폐쇄된 실존적 여건이었다. 그는 기독교인의 죄인 의식, 즉 아담 이후 기독교의 윤리적 근간이 되는 노동 의식, 속죄 상 내지 구원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형벌(刑罰)에 대한 죄의식을 정신적으로 감수했다. 예수에 의해 죄를 사함받고 영생(永生)에 이를 수 있다는 일차적인 신앙의 조건에서 현세적인 공동체 의식으로 민족 수난의 역사적 현실까지 감수하고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시련이 문학적 세계로 구체화된 것이다. 퓌겐이 주장한 사회적 인과율의 조건이라는 측면에 적용해볼 만하다. 즉 그는 “문학을 사회적 활동과 사회적 경험의 객체로서 연구”하고 그 내용의 “생산, 전승, 확산 및 수용을 행하는 인간 상호간의 활동”에 관심을 두고 체계화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비평적 관점에 종교적 신앙을 추가하고 윤동주의 내면의 거울에 비추이는 정신적 추구의 흔적을 정리해보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시 속에서 사회적 경험과 기독교 신앙의 일치점이 어떻게 수용되고 표상되었는가를 가려 볼 것이다. 시인의 작품을 생각할 때 그 시인의 사회, 혹은 시대를 한데 묶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비단 문학 사회학적인 태도만은 아니다. 작가의 정신적 상태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와 소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 경제 등 국민 생활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집단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 등이 있는가 하면 자연의 대상화, 종교적 차원, 문화적 공간 등의 개인적 영역의 사회 또한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윤동주에게 있어서 적극적인 사회에 해당하는 체험의 수용은 이미 많은 평자(評者)들에 의해 강조된 식민지 시대의 생존 조건에 해당된다.

그리고 소극적인 사회, 즉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의식된 세계, 국어를 쓰지 않은 이국땅에서 성장했다는 사실, 기독교라는 서구 종교의 문화권에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평양, 경성 등지와 일본으로의 유학 등에서 성숙된 복합적인 이방인 의식들이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해 오는 사회적 여건에 의해 위축된 외적 자아와 소극적으로 의식하거나 의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숙된 내적 자아의 일치는 불행하게도 현실에 활달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내적으로만 인식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것은 윤동주가 기독교를 의식하는 양면성의 방법이 되며, 또한 시에 대한 자세가 된다. 이 같은 자세는 그의 시를 통해 다시 표상되는 것이다. 이것은 릴케가 사물시를 “현실에 대한 증오감의 한 시도”로써 관찰했고 “서정시는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불화의 순간을 그 자신에 내포”한다는 아도르노의 사회학적 시론을 적용해도 그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시적 자세는 기독교 의식에 의해 윤리적 도덕적 골격을 갖추고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나오는 기독교 사회학과 연결되는 것이다.

--- pp.209~211

출판사 리뷰

윤동주가 기독교를 신앙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조국인 한국은 하나의 감옥과 같이 육신의 삶이나 정신의 문화 공간이 폐쇄된 실존적 여건이었다. 그는 기독교인의 죄인 의식, 즉 아담 이후 기독교의 윤리적 근간이 되는 노동 의식, 속죄 사상 내지 구원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형벌(刑罰)에 대한 죄의식을 정신적으로 감수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죄를 사함받고 영생(永生)에 이를 수 있다는 일차적인 신앙의 조건에서 현세적인 공동체 의식으로 민족 수난의 역사적 현실까지 감수하고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시련이 문학적 세계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 박이도(문학박사, 시인, 전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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