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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5
1부 고전 유신론 - 21 1. 필론 기원전 30년~기원후 50년ㆍ23 2.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년ㆍ38 3. 성 안셀무스 1033~1109년ㆍ43 4. 알 가잘리 1058~1111년ㆍ58 5. 마이모니데스 1135~1204년ㆍ64 6. 성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년ㆍ70 7. 르네 데카르트 1596~1650년ㆍ98 8.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1646~1716년ㆍ104 9. 임마누엘 칸트 1724~1804년ㆍ118 2부 고대 그리스 신론 - 133 10. 플라톤 기원전 427~347년: 편재ㆍ135 11. 플라톤 기원전 427~347년: 전능에 대한 반론ㆍ156 12.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ㆍ169 13. 플로티노스 205~270년ㆍ187 3부 신고전 혹은 과정 유신론 - 199 14. 파우스토 소치니 1539~1604년ㆍ203 15, 프리드리히 폰 셸링 1775~1854년ㆍ210 16. 구스타프 페히너 1801~1887년ㆍ215 17. 찰스 샌더스 퍼스 1839~1914년ㆍ226 18. 오토 플라이더러 1839~1908년ㆍ236 19.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1874~1948년ㆍ241 20. 무함마드 이크발 1877~1938년ㆍ259 21. 마르틴 부버 1878~1965년ㆍ264 22.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1881~1955년ㆍ270 4부 앙리 베르그송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283 23. 앙리 베르그송†1859~1941년ㆍ285 24.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1861~1947년: 『과정과 실재』까지ㆍ313 25.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1861~1947년: 『과정과 실재』 이후 평가 및 저술ㆍ346 옮긴이 후기ㆍ382 참고 문헌ㆍ386 찾아보기ㆍ401 |
Daniel A. Dombr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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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은 신의 현존을 논할 때 설계 논증을 옹호하며 규칙적이고 질서 정연한 자연 세계야말로 신적 창조자의 현존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 신은 불변하고, 시간 바깥에 있고, 시간을 창조했고, 창조되지 않았고, 지극히 단순하고, 통일되어있고, 자기-충족적이고, 부동하고, 전지하고, 필연적으로 현존하고, 감수성이 없고 무감각하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모든 것의 원인이고, 편재한다. 신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신의 모습과 같다!
--- p.23~24 안셀무스는 우연적 현존과 신격은 양립할 수 없다는 관념을 발견했고, 하츠혼은 이런 발견을 안셀무스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 그러나 신고전 혹은 과정 관점에서 신의 현존은 필연적이고, 신은 피조물의 경험에 반응하기 때문에 신의 현실태 혹은 구상적 실재는 시시각각 우연적이다. 앞서 살펴본 것같이 살아 있는 신은 모든 면모에서 엄밀하게 필연적일 수 없고 불변할 수 없다. --- p.43~44 플라톤은 만일 신이 완전하고 어떤 결함에서도 자유로우면, 신은 불변할 것이며 이미 소유하지 않은 어떤 선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탓에 일부 언어적 혼란을 초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혼란 안에 전적으로 갇혀 버렸다. 이런 혼란은 모든 갈망이 증발해 버린 추상적 “사랑”이 신적 사랑이라는 결론을 고전 유신론에 남겼다. 만일 고전 유신론자들이 플라톤을 허위로 단순화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규범으로 삼지 않았다면 인류 지성사 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 p.178 성서의 저자들은 하느님을 사랑, 지식, 의지 같은 인격과 관련 있는 용어로 묘사하려 했다. 하츠혼은 히브리 경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비유를 통해 신이 세계를 알고 사랑한다고 단언하면서, 이런 신과 전적으로 비관계적인 신격을 단순하게 합쳐 버리는 고집스러운 주장은 유비의 말이 아니라 그저 모호한 말일 뿐이다.” 사실상 신고전 혹은 과정 유신론을 뒷받침하는 성서의 증거는 고전 유신론의 증거 못지않으며, 오히려 그 이상으로 인상적이다. --- p.200 간혹 어린이들이 “그렇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나요?”라는 흔하지 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앞을 내다보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신이 불후하다면, 누군가 신을 만든 것이 아니다. 또한 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신은 스스로를 만든다. 또한 신의 현실태가 피조물에 의해 풍요로워진다면, 우리는 신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 만일 창조성이 어떤 식으로든 궁극적이라면, 신 혹은 우리 자신의 결정이 영원토록 현존하는 한정된 형상들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오히려 신이든 피조물이든 자유로운 존재들은 우주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 --- p.253 테야르는 종교적 체험의 현상학에서 신은 우리에게 모든 완전함으로 현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신을 발견하고 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을 경험한다. 종교적 체험의 역동성은 실제로 부정신학을 따르는 신 개념의 차원을 손상한다기보다 강화한다. 우리가 신적 현실태를 이해하면 할수록, 신적 경험에 거듭해서 무언가 추가된다는 것과 그 결과 신적 경험은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 p.278 암스트롱이 생각하기에 신과 세계의 통일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런 신적 세계 포괄성은 신적 고통의 관념을 수반한다. 이런 견해에 따를 때, 세계의 고통은 신적 삶 안으로 섬세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사랑으로 변화되거나 변형된다. 암스트롱은 그의 책 말미에서 고전 유신론자들이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 질서와 초자연 질서를 대립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하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암스트롱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이 고전 유신론의 엄밀한 초월성과 범신론의 엄밀한 내재성 때문에 발생한 양극 불균형을 바로잡으려 한 시도였다고 보는 것 같다. --- p.353~354 찰스 하츠혼은 기존 존재론의 범주를 인정하면서도, 범주가 가리키는 의미를 더 풍성하고 깊게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고전 유신론에서는 신과 연결할 수 없던 속성들, 연민이나 공감 같은 수동성, 타자와의 관계에 의한 변동성 같은 면모도 신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가장 탁월하게 연민하고 공감하는 신, 가장 탁월하게 타자에 반응하는 신, 즉 사랑과 자비의 신 개념을 온전히 되살릴 수 있다. --- p.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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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과정 철학까지,
23명의 사상가를 통해 펼쳐내는 2500년의 신 개념 역사 신은 어떻게 인식 되어 왔는가? 신 개념의 역사라는 장르에 대하여 이 책은 신 개념의 역사라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 이 장르는 시대와 변화를 초월해 존재하는 형언할 수 없는 신의 실재에 대한 역사가 아닌, 아브라함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의 역사이다. 사실상 신을 표현하는 여러 용어는 신 자체를 가리킨다기보다, 시대마다 특정 집단이 그들의 열망에 따라 형성해 온 개념이다. 신의 모습은 고정된 절대적 이미지로 지속되는 게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빚어지고 발전한다. 즉 인간 삶의 양상과 사회의 작동 방식이 바뀌듯, 신의 이미지 역시 변화를 겪는다. 신 개념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신의 이미지를 통해 그 안에 반영된 인간과 세계를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신 개념의 역사를 통해, 현재까지 전달된 신의 이미지를 고찰하면서 우리가 처한 현황을 파악하고 과거를 반성할 수 있으며, 열린 미래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자세를 갖춰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 개념은 인간의 독창성과 창조성, 그리고 세계의 역동성을 따라 형성된다고도 할 수 있다. 과정 철학의 관점에서 신 개념의 역사를 구성하다 저자 대니얼 A. 돔브로스키는 20권이 넘는 저서와 2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기며 활발하게 활동해 온 미국의 철학자이다. 과정철학자 찰스 하츠혼, 정치철학자 존 롤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 개념에 오랜 시간 천착하며, 여러 관점과 쟁점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연구해 왔다. 특히 하츠혼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고 많은 작품을 남긴 연구자”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았다. 그리고 ?신 개념의 역사?는 그의 연구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번역서이다. 돔브로스키는 이 책에서 과정철학자 찰스 하츠혼에게 기대어 신고전 혹은 과정 유신론의 관점에서 신 개념의 역사를 구성하고, 이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자 한다. 기존 형이상학을 따를 때, 신에게는 언제나 우위 범주를 적용해야 하므로, 신 개념은 단극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하츠혼은 양극신론을 제안한다. 즉, 범주를 선택적으로 신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 각 범주에서 최고 탁월한 면모를 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은 최고 탁월한 존재인 동시에 최고 탁월한 생성이고, 최고 탁월한 변동성을 거듭해서 지니기에 최고 탁월한 영속성을 갖는다. 이런 양극신론에서는 대비되는 범주 사이에서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다. 하츠혼은 기존 존재론의 범주를 인정하면서도, 범주가 가리키는 의미를 더 풍성하고 깊게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고전 유신론에서는 신과 연결할 수 없던 속성들, 이를테면 연민이나 공감 같은 수동성, 타자와의 관계와 시간에 의한 변동성 같은 면모도 신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찰스 하츠혼의 이런 시도는 신학 안에서 과정철학을 사유하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특히 남성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단극 신 개념이 전개되는 동안 가장자리로 밀려난 비남성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자리를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전 유신론을 넘어 신고전 유신론으로 신 개념의 전환과 확장의 역사를 살펴 보다 돔브로스키는 전통적인 신 개념을 고수하는 고전 유신론의 문제, 특히 시간 바깥에 머무는 영원성, 전능과 전지의 속성 때문에 생겨난 소통 없는 무감각한 신, 독재적이고 폭력적인 신의 모습을 지적하고, 신고전 혹은 과정 유신론의 견해를 옹호한다. 이어 찰스 하츠혼의 관점을 통해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신 개념이 빚어져 온 오랜 역사를 설명한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존재론적 논증 자체를 비판하는 대신,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가정하는 고전 유신론의 개념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돔브로스키는 이어 고전 유신론의 개념이 기인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발전을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대화들에 나타나는 신관은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며, 후기 저술들에서는 신고전 유신론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된다. 하지만 플라톤 이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풍성한 생각을 다양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돔브로스키는 우리가 고전 유신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플라톤의 풍성한 사유에 직접 접촉하고 플라톤이 염두에 두었던 역동적인 신, 시간 안에서 세계와 소통하며 함께 진보하는 신을 다시 만나기를 촉구한다. 존재 자체가 힘이라는 이해 아래, 전능과 전지한 신 대신 여러 힘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선한 세계를 상상하기를 제안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새로 빚어야 할 신 개념은 고대의 이야기 속 상상에 닿아 있고, 고전 유신론의 오랜 사유 방식을 폐기한다기보다 전환하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신고전 유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근대 초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전통적인 신의 속성에 갇히지 않고 신을 이야기해 온 과감한 사유들을 살핀다. 여기에는 뉴턴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극복하려 애쓴 프리드리히 폰 셸링, 기호논리학의 선구자 찰스 샌더스 퍼스, 인간의 창조성을 다시 발견한 동방정교 배경의 러시아 사상가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운 유대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진화의 자리를 확보한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같은 인물이 포함된다. 뛰어난 사상가의 깊은 통찰을 신고전 유신론의 시선에서 살펴보는 시도 역시 참신하고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돔브로스키는 20세기 뛰어난 신고전 혹은 과정 유신론자로서 앙리 베르그송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를 소개한다. 새로운 신 개념이 가져 올 인간과 세계에 대한 풍성한 이해 돔브로스키는 앙리 베르그송,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제안을 통해 신비주의의 중요성과 의미까지 살펴본다. 즉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미래의 결정가능태에 열려있는 것, 촘촘한 언어 틈새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가 압도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경험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어쩌면 논리적인 진술 대신, 우리 자신을 관통하는 경험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그 과정을 통해서만 신의 모습을 빚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유연함과 유동성, 창조성과 상상력에 기댈 때, 우리는 신과 소통하며 세계의 진보에 일조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인정하고, 신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볼 때, 신에 관한 사유는 풍성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고전 유신론의 신 개념이 결국은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신 개념, 남성과 인간 중심적인 신 개념으로 귀결됨을 인정할 때, 인류 역사를 반성하는 관점도 바뀔 수 있다. 분명 신 개념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며, 세계관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신고전 유신론을 따라 신 개념을 다시 빚어갈 때, 고난받는 사람, 소수자와 약자를 보는 시선도 바뀔 것이고, 타자를 대하는 태도도 혐오나 배제 대신 연대와 환대로 바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