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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로라 밀러
작가 정보 | 셜리 잭슨 해설 | 김용언 |
Shirley Hardie Jac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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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은 잠겨 있습니다. 힐 하우스는 집요하다 할 만큼 끈질긴 접대로 유명하죠. 아무래도 손님을 내보내길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십팔 년 전에 해가 진 후 힐 하우스를 떠나려고 시도했던 마지막 사람은 진입로 굽이에서 살해당했죠. 말이 날뛰는 바람에 거대한 나무로 날아가 부딪혀 버렸습니다. 힐 하우스의 사연을 알고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떠나려고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p.118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기꺼이 버리는 짓이죠. 두려움에 굴복하거나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지, 그 중간을 택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p.244 또다시 나직하게 낄낄 웃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미친 듯이 높아져 목소리를 삼켜 버렸다. 불현듯 절대적 침묵이 내려앉았다. 엘리너는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순간 들린 작고도 부드러운 울음소리에 그녀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겼다. 한없이 슬픈 울음이었다. 쓰라린 슬픔의 나직하고도 달콤한 탄식이었다. 어린애야, 어린애가 어딘가에서 울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바로 그때,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에 결코 들어 본 적 없었지만 악몽에서 항상 들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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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를 가진 집
『힐 하우스의 유령』은 기괴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하는 고딕 호러 소설이다. 배경으로 쓰인 폐쇄적인 공간이 ‘살아 있다’는 점 때문에 평범한 공포 소설과 다른 인상을 심어 준다. 지어질 때부터 집 스스로 어둠과 음울함을 추구했을 것이라는 서술을 비롯하여, 힐 하우스는 처음부터 ‘악한 의지를 고집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밝은 햇살이나 상쾌한 바람은 물론이고 집을 밝게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집 스스로 거부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사람들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힐 하우스의 정면은 마치 악마가 웃고 있는 얼굴처럼 보인다. 힐 하우스의 악한 의지는 거주자들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오래된 저택은 일단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고 냉기를 흘려 보내고 방 전체를 뒤흔들면서 거주자들을 괴롭힌다. 힐 하우스가 일으키는 초자연 현상은 주인공이 어릴 적에 겪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힐 하우스의 악의가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자신의 불안감이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힐 하우스의 공포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공포는 다른 공포 소설처럼 생명에 대한 위협 때문이 아니다. 신체가 훼손되는 것은 가장 노골적인 수준의 공포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제공하는 공포는 보다 심층적이다. 강력한 악의를 가진 힐 하우스는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여 무너지게 만든다. 집이 흔들리는 현상을 자꾸 겪고, 벽에 피로 씐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결국 주인공은 힐 하우스에 굴복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의 정신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는 서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읽는 독자는 실제로 힐 하우스가 주인공을 습격한 것인지 힐 하우스의 습격을 주인공이 상상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점점 광기로 치닫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자신의 불안마저 자극받는다. 힐 하우스에서 파멸을 맞은 주인공처럼,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아무도 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선사하는 궁극적인 공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와 『힐 하우스의 유령』 『힐 하우스의 유령』은 셜리 잭슨의 다른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성문영 옮김, 엘릭시르, 2014)와 비슷한 주인공을 가지고 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엘리너와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메리캣은 둘 다 여성이고, 자신만 사용하는 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병적으로 아끼는 등 섬세하면서도 비틀린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고풍스러운 저택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탈출을 거부하며, 자신의 상상 속 마법적인 장치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굳게 지킨다. 무엇보다 두 작품의 배경은 셜리 잭슨이 평생 감내해야 했던 억압을 반영하고 있다. 잭슨은 엄격한 어머니의 그림자를 떨쳐내려 안간힘을 썼고, 남편의 대학 사회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배타적인 이웃과의 화해도 거절하며 평생 고독하게 분투했던 것이다.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하는 두 작품이지만 그 끝은 사뭇 다르다. 셜리 잭슨의 마지막 작품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결말에서 주인공 자매가 서로를 끌어안고 ‘우리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작가가 평생의 고립과 억압에 대처하는 방향을 마침내 찾아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그보다 육 년 전에 집필된 작품이다. 이 시기의 셜리 잭슨은 강압적인 어머니와 사회의 배척에 대처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녀가 통감했던 절망과 공포는 『힐 하우스의 유령』의 결말에 그대로 녹아들어 비극적인 끝을 보여 준다. 셰익스피어와 셜리 잭슨 셜리 잭슨은 영문학의 아버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힐 하우스의 유령』에 삽입하여 훌륭한 메타포로 활용했다. 몬터규 박사는 아내의 부정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밤의 꿈〉에 빗대어 비난하고, 비극의 주인공 엘리너는 아름다운 사랑의 성취를 노래하는 ‘사랑하는 이여’(희곡〈십이야〉삽입곡)라는 곡을 내내 흥얼거린다. 특히 이 아이러니한 연출은 작품의 비극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가진 운명의 처절함을 극대화시킨다. 기존 작품의 컨텍스트적 활용은 작품에 깊이를 더할뿐더러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배로 선사한다. 특히 영문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진 시적 아름다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의 비극과 기괴함을 극대화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대범한 연출은 셜리 잭슨의 독특한 작풍에 힘을 실어 그녀를 20세기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