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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13
1. 비난이 아니라 비판을 하려면 13 2. 남해 농부 이야기 17 3. 거울처럼 닮은 한국과 일본의 여성 기자들 19 4. 카노사의 굴욕, 명분과 현실 21 5. 누가 리더를 죽였나 23 6. 무엇이 악성민원을 만드나 25 7. 태도로서의 마음 27 8. 지구를 살리는 영웅이라고 29 9. 주연 만드는 수많은 조연들 31 10. 자궁의 불평등 33 11. 한겨울 폭염백서를 기다리며 35 12. 공적 인사와 민주주의 37 13. 살인자 오씨의 경우 39 14. 싫어하는 것을 겪지 않을 권리 42 15. 어느 죽음 44 16. 풍년이 서러운 농심 46 17. 누구든‘치빠’만 잘하면 됩니까 47 18. K 유학의 그늘 49 19. 딥페이크, 깊은 속임수 51 20. 유구한 선당후곰 정신 53 21. 양방 물신주의 55 22. 식품 사막은 올바른 표현일까 57 23. 파국의 형형 상태 60 24. 먹고 사는 문제 62 25. 넘의 뮛등(묘)이라도 65 26. 사람을 돌보는 일의 가치 68 27. 읽는 사회, 읽지 않는 사회 70 28. 팔만대장경과 노벨 문학상 72 29. 폭염 추석·츠로 야구 관중 고역 기후 매뉴얼 바꿔라 74 30. 정년 연장이 꺼내든 숙제 76 31. 권력자와 측근의 위험한 결탁 78 32. 이 땅에 살기 위하여 80 33. 로테나의 극단적 이별은 이르다 83 34. 박경석의 운동이 초래하는 시민의 불편 85 35. 민주주의와 불평등 87 36. 불신지옥 89 37. 지역소멸 위기탈츨 넘버원 91 38. 어느 무연고 시민 장례식 93 39.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96 40. 미치광이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더 맡겨 둘 수 없다 98 41. 공주는 외로워, 김자옥 그리고 박근혜·조현아 101 42. 왕건과 민족 재통일 104 43. 농업의 기계화에 대한 단상 106 44. 구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출발 108 45. 연금 개혁과 의료 개혁 그리고 두 번째 기회 110 46. 한일 해저 터널·가덕도 신공항의 이면 112 47. 구멍 숭숭 뚫린 외국인 인력 통계 119 48. 휴가는 자유의 시간, 운치 안 봐요 123 49. 김생굴, 타이포그래피의 고향 128 50. 누가 큰바위 얼굴인가 130 51. 솜방망이는 죄가 없다 132 52. 중대재해 예방법이 되려면 134 53. R이 가르쳐 준 대선의 언어 136 54. 우크라이나 사태와 전략적 모호성 138 55. 예술 깎아내린 루터의 종교개혁 140 56. 국가 거버넌스의 안정성 147 57. 50+전환 학교를 허하라 149 58. 왜 언론이 나서 차별을 정당화 하는가 151 59. 오만과 편견 153 60. 사법의 그림자 157 61. 빼앗긴 밤에도 별이 빛날까 160 62. 다양한 열림과 내외부 연결을 지향한 공간 163 63. 앞사람과 뒷사람 16864. 다시 도진 고질병, 스크린 싹쓸이 170 65. 어둡고 흐릿한 이의 존경심 172 66. 타투, 범죄화가 답이 아니다 174 67. 리더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이유 176 68. 익명 통신의 자유와 통신자료제공 제도 178 69. 미래의 예측 불가능을 인정할 때,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이 열린다 180 70. 인성 재판에 반하여 187 71. 안전대책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189 72. 숨은 사회 카르텔 191 73. 이준석의 허망한 승리 19374. 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 197 75.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199 76. 욕망과 탐욕의 두 얼굴 202 77. 용산공원만들기, 서두르지 말고 더 상상하자 204 78. 원숭이 탈출 소동과 쥐와의 동반 여행 209 79. 아이슈타인도 정적인 우주로 오판, 우주 공간은 지금도 커지고 있다 221 80. 과몰입 공화국 217 81.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들 219 82. 모래에 머리 박기 221 83. 대학생 친구가 없더라도 223 84. 알고리즘 뉴스 배열, 앞으로 더 중요하다 225 85. 동독의 재발견과 북한 방송 개방 227 86. 닦아서 말할 줄 아는 어른들 230 87. 삼겹살 일인분 왜 180그램? 232 88. 가을, 이야기를 타작하다 234 89. 울게 하소서 236 90. 문해력 논란 238 91. 수학의 어려움 239 Ⅱ. 나가는 글/241 참고문헌/245 주석/247 |
金龍洙,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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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쓰면서
우리는 요즘 먹고 마시는 것, 음식 문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 즉 하루 한 잔 꼴이다. 커피 전문점 매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espresso) 원두도 선택해서 즐기는 맞춤형 고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제 마실 만큼 마셨는지, 더 스페셜(special)한 커피를 찾고 있다. 한 압력으로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 신속하다’의 뜻이다.‘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현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존재하기 전인 1880년대에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뜻은, 고객의 주문에 맞추어(expressly) 추출한 신선한 커피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가루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9~11bar의 압력으로 뜨거운 물을 가하여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한 고농축 커피’를 의미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들이 음식 예찬과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로 바뀌고 있다. 방송 또한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명언처럼 굳어진‘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란 말도 음식의 쾌락에 기반해 나오지 않았는가. 이는 프랑스인들이 고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계통의 질환이 적고 건강하게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탐식은 더 이상 죄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탐식이 죄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미각적 쾌락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선(善)인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랑스인과 관련된 역설을 이르는 말. 본래는 문화적ㆍ사회적 차원에서 프랑스인의 비상식적인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1980년대 이후 프랑스인들이 동물성 지방을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 비하여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탐식과 미식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르망디즈(gourmandise)는 탐식, 미식, 식도락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한때 구르망디즈는 음식을 무조건 탐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고, 심지어 탐식은 간음을 낳는 죄로 여길 정도로 부도덕한 단어였다. 그러나 점차 이 단어는 맛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즐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구르망디즈에서 착안한 용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위(胃)를 의미하는 가스트로(gastro)와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미식가를 지칭한 가스트로노미는 잘 먹는 기술과 방법으로 도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하며 먹는다는 뜻이다. 음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 선악이 달라진다. 문제는 도를 벗어난 무절제와 과잉에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Rabelais, F.)의 대표작‘가르강튀아(Gargantua)’에 등장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과잉이었다. 그는 폭식, 폭음이라는 과잉이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중세 세계에 만연한 부조리임을 폭로했다. 『문학』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Rabelais, F.)가 지어 1534년에 간행된 풍자 소설. 전 5권으로 된, 프랑스 르네상스의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권으로, 체력과 식욕, 지식욕이 뛰어난 거인 가르강튀아가 중세 말기의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흥미진진하게 풍자ㆍ비판한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는 인간이 행하는 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잉이라고 했다. 과잉이 왜 악일까. 과잉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잉은 본질을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과잉은 좋은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쾌락으로 몰아넣는 거짓이자 악이라고 했다. 탐식을 인간의 내면적 삶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 수도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5-399)이다. 그는 인간을 내적으로 타락시키는 8가지 악덕을 열거하면서, 첫 번째 자리에 탐식을 놓았다. 그는 과잉이 낳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했다. 우리는 탐욕과 과잉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탐욕과 과잉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탐식과 과잉이 진실한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인간(人間)은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이다. 문화(文化)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이다. 이 책은 사람의 본성과 관계지어 사회 전체 구성원의 생활 양식과 행동 양식 및 그 기반이 되는 물질적, 정신적 소산과 관련이 있는 것을 누리는 인간 문화와 인간 행동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 2025년 3월, 海東 김용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