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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광개토대왕
개정판
고정욱허구 그림
산하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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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위인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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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글쓴이의 말
그날이 오길 기대하면서 02

대륙의 꿈을 안고 06
미천왕에서 고국양왕까지 18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어요 30
왕위에 오르다 40
백제의 관미성을 점령하다 50
신라를 도와 왜구를 물리치다 64
연나라와의 전쟁 72
광개토대왕비를 세우다 86

고구려사 연표 94
광개토대왕비에는 자랑스런 우리 역사가 담겨 있어요! 96

저자 소개 2

어린이 청소년 도서 부문의 최강 필자. 장애를 지닌 채 수십 년을 살아오며 긍정 마인드와 자기 계발을 삶의 실천으로 견뎌 온 작가다. 35년 이상 현업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장수 작가이며, 강연과 집필로 독자를 가장 많이 만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각종 사회활동으로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어린이 청소년 도서 부문의 최강 필자. 장애를 지닌 채 수십 년을 살아오며 긍정 마인드와 자기 계발을 삶의 실천으로 견뎌 온 작가다. 35년 이상 현업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장수 작가이며, 강연과 집필로 독자를 가장 많이 만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각종 사회활동으로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주석으로 쉽게 읽는 고정욱 삼국지』 등이 대표작이다. 『가방 들어 주는 아이』와 『목 짧은 기린 지피』 등은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까지 총 360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리더십과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많아 교육 현장에서 독자를 꾸준히 만나고 있으며, 어린이 청소년 문학 분야의 뛰어난 작품 활동과 기여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아동 청소년 문학계의 노벨상 격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2025년도 후보로 선정되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9시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전업 작가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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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였습니다. 광고와 홍보에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다 어린이책에 재치와 개성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솔새와 소나무』,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처음 받은 상장』, 『미미의 일기』, 『만길이의 봄』, 『용구 삼촌』, 『금두껍의 첫 수업』, 『얼굴이 빨개졌다』, 『여우가 될래요』, 『도와줘요, 닥터 꽁치!』, 『멍청한 두덕 씨와 왕도둑』, 『말하는 까만 돌』, 『겨자씨의 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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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85*245*15mm
ISBN13
9788976505071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출판사 리뷰

17대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평안호태왕’이 18세에 천자의 자리에 오르니, 영락대왕이라고 불렀다. 왕의 은혜로움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위무가 사해에 떨치었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자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하늘이 돌보지 않아, 39세에 승하하시니, 갑인년(413년) 9월 29일에 산릉으로 모셨다. 이에 비석을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 광개토대왕비문 중에서

광개토대왕은 어떤 인물일까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생존에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불리었습니다. 사후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잘 다스린 위대한 임금’이라는 뜻의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시호를 갖게 되었는데, 이를 줄여서 광개토대왕 또는 광개토태왕, 호태왕이라 부릅니다.

고국양왕의 장남으로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뜻이 웅대했으며, 고국양왕 3년(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여 얻은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기반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로 처음 사용했을 만큼 자주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즉위 초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백제의 관미성을 함락시켰고, 빼앗긴 땅을 되찾으러 침공해 온 백제를 격퇴해 백제 아신왕으로부터 많은 전리품과 함께 동생을 인질로 잡아오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백제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왜를 내세워 신라를 공격하자, 광개토대왕은 왜를 가야 지역까지 추격해 궤멸시켰습니다. 당시 고구려 서쪽에 자리했던 모용씨의 후연국과는 한동안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400년 후연왕 모용성이 고구려의 남소성과 신성을 침공해 오자, 광개토대왕은 숙군성을 공격하고, 요동 지역을 차지합니다.

또한 계속되는 후연의 침입을 물리침으로써 요하 지역에 대한 장악을 더욱 확고히 할 뿐 아니라, 후연이 멸망한 후 등장한 북연과 우호 관계를 맺습니다. 또한 북으로는 거란을 정벌하고, 동부여를 굴복시키는 등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쳐, 광개토대왕의 재위 기간 동안 64성과 1,400여 촌락을 얻었으며,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팽창시켜 서로는 요하, 북으로는 개원, 동으로는 훈춘, 남으로는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이르게 했습니다.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국가의 내실 정비에도 노력하여, 중앙 관직을 신설하고, 불교를 장려하는 한편,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하는 등 전쟁에 지친 백성들의 살림을 돌보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서는 광개토대왕에 의해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고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 무엇이 적혀 있을까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19대 임금이었던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현재 이 비석은 중국의 고구려 유적 복원 사업 계획에 따라 방탄 유리벽에 둘러싸인 채 중국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 서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고구려의 건국 신화와 왕계에 얽힌 이야기와, 광개토대왕이 벌인 전투와 그에 따른 성과를 연대별로 기록하고, 왕릉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 등을 빼곡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경위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5세기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를 담은 광개토대왕비가 줄곧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일본이 식민 지배를 위해 비문을 조작했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 즉위년인 신묘년(391년)조의 기록에서 백제와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는 기록의 주체를 왜로 보는 일본 측의 주장과, 고구려로 보는 우리 측 주장이 아직까지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엽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는 증거를 내세우기 위해 일본이 비문을 날조했다는 조작설이 있기에 일본과 우리나라 간의 비문 해석 논쟁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비문에는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와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에 비해, 왜와 거란의 일파인 패려는 타파하거나 공파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가 생각하는 천하 안에 넣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와 가장 빈번하게 전쟁을 벌였던 후연에 대한 내용은 아예 비문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이렇듯 당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게 중국은 별개의 천하에 속하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즉, 고구려는 중국과 다른 별개의 천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가 갖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와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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