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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들어가기 전에 ‘센스’라는 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센스와 문화자본 인간은 ‘남아도는’ 동물이다 센스의 좋고 나쁨에서 그 너머로 제1장 센스란 무엇인가? 감각과 사고 ‘고르는 센스’에서 출발한다 센스가 ‘무자각(無自覺)’인 상태 ‘잘하느냐 못하느냐’에서 ‘헤타우마’로 센스가 자각되지 않은 방 센스는 헤타우마다 기준점 자체를 바꾼다 모델 재현을 그만두는 것, AI ‘학습’ 제2장 리듬으로 파악한다 의미에서 강도로 형태도 멋도 리듬이다 - 조명 스탠드와 만두 여러 개의 흐름을 ‘다중 녹음’처럼 포착한다 최소한의 센스 - 리듬의 재미를 깨닫는다 쉽게 할 수 있는 모더니즘 라우션버그와 만두 제3장 까꿍의 원리 리듬을 탄다는 것 굴곡과 비트 이야기와 ‘결핍’ 까꿍의 원리 까꿍 놀이는 곧 서스펜스다 일상의 서스펜스 제4장 의미의 리듬 큰 의미에서 작은 의미로 인생의 다면성 모더니즘, 포멀리즘 감동을 반으로 줄이고 사소한 부분을 말로 표현한다 의미란 무엇인가 - ‘가깝다’와 ‘멀다’ AI와 인간 - ChatGPT로 생각한다 대립 관계와 리듬 의미의 리듬 감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 대략적인 감동과 구조적인 감동 오락 소설과 순수문학 전반부의 정리 제5장 나열하는 것 영화의 ‘샷’과 ‘몽타주’ 잘 알려지지 않은 몽타주의 재미 예측오차의 최소화 그래도 우리는 서스펜스를 찾는다 - 예측오차와 쾌락 ‘무엇을 어떻게 나열해도 좋다’는 것 연결되느냐 아니냐는 설정하기 나름 제6장 센스와 우연성 ‘모든 예술’을 생각하다 아름다움과 숭고함 - 우연성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만들려고 한다’에서 ‘결과적으로 할 수 있다’로 미치지 못하는 어긋남과 지나친 어긋남 자신에게만 존재하는 우연성 제7장 시간과 인간 예술이란 시간을 갖는 것 베르그송의 시간론 지나치게 많은 가능성을 제한하다 인간의 다양성 목적 지향과 예술적인 매달려있기 제8장 반복과 안티센스 예술의 의미 예술과 ‘문제’ 작품이란 ‘문제’의 변형이다 어쩔 수 없는 딜레마 센스와 안티센스 악마적인 반복 부록 예술과 생활을 연결하는 연습 독서 가이드 마지막으로 |
Masaya Chiba,ちば まさや,千葉 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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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가 좋다.”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약간 뜨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자신의 체질에 관해서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 노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 「‘센스’라는 말」 중에서 이 책을 ‘센스가 좋아지는 책’이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바로 종합적으로 센스를 넓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음악, 패션, 실내장식, 미술, 문학 등에 걸쳐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넓히고 싶은 것이다. 이는 생활이나 일에까지 이어진다. ---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센스’라고 하면 백지 위에 선을 그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는 것은 미술도 음악도 아니다. 아는 작품이나 보고 들은 경험, 어떤 인상 등의 소재가 있고 그것을 기억해내서 선택하고 조합하고 변형하며, 거기서 훌쩍 날아올라(飛躍)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창조 행위의 밑바탕에는 ‘선택’이 있다. --- 「‘고르는 센스’에서 출발한다」 중에서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사진처럼 그린 그림만 ‘잘 그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인기가 아주 많은 모네와 고흐의 그림은 풍경과 물건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하지만, 사진 같지 않고 개성 넘치는 맛이 있다. 모네의 그림은 붓 터치가 거칠어 사물의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반 고흐가 그리는 형태에는 바로 반 고흐임을 알 수 있는 개성 만점의 왜곡이 있는데, 거기에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사진과 같은 정확성에서는 어긋나 있지만, 그 어긋남이 매력이며, 그 어긋남이 유머러스하다고 해서 이른바 ‘헤타우마’가 된다. --- 「‘잘하느냐 못하느냐’에서 ‘헤타우마’로」 중에서 크게 말하면 같은 자극이 반복되는 규칙성, 그리고 그것이 중단되거나 혹은 다른 유형의 자극이 들어오는 일탈. 이러한 ‘규칙과 일탈’의 조합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 바꿔 말하면 ‘반복과 차이’가 리듬이다. 내가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철학자 들뢰즈에게는 《차이와 반복(Difference et repetition)》이라는 저작이 있는데, 이를 의식하고 앞으로는 주로 ‘반복과 차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한다. --- 「여러 개의 흐름을 ‘다중 녹음’처럼 포착한다」 중에서 의미에서 벗어난 리듬의 재미, 그 재미를 아는 것이 최소한의 좋은 센스라고 했다. 사실 그것은 20세기에 여러 장르의 예술이 지향했던 방향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센스란 의미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시대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소리와 형태를 구성하게 되는 근대화 혹은 현대화(이것을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더니즘을 좋게 보는 가치관을 가리키는 것이다. --- 「쉽게 할 수 있는 모더니즘」 중에서 무언가가 없는 혹은 숨겨진 상태에서 드러난 상태로의 전환, ‘없다’에서 ‘있다’로의 전환. 아이들이 이 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놀이가 인간의 뿌리에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까꿍’ 놀이는 근본적인 ‘불안과 안심’의 교차를 의미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불안과 안심을 직접 경험하는 게 아니라, 놀이라는 형태로 그것을 포장해 간접화하고 있다. 놀이를 통해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된다. --- 「까꿍의 원리」 중에서 지금까지 이 책에서는 예술작품, 혹은 생활의 한 부분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것에 관해 의미나 목적에서 일단 벗어나 사물을 그 자체로서, 즉 형태나 색, 울림, 맛 등의 리듬으로서 즐기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혹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같은 답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리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을 갖는 것이 센스의 첫걸음이다. 이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 「큰 의미에서 작은 의미로」 중에서 리듬은 반복에서 오는 어긋남, 즉 차이가 있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일단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반복으로 인하여 예측오차가 생기는 것으로만 파악한다면 불쾌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리듬이 재미있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예측오차의 최소화」 중에서 회화든 음악이든 실내장식이든 패션이든, 요소를 나열하는 것은 곧 리듬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열된 것(리듬)을 감상하거나 만든다는 것은 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예술에 대한 이론’이 된다. 미술이나 영화나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개별 장르의 ‘규범’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 마니아는 그런 태도로 심술궂은 말을 하기 쉽지만 - 모든 예술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모든 예술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물론 일상의 식사라든가 실내장식까지 전부 포함해서 말이다. --- 「‘모든 예술’을 생각하다」 중에서 “결국, 이 작품은 무엇인가?” 여태 이 질문을 제쳐둔 이유는 뭘까. 의미를 알 수 있는지 없는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한 집착이 추상적이거나 복잡한 작품에 대한 접근을 아예 차단하기 때문이다. 여러 작품을 동일 평면상에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의미를 향한 관심을 일단 내려놓는 것이 좋다. 그러면 단순히 사각형이나 선이나 페인트가 튄 자국만 있는 화면이든, 혹은 인간이나 풍경을 그려서 ‘의미를 알 수 있는’ 작품이든, 어쨌건 리듬의 재미라는 같은 관점에서 즐길 수 있게 된다. --- 「예술의 의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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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가 있다”는 말에 대한 가장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설
일본 학계와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인문학 수업 밀리언셀러 지바 마사야의 철학 3부작 완결편 어쩌다가 ‘센스’와 ‘철학’이라는 단어가 결합하게 되었을까. 센스는 철학보다는 ‘점심 메뉴’, ‘일머리’ 같은 단어와 더 친숙한 단어다. 학문적인 관점보다는 일상의 경험과 가까운 단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센스’는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설명할 길이 없는 단어다. 이미 『현대사상입문』, 『공부의 철학』 등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근한 지바 마사야는 이해하기 쉬운 철학적 분석법으로 이 ‘센스’라는 단어를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파헤친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센스 있는’ 사람인가? ‘센스’라는 말은 어딘가 배타적으로 들리는 구석이 있다. 노력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원래부터 바꿀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우리가 원래 ‘센스 좋은’ 사람과 ‘센스 없는’ 사람으로 나눠 태어난 것처럼.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자. 센스를 ‘좋고 나쁨’이 아니라 ‘자각과 무자각’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시선이 트인다. 이런 자세만으로 ‘센스’는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이제 그 노력의 방향만 파악하면 ‘센스가 좋아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센스는 후천적인 ‘경험’의 총체라는 얘기다. 센스가 좋다는 건 그냥 잘하는 것? 아니,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잘하는 것! 우리는 잘한다는 의미를 ‘재현’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그림의 경우, ‘잘 그렸는가, 못 그렸는가,’ 하는 판단의 기준은 ‘모델을 충실히 재현했는가’의 여부다. 하지만 모델을 충실히 재현하기만 하면 ‘잘 그린’ 그림인가? ‘센스 있는’ 그림인가? 센스 있는 그림은 모델의 재현보다 자신의 선 움직임을 우선시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모델을 재현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면 그건 못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재현보다 앞서 자신만의 선 움직임을 입힌 거라면 이건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센스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센스란 재현에서 벗어나 마치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센스란 의미에 담긴 게 아니다 그 자체로서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어떤 소설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하는 식으로 의미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센스는 그림이나 소설이 펼쳐지고 있는 형태, 운동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 의미에서 벗어나자. 즉물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런 즉물적인 형태가 ‘리듬’이고, 이 리듬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센스’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센스는 재미있는 ‘리듬의 배치’에서 나온다 센스가 좋다는 건 나만의 개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물 그 자체의 리듬, 그 굴곡진 정도, 이런 배치가 재미있는 것이 좋은 센스다. 리듬의 부재와 존재의 명멸, 적절한 스펙트럼이 담긴 생성의 변화 과정, 반복과 차이, 규칙과 일탈, 균형 안에서 허락된 예측오차. 이런 리듬의 배치와 그걸 아는 것, 그리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좋은 센스’다. 일상의 즐거움과 좋은 센스 인생이 10배 더 즐거워지는 책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센스’의 실체가 서서히 떠오른다. 그렇다고 단순히 감이 좋아진다거나, 예술적 안목이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 담긴 무수한 리듬의 의미를 깨닫고, 평소 놓치고 있던 리듬의 요소를 즐기게 된다는 의미다. ‘센스’에 ‘철학’을 붙여 책 제목을 만든 맥락이 여기에 있다. 이 책에는 ‘센스’라는 단어 해석을 넘어 ‘센스’로 삶을 풀어내는 ‘철학적’ 시도가 담겨 있다. 저자가 추적하는 센스의 흐름을 타보자, 기분 좋은 파도에 몸을 맡기듯. 센스와 더불어 인생 전반의 철학적 통찰과 창조적 사고가 당신을 기다릴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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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의 철학’이라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그러나 페이지를 넘겨가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술과 철학, 그리고 일상의 리듬과 ‘센스’를 연결하는 저자의 탁월한 ‘편집력’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창조’ 이후의 주제로 ‘의사소통’을 손에 쥐고 고민하던 내가 ‘리듬’이라는 주제를 발견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을 쓴 지바 마사야 또한 전혀 다른 영역에서 ‘리듬’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리듬을 갖는다’는 내 생각과 ‘기분 좋은 파도에 몸을 맡기듯, 무규칙과 우연의 삶 속에서 리듬을 경험하는 것이 센스 있는 삶’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아주 교묘하게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책에서 던지는 ‘센스’에 관한 구체적 메시지도 흥미롭지만, 종횡무진하는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정리하며 읽는 것도 큰 공부가 될 듯하다. ‘창조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흥미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타적 사고’를 하며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저자의 책들을 감동하며 읽은 적이 많다. 가라타니 고진, 마츠오카 세이고 같은 학자들이다. 대학의 ‘학과’라는 벽에 갇혀서 도무지 영역을 건너뛰는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의 학문풍토에 절망하고 있을 때, 이종격투기 같은 그들의 책은 내게 별처럼 빛났다. 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이 흥미로운 일본학자의 책 『센스의 철학』을 읽었다.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바로 주문했다. 나처럼 많은 독자들이 이 책과 함께 2025년을 아주 ‘센스’ 있게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 《창조적 시선》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