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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으로 가득했던 미국 흑인들의 역사
아프리카의 해안 지역에 총을 든 백인 사냥꾼들이 나타납니다. 노예 상인에게 붙잡힌 흑인들이 사슬에 묶인 채 어둡고 더러운 배의 밑창에 던져집니다. 기나긴 항해 동안 온갖 폭력에 시달리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공급받습니다. 신대륙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경매를 통해 백인 지주들에게 팔립니다. 백인 지주들은 흑인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입을 벌려 이빨을 검사하고, 팔과 다리를 만져보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지요. 자기들이 구입하게 될 흑인들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소나 말처럼 건실한 소유물이자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1808년에 노예 수입이 불법화되지만, 노예 매매는 1850년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흑인들은 가족을 이루어도 공동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 다른 농장으로 팔려 가는 일이 잦았기 때 문입니다. 미국사 연구자인 앨런 브링클리에 따르면, 당시 흑인 가족의 약 3분의 1이 노예 매매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노예제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를 거둔 1865년 미국 전역에서 폐지되지만, 그 뒤로도 인종 차별은 끈질기게 지속되었습니다. 흑인들은 모든 공공 기관이나 교통수단, 심지어는 식당, 병원, 공원, 해변에서 출입이 금지되거나 백인들과 분리되었습니다. 적어도 마틴 루터 킹이나 맬컴 엑스 같은 위대한 흑인 인권운동가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바치게 되는 1960년대 후반까지는 그랬습니다. 본격적인 인권운동의 막을 올리다 몽고메리 시에서 미국 인권운동의 역사를 바꾸게 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55년 12월, 로사 파크스라는 여성이 버스에서 자리를 비키라는 백인의 요구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번진 버스 거부 운동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온갖 위협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마틴은 이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차별이 헌법에 어긋난다 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낸 마틴은 인권운동을 점점 넓혀갔습니다. 1963년 8월 28일, 링컨기념관 앞 광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25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날의 모임은 누구나 자유롭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장을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틴은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행한 이날의 연설이 바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입니다. 그 누구도 억압과 차별을 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마틴의 호소는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행진 이듬해인 1964년, 마틴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에 인류의 이름으로 존경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후로도 마틴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1968년의 어느 날, 잊혀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멤피스 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난 마틴이 괴한이 쏜 총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폭력도 마틴이 부르짖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소망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부르짖던 정의의 외침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