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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Ⅰ. 들어가는 글/11 1. 클럽하우스의 매력 15 2. 말하다, 묻다, 답하다 18 3. 보육원 출신을 위한 자립 시스템 마련해야 20 4. 개혁을 가로막는 훈육적 처벌주의 22 5. 스포츠 폭력의 씨앗 24 6. 혁신 인공 지능과 일자리 27 7. 대사공학과 합성 생물학의 미래 29 8. 탄소급식과 생태적 회심 32 9. 윤석열 현상의 음영 35 10. 괴물은 밖에 있지 않다 37 11. 질투는 힘이 없다 39 12. 폭력을 폭로함은 정의로운 복수다 41 13. 종합부동산세와 광주 민주화운동 44 14. 선풍기를 켜놓고 잠들면 사망 낭설, 유사한 백신 맞고 사망 47 15. 브브걸의 역주행을 보며 52 16. 집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 55 17. 국가수사본부, 경찰의 역량을 증명하라 57 18. 정의롭고 평등한 전기 59 19.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선택 61 20. 새봄은 어떻게 오는가 63 21. 내 이름을 불러줘 65 22. 잃어버린 음악사를 찾아서 67 23. 여전히 주파수를 맞추다 69 24. 7년이 지났는데 바뀐 것 없는, 그 봄 71 25. 서로 다른 의료의 문법을 이해할 때 73 26. 최종단계를 왜 미리 걱정하나 75 27. 미국은 왜 백신 개발 빨랐을까 77 28. 4·27을 다시 생각한다 79 29. 노동의 가치 81 30. 한국의 툰베리가 보이지 않는 까닭 83 31. 21세기 부동산 봉건사회 85 32. 배후의 역사, 인간의 습성 87 33. 푸틴 정적 감싸는 바이든의 미국 속내는 89 34. 코로나 시대의 문법 94 35. 어디서 오는가 96 36. 부자건 빈자건 형벌의 고통은 같아야 98 37. 미래 꿈나무들에게 사회적 상속을! 100 38. 한·일, 현안 입장 확인, 3국 협력은 시동 102 39. 여정이는 복도 많지 104 40. 소비자주의 대 생태주의 107 41. 송영길의 벽, 송영길의 문 109 42.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뭣이 중한디 111 43. 탄소중립위? 기후시민의회! 114 44. 이재용 사연의 정치학 116 45. 이러시면 안 되죠 118 46. 인사청문회 탓하기 전에 120 47. 혁신학교 괴담을 떨쳐내려면 122 48. 꼬리잡기 125 49. 중국과 마연마 사이 한국의 가치 기준 127 50. 청년에 대한 미안함을 상품화 말라 129 51.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의 호기 131 52. 맘놓고 웃길 수 있는 세계, 피식 유니버스 133 53.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왜 공격받나 135 54. 1인 가구 문제는 비혼공동체의 문제 137 55. 선택의 기준 139 56. 아직은 바이든 대북정책을 환영할 때가 아니다 141 57. 두 사람의 죽음 143 58. 안전한 일터를 위해 145 59. 시민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일 147 60. 싱가포르·판문점 선언 계승한 한·미 정상, 북한 화답하길 149 61. 피스 액츄얼리 151 62. 정의로운 혁신의 시대 153 63. 나는 효행상이 불편하다 155 64. 백신 인센티브, 방역 해이로 이어지지 않게 보완책을 마련해야 157 65. 코로나 19 백신 인식조사에서 찾은 시사점 159 66. 보건소 간호직의 극단적 선택, 코로나 격무 해소해야 162 67. 이준석 돌풍은 민주당엔 죽비다 164 68. 가짜로 오염된 소셜미디어 166 69. 한 심리상담사로부터 온 편지 169 70. 민주주의의 어렵고 좁은 길 171 71. 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 174 72. 두 가지 집단면역 177 73. 크루엘라를 아시나요? 179 74. 떴다방 정치 182 75. 이준석과 더 지니어스, 공정한 경쟁이라는 허구의 세계 185 76. 평양 할머니와 창녀 페미니즘 189 77. 반동의 물결 앞에서 191 78. 긍정적 언어·연결의 언어가 필요하다 193 79. 알랑드 보통, 현대의 공식 종교는 행복 195 80. 최금희의 그림 읽기 199 81. 안보 제일주의에 길 잃은 이상주의 205 82. 포텔뉴스 정부정책, 시작부터 권위주의? 207 83. 총기 문제와 미국의 실패 209 84. 조선은 풍수 때문에 망했다 211 85. 나중에 정권에 이은 자가당착 정권 213 86. 교수 식당이 대학을 죽인다 216 87. 메타(Meta), 우리에게 필요한 가짜 218 88. 어린이여, 활동가가 되자 220 89. 형사미성년자 나이에 대한 현실적 제안 222 90. 복지를 읽기 어려운 사람들 224 91. 기업가 정신과 노예운동 226 92. 대통령 부인과 옷의 정치 228 93. 죽거나 말거나 231 94. 대중은 진보하는데 진보정당은 퇴보 233 95. 잘못을 알고도 고치는 않는 건 더 큰 잘못 235 96. 긍정보다 부정이 쉬운 이유 237 97. 사고와 판단의 유연성 240 Ⅳ. 나가는 글/242 참고문헌/246 주석/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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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쓰면서
우리는 요즘 먹고 마시는 것, 음식 문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 즉 하루 한 잔 꼴이다. 커피 전문점 매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espresso) 원두도 선택해서 즐기는 맞춤형 고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제 마실 만큼 마셨는지, 더 스페셜(special)한 커피를 찾고 있다. 한 압력으로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 신속하다’의 뜻이다.‘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현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존재하기 전인 1880년대에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뜻은, 고객의 주문에 맞추어(expressly) 추출한 신선한 커피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가루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9~11bar의 압력으로 뜨거운 물을 가하여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한 고농축 커피’를 의미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들이 음식 예찬과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로 바뀌고 있다. 방송 또한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명언처럼 굳어진‘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란 말도 음식의 쾌락에 기반해 나오지 않았는가. 이는 프랑스인들이 고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계통의 질환이 적고 건강하게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탐식은 더 이상 죄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탐식이 죄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미각적 쾌락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선(善)인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랑스인과 관련된 역설을 이르는 말. 본래는 문화적ㆍ사회적 차원에서 프랑스인의 비상식적인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1980년대 이후 프랑스인들이 동물성 지방을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 비하여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탐식과 미식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르망디즈(gourmandise)는 탐식, 미식, 식도락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한때 구르망디즈는 음식을 무조건 탐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고, 심지어 탐식은 간음을 낳는 죄로 여길 정도로 부도덕한 단어였다. 그러나 점차 이 단어는 맛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즐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구르망디즈에서 착안한 용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위(胃)를 의미하는 가스트로(gastro)와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미식가를 지칭한 가스트로노미는 잘 먹는 기술과 방법으로 도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하며 먹는다는 뜻이다. 음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 선악이 달라진다. 문제는 도를 벗어난 무절제와 과잉에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Rabelais, F.)의 대표작‘가르강튀아(Gargantua)’에 등장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과잉이었다. 그는 폭식, 폭음이라는 과잉이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중세 세계에 만연한 부조리임을 폭로했다. 『문학』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Rabelais, F.)가 지어 1534년에 간행된 풍자 소설. 전 5권으로 된, 프랑스 르네상스의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권으로, 체력과 식욕, 지식욕이 뛰어난 거인 가르강튀아가 중세 말기의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흥미진진하게 풍자ㆍ비판한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는 인간이 행하는 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잉이라고 했다. 과잉이 왜 악일까. 과잉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잉은 본질을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과잉은 좋은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쾌락으로 몰아넣는 거짓이자 악이라고 했다. 탐식을 인간의 내면적 삶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 수도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5-399)이다. 그는 인간을 내적으로 타락시키는 8가지 악덕을 열거하면서, 첫 번째 자리에 탐식을 놓았다. 그는 과잉이 낳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했다. 우리는 탐욕과 과잉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탐욕과 과잉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탐식과 과잉이 진실한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인간(人間)은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이다. 문화(文化)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이다. 이 책은 사람의 본성과 관계지어 사회 전체 구성원의 생활 양식과 행동 양식 및 그 기반이 되는 물질적, 정신적 소산과 관련이 있는 것을 누리는 인간 문화의 겉과 속을 들어야 보고자 한다. - 2025년 4월 海東 김용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