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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땅에서 나를 만나
간디의 넋을 빼앗은 여신 다람살라의 견원지간 걸인의 웃음 소녀 수자타의 자비 나를 살린 떠돌이 스와미 모든 것은 이미 그대 안에 있다 노승과의 동행 여신과의 동침 보드가야의 개미 새끼 도마뱀과의 동거 마리화나 상인 우탈리 이 순간 평화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신이 안내한 토굴 히말라야가 된 여인 네팔 요리사 프라밧의 사랑법 수라지가 남긴 사진 공작새도 샘내는 미나네 가족 대리석 상에 갇힌 신들을 깨워라 돼지로 오신 신 카스트를 실은 기차 속이면 속아라 불상 속에 갇힌 아힘사 재이 람, 라마에게 승리를 행복은 거기가 아닌 여기에 간디의 기도 모든 집에는 문이 있다 데레사 수녀의 눈물 마음 따뜻한 무신론자 평안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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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호기심 어린 권유에 마지못한 척 자전거에 올랐다. 그런데 잠시 자세가 흔들렸을 뿐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자 곧 균형을 찾았다. 25년 전의 감각을 되찾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찌 우리의 삶도 우리의 업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선업도 악업도 한 번 길들여지면 이처럼 몸에 익어 세월이 지나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어머니이고, 현재는 바로 후생의 어머니이다. 수자녀의 선업 또한 해가 바뀌고 천년 2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바퀴가 굴러가고 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내 삶도 그러할 터.
싯다르타가 앉았던 자리에 다람쥐가 앉아 있다. 까치도 날아왔다. 붓다가 오고 가며 보리수가 오고 간다. 까치가 오고 간다. 사람들이 오고 간다. 희망이 오고 가며, 절망도 오고 간다. 지옥이 오고 가며, 천국이 오고 간다. 움직이지 않는 불상과 대탑 위로 오고 가는 저들이 바로 붓다를 깨닫게 한 진리가 아닌가.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던가. 그의 얼굴이 키노르 카일라시를 닮았다. 와 왔느냐, 무엇 하러 앉아 있느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궁금증 같은 것도 없어 보였다. 여인의 침묵이 내가 히말라야 오지에서 수백 번도 더 물었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미 히말라야가 된 사람은 히말라야를 정복하지도 히말라야를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호적인 편견도 편견이다. 잠시 떠나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나나크의 사진으로 얼굴을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방인이 먼 미래에 델리에 와서 속을 줄 미리 알았을까. 카비르가 남긴 시로 위로를 삼고 약을 삼았다. 속이려 들지 말고 언제든지 속을 준비를 하라. 속는다고 해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남을 속이면 모든 것을 잃는다. 감각의 대상을 골똘히 생각하면 집착이 생긴다. 감각에서 욕망이 일어나고 욕망은 불타 올라 맹렬한 정욕이 되고 정욕은 무분별을 낳는다. 그러면 기억이 온통 틀어져 고상한 목적이 사라지고 마음은 말라버려 목적과 마음과 사람이 모두 망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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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난 늘 히말라야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했다. 망망한 바다 위 무인도에서, 맹수처럼 포효하는 파도 속에서 우는 나를 향해 히말라야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다 엄마의 등에서 자궁 속 같은 깊은 잠에 들고픈 아가처럼 난 어머니 히말라야를 꿈꾸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임을 만나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쳐도 만날 수 없고, 낳을 수 없던 아픈 세월이 있다. 그러나 맨발이 화석이 될 만큼 오랜 순례 끝에 우리는 임도, 아름다움도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임을 우연히 깨닫는다. 그토록 오랜 순례 또한 어서 빨리 마쳐야 할 숙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까지도.
이 순례기는 아수라장 같은 인도의 대지가 내 가슴에 새겨준 일기장이다. 사진들은 내 조그만 카메라가 아수라의 눈물을 진주로 토해낸 것들이다. 인도가 아수라장이 아니라면 왜 피안을 그리며, 무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