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옮긴이의 글
프롤로그 연필 명상을 위한 십계명 연필 하나 내면의 나와 멀어지다 바라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 백합과 하나 되기 보고 그리는 일이 곧 명상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선과 예술가의 만남 말의 함정 내가 사라지는 체험 제3의 눈 현대인에게 맞는 명상법 조주와 고양이 그림에서 명상으로 준비물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감각의 이심전심 연필 둘 눈앞에 살아 있는 것들을 신뢰하라 나의 첫 경험 이국적인 풍경 그리기 말을 그리려면 말을 느껴야 한다 연필 셋 나의 스승들 누드에 대하여 완벽한 몸 죽음과의 만남 군중을 그리는 법 진짜 나와 가짜 나의 싸움 연필 넷 신기한 습관 얼굴을 그리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라 연필 명상의 핵심 만물의 외침을 듣는 사람 깨달음이 오는 순간 우리가 계속 그려야 할 이유 연필로 명상하기를 통한 변화의 움직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라 |
김태훈의 다른 상품
|
다음 날 아침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저렴한 스케치북과 연필을 나눠주고 바깥으로 나가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는 참석한 사람들을 잔디밭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다.
“서로 최소한 2미터 정도 떨어져서 아무 데나 앉으세요. 말은 하지 말고 그냥 앉아서 긴장을 풀어요. 무엇이든 앞에 있는 대상에 눈길을 주세요. 작은 나무일 수도 있고, 관목일 수도 있고, 큰 나무일 수도 있고, 그냥 풀일 수도 있겠죠. 자, 5분 동안 눈을 감으세요. 이제 눈을 뜨고 작은 나무든, 풀잎이든, 민들레든 앞서 본 것에 집중하세요. 마주본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 눈을 들여다보세요. 이 세상에 당신과 그 대상만 남았다고 느끼세요. 그 대상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세요. 눈앞에 있는 그것이 생사의 모든 수수께끼를 품었다고 느끼세요. 정말로 그래요! 당신은 더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겁니다. 이제 초점을 유지한 채로 느슨하게 연필을 쥐세요. 눈이 받아들이는 대로 손이 종이 위에서 따라가게 하세요. 연필심으로 윤곽을, 그 잎의 전체 둘레를, 풀의 잔가지를 쓰다듬는다고 느끼세요. 그저 손이 움직이게 하세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마세요. 그건 전혀 중요치 않아요. 연필이 스케치북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다만 보는 대상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연필을 떼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열심히 그리지 마세요. 그리고 있는 대상을 ‘생각’지 마세요. 그저 눈이 보는 대로 손이 따르게 하세요. 보이는 것을 쓰다듬으세요.” --- pp. 21-23 나는 그리지 않은 것은 결코 진정으로 보지 못한 것임을 배웠다. 그리기 시작할 때 평범한 대상이 얼마나 특별해지는지 모른다. 나무의 갈라져 나간 가지나 민들레 씨앗 방울의 구조가 순전한 기적임을 깨닫는다. 시인 월트 휘트먼은 “생쥐는 수많은 불신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의 기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만물 중에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모든 것은 보여지고, 그려질 가치가 있다. --- p. 38 나는 사색하는 방법으로서의 연필 명상이 과도한 자극을 습관적으로 받아 과부하가 걸린 현대인의 성품에 특히 잘 맞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우리 사회의 습관적이고, 기계적이고, 지루하며, 탐욕스런 자동성으로부터 나를 구출하는 수련이다. 나는 흔들림 없는 주의력으로 언덕, 새, 사람의 얼굴을 그리며 나아가 나 자신과 대면한다. 선사는 “앉거든 그냥 앉아 있고, 흔들거리지 마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데 길들여졌다. 하지만 눈의 초점을 얼굴과 꽃에 맞추면 흔들거리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아마 더 편안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리하면 손은 자연스럽게 눈을 따를 것이다. 7세기 선종의 대사 혜능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관계, 그리고 그가 말한 ‘삼세불三世佛의 지혜’는 우리 마음에 내재하며, 인간이 지닌 영적 자질의 일부임을 지적했다. 그는 이 지혜를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도 있고 스승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진리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이해된다.” --- pp. 50-52 획일적인 학교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에서 살아남은 모든 이의 역사 속에 내면의 미술가가 깨어 있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단지 존재만으로도 의욕을 북돋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진정한 스승이다.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고향의 옷가게에서 일하던 점원이다. 그는 주말이면 혀를 빼물고 앉아 오래된 성곽을 그렸다.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보이는 모든 돌을 모사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쑥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화가가 아냐. 그저 물건들을 베낄 뿐이지.” 그럼에도 그에게 그림은 단지 취미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동류의식이 뒤섞인 호감을 느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몰두하는 다른 어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살피고는 “멈추지 말고 계속 그려. 넌 화가야”라고 말했다.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스승은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 외려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변호사로 아버지의 법적 대리인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예고 없이 그를 방문했다. 하녀가 우리를 딱딱한 분위기의 거실로 안내했을 때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소나타에 심취한 나머지 우리가 정중하게 기침 소리를 내고 나서야 우리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깊이 감동받은 나는 문득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는 내게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나는 왁자지껄한 지역 축제에서도 스승을 보았다. 그는 낡은 상의를 걸치고 서서 대관람차에 탄 연인들,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을 스케치하던 깡마른 화가였다. 나는 그에게 존경심 어린 호감을 느꼈다. 강박적인 흥겨움에 사로잡혀 부산을 떨며 떼 지어 다니는 군중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 pp. 108-112 |
|
연필로 그려보는 마음의 풍경들
일명 ‘밥 아저씨’라 불리며 TV 속에서 화려한 그림 기술을 보여준 밥 로스를 모르는 3, 40대는 없을 것이다. 그의 붓질 한 번에 하늘이 펼쳐지고 시원한 폭포가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그림 그리기에 대한 경의를 느꼈다. 이렇듯 그림을 보는 것 못지않게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마음에 위안을 준다. 이 책 《연필 명상》의 핵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아주 단순한 선 하나를 그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필 명상’은 밥 아저씨처럼 여러 가지 색의 물감과 다양한 붓들과 화려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하다.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만 있다면 우리 내면의 미술가가 깨어나 우리를 ‘창조의 바다’로 안내할 것이라 이 책은 말한다. 나아가, 그림을 그리면 그 대상을 그리는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상처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심오한 철학은 저자 프레데릭 프랑크가 화려한 생활을 과감히 뒤로 한 채 연필 한 자루와 종이만 들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깨달은 것이다. 무위진인(無位眞人), 만물의 외침을 듣고 그리는 사람 프레데릭 프랑크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다. 그가 가진 학위만 의학, 치의학, 미술 3가지다. 그는 치과의사로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3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그때의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 책으로 내기도 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소에도 재능이 있어 그의 여러 작품들을 유명 미술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그를 ‘구루’라고 칭하며 이 시대의 길을 밝히는 사상가로 평하고 있다. 그의 이런 화려한 이력은 그의 또 다른 별명인 ‘르네상스인’이 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사상가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의 인생을 바꾼 세 명의 정신적 스승이 있었다. 첫 번째가 알베르트 슈바이처, 두 번째가 일본 불교를 서양에 전파한 스즈키 다이세츠 선사, 세 번째가 가톨릭교회에 대변혁을 일으킨 교황 요한 23세다. 그는 이 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종교를 초월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양의 선불교, 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 등 여러 명상의 세계를 접한다. 이 책을 보면 그의 세상을 향한 다채로운 탐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처음에 읽으면 낯선 문장들이 이러한 배경을 알면 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괴로움은 육체의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마음의 목마름은 물을 마셨다고 해서 해갈되지 않는다. 마음의 평온함을 얻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도 따뜻하고 평화롭다. 마음이 선량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 마음을 열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 _ 데카르트 프레데릭 프랑크에게 그림은 세상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가식 없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데 이만한 명상법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기교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간단한 도구와 단정한 마음에만 깨달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그동안의 화려한 회화와 사진들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책 속의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듯, 그의 글도 정제된 언어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소음과 자극과 지나친 정보에 오염된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사고 회로에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말이다. 그가 쓴 이러한 메시지는 20세기에 쓰였지만, 고전이 항상 그러하듯,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이 사랑받은 것은 이러한 깊은 통찰과 불변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도한 말과 화려하지만 내용이 없는 정보에 지친 이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