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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
꿈을 위한 길 잊을 수 없는 만남들 과학의 새 길, 핵 시대 비극과 인내 내가 나에 대하여 _ 마리 퀴리 용어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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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개척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마리 퀴리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입니다.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여성으로 첫 번째로 교수가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마리가 걸었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과학자로 우뚝 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의 조국인 폴란드는 외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과학에 대한 마리의 호기심과 열정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리 퀴리는 과학의 역사에 빛나는 이정표를 세운 과학자가 되었으니까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큰 꿈을 품다 마리 퀴리는 186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이웃 나라인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는 바르샤바를 포함한 영토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며, 폴란드의 정치와 문화에 간섭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모국어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마리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독립을 쟁취하려는 운동이 두 차례 있었지만, 무력으로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려는 희망을 품게 되었으며, 교육자였던 마리의 부모님도 그런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활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마리는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에도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꿈을 품고 파리로 가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게 되기까지 마리는 8년 동안이나 가정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뒤늦게 대학생이 된 마리는 마음껏 학문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과학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다 대학 시절에 만난 피에르 퀴리는 마리의 인생과 학문의 길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퀴리 부부의 업적은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외부의 조건에 관계없이 스스로 빛과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원소를 찾아낸 것입니다. 200여 년 전에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원자가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설명했지만, 원자도 더 작은 입자들로 쪼개질 수 있다는 학설을 입증해 보인 것이었습니다. 퀴리 부부가 이 원소들을 발견하는 데 바친 노력과 희생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낡은 창고에서 변변찮은 실험기구들을 가지고 연구에 매달리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의 죽음을 가져온 백혈병도 방사능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었기에 인류의 과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