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나의 할아버지, 안익태 선생님
음악으로 민족의 혼을 되살리다 풍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조국의 흙 한 줌에 담긴 사랑 일본 음악 학교에서 더 넓은 세계로 화려한 데뷔 '한국환상곡'은 작곡했지만 아아, '한국환상곡' 초연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다 베를린 필하모니 관혁악단 지휘 전쟁도 꺾지 못한 지휘봉 고국에서의 연주들 음악으로 일본을 정복하다 안익태 연보 애국가 이야기 |
|
1906 년 평양에서 나고 자란 안익태는 어린 시절, 선물 받은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며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양 숭실 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삼일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 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합니다. 그 일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끼던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음악 아카테미를 거치며 작곡과 지휘를 배워 나가지만 내 나라가 아닌 낯선 남의 나라를 떠돌며 공부하던 안익태는 줄곧 한국의 처지를 걱정하고 그리워합니다. 미국에 있던 1935년에는 '한국의 생활'이라는 모음곡을 출판하고, 애국가 합창 부분이 없는 채로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완성합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안익태는 1936년 베를린에서 잠결에 떠오른 선율을 바탕으로 애국가를 완성해 '한국환상곡'에 합창 부분으로 넣습니다. 그리고 애국가의 악보를 정리해 미국의 대한국민회 앞으로 보내 해외 동포 사이에 널리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되었고, 지금도 공식 국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