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다시 만난 사람들 세상으로 사람과 사람 사막으로 난 길 에필로그 작가의 말 |
|
사람 살려줘요!”
세철은 파출소로 들어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경관이 고개를 들어 ‘뭐냐’는 듯이 쏘아봤다. “시골에서 어젯밤에 올라왔는데, 깡패들에게 끌려가서 짐을 다뺏기고 여비도 다 털리고 시계까지…….” 세철은 우선 폭행을 당한 일과 갖고 있었던 물건들과 돈을 다털렸다고 말했다. (중략) 경관은 눈을 부라렸다. “그런 것이 아니고, 제가 아주머니께 끌려가는데…….” “그래. 지금 네가 말하려는 것을 그대로 다 써. 자식,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에 왔다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창녀집이냐? 집안 어른들이 여비하라고 준 돈으로 여자부터 찾아가다니, 네 앞길이 한심하다, 이놈아!” 경관은 넋이 빠진 듯이 앉아 있는 세철을 거친 말로 몰아대었다. 들을수록 창피해서 경관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형과 유원을 어떻게 만나지? 이 소문이 혹시 집안 식구들에게 전해진다면? 혹시 학교에 알려지면…….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했다. --- p.26-27 유원은 처음 세철을 보러 왔을 때를 생각했다. 정 선생이랑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세철이가 방 안에 누워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나 툇마루로 나왔다. 큰 키에 여드름투성이인 얼굴로 유원을 쳐다보는 그 눈빛이 유원의 가슴에 후벼들었다. 유원은 빙긋이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의 창고에 남아 있는 중학생 세철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때 눈 위에 가제로 가려진 상처를 보았다. 순간 제주에서 보육원 깡패들에게 맞아 온 통 얼굴을 붕대로 싸매고 도립병원 병상에 누워 있던 세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딜 가나 싸움은 그치지 않는구나! 싸움꾼으로 살아가려나? 이상한 예감이 스치면서 측은했다. --- p.p.63 “세철아, 과거는 잊으려 한다고 잊을 수 없어.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나는 이렇게 생각해. 신이 개인의 삶을 주관하신다고 믿거든. 우리가 그 제주에서 만났던 것도 우리가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지 않니? 세철은 꿈에라도 나를 만나리라고 생각한 적 있어? 그리고 만나서 같은 집에서 살았다고 해도, 내가 세철을 좋아하고, 세철이 또한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 서로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지 않니? 난 한 번도 세철이를 좋아해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없어. 그저 좋아하게 된 거야. 세철이도 그렇지. 그러니까 일부러 잊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야. 나는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은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내 인생이라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그러니까 우리 앞에 흘렀던 시간도 우리의 뜻에 의해 내 앞으로 흐른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정리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야. 내가 어떻게 그 강물의 줄기를 바꾸겠어. 그러니 우리 앞에 흘렀던 시간의 흔적들을 지워버릴 수는 없어. 난 그 시간을 사랑하기로 했어. 슬픈 일이었다 하더라도 말이야.” 세철은 들으면서 가슴이 떨렸다. 내가 철부지였구나. 나는 왜 유원이처럼 생각할 수 없지.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속이 좁고 이기적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세철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유원의 깊은 마음을 알았고, 자신을 조금은 되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144-145 “세철이, 사랑에 너무 집착하지 마.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야. 유원이를 좋아하지만, 그 좋아함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하지. 그래서 즐겁고 행복하게 되는 거야. 그것이 아쉬움이 되고 더 심해서 고통이 되고, 불만이 되면 안 돼. 이성 간의 사랑은 서로가 함께 할 때에야 이루어지는 것이야.” 그 말에 세철은 긴장했다. 유원이가 자기로부터 떠나갈 것을 예언하는 말 같았다. “내 경우를 생각하면, 첫사랑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일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백의의 천사로 살기로 작정했겠어? 그러나 사랑의 상처는 크기도 하지만, 다른 사랑으로 아주 쉽게 아물기도 해. 그런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더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되고 성장 하기도 하는 거야.” 세철은 유원과의 관계가 상처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내 인생의 한 과정이라면 너무 마음 쓸 필요는 없다. --- p.230-231 |
|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균형 잡힌 인간성을 키워나가는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비망록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은 세철은 형과 유원의 주소만 가지고 집안 어른들 몰래 섬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된다. 서울역에 내리면서 그는 지금까지 지내온 편안하고 풍성한 숲에서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선다. 서울은 좋아하는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고 형과 형수가 될 정 선생이 반갑게 맞아주는, 그러한 아름답고 행복한 도시가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처음 만난 어머니 같은 여자는 그를 창녀집으로 안내했고, 거기에서 깡패들을 만나 싸움을 했다. 그리고 몸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을 애인에게 빼앗기면서 살아가는 여자를 만난다. 세철은 그들과 싸워 심하게 두들겨 맞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긴다. 아늑한 고향, 모두가 인정해주고 모두가 안내자가 되어주었던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세상과 부딪치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서울 생활 중에 중학교 때 그가 좋아했던 미군 간호장교 안드레 소령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사이 결혼한 그녀에 대한 감정의 실체를 확인하고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유원이에 대한 감정도 정리된다. 그것은 고통스러웠으나, 그에게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된 세철은 서울 학생들의 놀림도 꿋꿋하게 이겨내며 적응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세철은 서울 명문 고교를 다니는 규석과 유원에 대한 묘한 열등감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세철은 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으나 그런 일들은 그를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게 된다. 세철은 결국 서울역의 깡패들과의 싸움에 다시 휘말려 편입한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검정고시로 명문 고교를 나온 유원이와 그의 영원한 라이벌인 규석과 같은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막보다 더욱 험난할 그의 순례의 길은 다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