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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 측면사
효양방의 애화 암흑기의 우리 문단 어수선한 문단 수첩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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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4후퇴 때 피난지 제주도에서 ‘합동통신 제주지사’주최로 열렸던 하기대학 강좌에서 ‘문학강좌’를 더럽혔던 문단 이야기의 메모 보충이다. 그 당시의 제목은 ‘신문학 30년사’라고 붙였던 것이나 문학사와는 이야기의 성질이 전연 다른 이질적인 것이므로 ‘40년 문단 회고담’이라고 개제하여 발표하기로 한다.
인사 제목은 ‘문학 30년사’라고 걸어 놓았으나, 소요 시간 세 시간 동안에 30년 이야기를 한 시간에 십 년씩 배당이 돌아간 모양이니 이것만 주마간산 격이람보다 초특급을 타고 달리며 얼른얼른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격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피난 중인 몸이라, 참고서 한 권 없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기억과 입만을 가지고 이런 자리에 나서는 몸으로서는 이렇게 된 것이 차라리 다행한 일이 아닐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다가 연대가 미상하여 이야기의 진전을 시킬 수가 없어서 문단적으로 공적을 남긴 잡지의 발간 경로를 더듬어 가며 이야기의 체계를 세워 볼까 합니다. 하기는 우리나라 문학이란 잡지의 발간과 함께 발전되어 내려온 것이므로 이것 또한 재미있는 시도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하려는 이야기만으로는 문학강의가 될 성질은 아니고 문단회고 잡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고 들어 주기 바랍니다. --- “한국문단 측면사” 중에서 이 글의 명제자(命題者)는 좀더 구체적인 성질의 것을 요하였을 것이나, 그것은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봄으로, 그러지 않아도 이런 의미에서 쓰다가 중지한 「한국문단 측면사」의 그 어느 시기의 계속으로 미루기도 하고 여기서는 다만 내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아온 사실을 중심으로 그 소위 문단의 암흑시대를 대체적으로 말해 보는 데 그치려 한다. 일본의 식민지를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일본이 진주만 기습의 오산이 있기 전까지는 그토록 문단은 악조건의 환경에만은 놓여 있지 않았다.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래도 문단은 그저 성장일로로 걷고 있었다. 더욱이 그 직전의 4, 5년 간에 있어서는 자못 그 활기가 전례에 없이 은성거렸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는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므로 다른 그 어느 부문보다 이 부문에 대한 탄압이 그리 혹심하지는 않았던 데 있었다고 봄이 정당한 평가가 아닐가 한다. --- “암흑기의 우리 문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