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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으로 보는 것 없으니 분별이 사라지고
2. 귀로 듣는 것 없으니 시비가 끊어지네 3. 분별도 시비도 훌훌 놓아버리고 4. 오직 마음부처 찾아 스스로 귀의하라 |
무염(無染), 벽록檗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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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 candy@yes24.com
8월. 여름의 한복판이다. 학생들에겐 방학이 있고 직장인들에겐 휴가가 있어 모처럼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시즌이다. 주식, 인터넷, 이자율, 소음과 매연, 북적거리는 거리와 사람들. 생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갖가지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도 잠시 쉬어갈 만한 평온한 곳에서 마음을 청소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 그래. 그거 괜찮겠군" 하며 바로 달력을 보며 일정을 체크해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이 책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를 권해 주고 싶다.
저자는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 『산은 산, 물은 물』,만해 한용운의 전기 소설 『만행』 등의 작품을 통해 불교에 천착해 온 작가. 십 수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0대 초반부터 5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7년 간 산중 암자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제 나그네생활을 청산하고 마음속에 그려둔 암자를 한 채 지어 청산에 살고 싶다'는 뜻을 작가의 말에 밝혔듯이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는 그간의 산중 암자 기행을 마무리하는 책이기에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왜 하필 암자인가. 설악산, 태백산과 같은 험한 산세에 친절한 이정표 하나 숨어있지 않은, 그래서 사람보다는 산짐승들이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암자인가. 산업화와 인터넷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이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저자는 이 책에 담긴 달마스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스님. 제가 절을 택하지 않고 암자를 찾는 것은 모든 산 속이 관광지화 되고있는 요즘 그래도 그곳만은 청정공간이 아닐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몇몇 암자는 어느새 시끄럽고 북적거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렇기도 하지만 불사(佛事)를 하느라고 어수선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청정공간.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어디 있겠냐만, 이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저잣거리의 이해타산이 넘실대는 요즘, 모든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려 한 선사들의 뜻이 담긴 깊은 산중의 암자만큼 청정한 공간이 어디 있을까. 또한 심신의 피곤함을 견디며 한발 한발 암자를 찾아 올라가는 그 길이 바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수련의 길이 아니던가. '성철스님. 김 노인의 얘기를 들어 안 사실입니다만 김 노인에게는 <삼천배>를 시키지 않았다면서요. 그냥 법당에서 합장만 하라고 시키셨다는데, 저는 그 순간 바로 <삼천배>의 뜻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한배를 하든 삼천배를 하든 청정한 마음이면 그만이지 절의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난의 향기처럼 깊고도 은은한 사연이 풍겨 나오는 산중 암자 기행문을 읽으며 평화롭고, 작가가 선사들에게 띄우는 편지글을 읽으며 가슴 한켠이 싸한 느낌이다. 피안(彼岸)의 세계로 떠난 분들이라 대답이 없는 글이지만, 고승들의 삶과 말씀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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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저는 이 법문을 제 그릇으로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간택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을 <시비에 빠져들지 말고 균형 감각을 지니며 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우리 같은 중생이야 당신의 법문을 그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짧은 인생을 여유롭고 멋들어지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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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왕암이라는 암자 이름의 슬픈 유래 때문이다.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왕자 융은 계룡산의 이곳까지 숨어들어와 백제의 부흥을 꿈꾸다가 좌절하였던 곳, 백제가 멸망한 이후 7년 동안이나 이곳 동굴에서 머물다가 왕자 융도 결국에는 항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스님들이 <왕이 머물렀던 암자>라 하여 원래의 이름을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옛 고자가 여기서는 <머무를 고>자라는 사실.
천몇백 년 전의 일이지만 소멸이란 가슴 아픈 것. 그것도 한 왕국의 멸망이므로 안타까움이 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가벼운 우리들이야 어찌 백제의 슬픈 역사에만 젖어 있을 것인가. 그러한 감상을 계속 물에 흘려 띄우고 지금 내리는 빗방울에 씻겨 보내고 만다. --- p.197~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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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찰들도 많건만 왜 하필 암자인가? 절을 택하지 않고 암자를 찾는 이유를 작가는 산속이 관광지화 되고 있는 요즘 그래도 그곳만은 청정공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벽 예불 때 울리는 소종 소리에 작은 깨달음을 얻는 곳. 졸고 있는 노승의 모습을 닮은 곳. 가난을 선택하였기에 더욱 청빈한 곳, 그곳이 바로 암자이다. 그래서 스님의 옷 중에 누더기 장삼이 가장 아름답듯 고졸한 맛의 외딴 암자가 화려한 사찰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가 편답하는 30곳의 암자는 그 규모나 유명세가 다양하다. 이젠 성지가 되다시피 한 가야산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의 추상 같은 가르침을 상기하고 설악산 금강굴에서 천불동의 진경을 가슴에 새기며 오대산 염불암에 이르러서는 한강의 수원이 되는 우통수의 찬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암자를 지키고 있는 수행자들이나 오가며 만나는 촌로들과 나누는 대화는 산중에서 맞이하는 한줄기 맑은 솔바람과 같은 휴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