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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애연지 표제 한담 문학사를 통해 본 여성의 비극 탐라 점철 초 편지를 쓰는 요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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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친구들이 좋은 소설 재료가 있으니 소설로 써 보라고, 바로 그 자신이 체험하였다는 이야기를 호소나 하듯이 신이 나서 들려주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는 한 번도 소설로 써 본 적이 없다. 들어 보면, 그들에게는 모두 뼈가 아프도록 느낀 절실한 체험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는 조금도 절실하게 들어와 맞히는 데가 없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그 자신만이 느낀 통절한 체험이었을 뿐 나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A라는 사람이 어떤 여자와 실연에서 뼈가 아프도록 인생을 느낀 사실을 배가 고파서 눈이 한 치나 기어 들어가도록 인생을 느낀 B라는 사람에게 하는 호소나 다름이 없었다. 실연을 하고 뼈가 아프도록 인생을 느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요, 배가 고파서 눈이 한 치나 기어 들어가도록 인생을 느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될 수가 없음으로서다. ---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중에서 작가는 누구나 그 작품의 표제를 헐(敏)히 붙이려고 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나처럼 신경을 쓰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작품에 손을 대면 작품이 되기 전부터 우선 표제 생각을 한다. 좀체 그럴듯한 표제가 떠오르지 아니하면 작품을 쓰면서도 연방 표제 생각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하나 뚝 따서 붙이면 무난할 것이나 그건 싫다. 운치가 없기 때문이다. 내용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표제도 싫다. 한두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면 그 표제로 말미암아 내용이 빤히 들여다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내용을 설명해 주면 서로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고 내용을 은근히 깊게 만드는 그러한 표제 그런 것을 나는 늘 추구한다. 표제라는 것을 나는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편의상 표제를 붙여 놓아야 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하고, 표제는 내용을 살피는 한 중요한 부분적 역할을 하는 골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표제 한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