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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돌을 보내는 사람 단어 주머니가 있는 사람 품에 안는 사람 느리게 실패하는 사람 나만의 지도를 가진 사람 계절을 그리는 사람 ▶ 배추가 달큰해지는 계절의 책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떡볶이와 마주 앉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 자기에게 선물하는 사람 나를 아끼는 사람 유미라는 사람 ▶ 어른이 되고 싶은 계절의 책 호흡 맞추는 사람 꿈꾸게 하는 사람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 상처를 헤아리는 사람 이름 붙이는 사람 봄에는, 사람 ▶ 마음이 사뿐해지는 계절의 책 수아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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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채고 물어보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배승연 (청소년PD)
"그런 사람 우리 반에는 없죠?"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 그러나 틀림없이 어딘가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에세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부족했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저자는 교실에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쉽게 무시당하고 지워지는 경험을 했다. 외롭고 불안한 시기를 홀로 지나면서 내가 십 대일 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임을 느꼈고, 그 사실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분식집에서 “친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책가방을 들어 주는 사랑, 증명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랑, 극장에서 처음으로 손잡는 사랑”을 하던 성소수자 청소년은 “오늘의 성공이 없었기에 내일의 성공이 있다고 믿”으며 “나에 관해 말하고 쓰기를 계속”하는 성소수자 성인으로 자라났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발견한 한 사람의 여러 얼굴을 함께 살펴보며 청소년들도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OO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돌을 보내는 사람, 품에 안는 사람, 느리게 실패하는 사람,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이름 붙이는 사람….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자신을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구체적인 개인으로 정의하려는 시도에는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려 깊은 시선이 스며들어 있다.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알아채고, 서로에 관해 묻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이어지고자 하는 마음은 흔들리며 피어나고 있는 모든 청소년에게 단단하게 자라날 힘을 보태줄 것이다. '현재의 나'를 만든 강렬한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며 청소년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에세이를 읽는 기쁨을 한껏 누리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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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편지들은 오래전 어느 밤에 재가 됐다.
학창 시절에 쓴 일기와 건네받은 편지들을 한꺼번에 불태우면서 한 시절의 나는 꽤 비장했다. ‘내가 죽은 뒤에 누구도 내 삶을 재구성하여 해석하지 않기를…….’ 뭐 이딴 식으로. 그 마음 한쪽엔 성소수자로서의 불안이 얼마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조금 후회하고 있다. 그때의 나와 달리 이제 나는 내 감정을, 내 사랑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불태우고 싶지 않다. --- 「돌을 보내는 사람」 중에서 머릿속으로 품에 안을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짜 보았다. 언젠가 품에 안았던 것들부터 생각났다. 유년 시절 즐겨 입던 손뜨개 스웨터와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강아지, 용돈을 아껴 샀던 잡지와 영화 브로마이드, 선물 받은 코팅된 네잎클로버, 아무도 없는 교실 책상 서랍에 몰래 넣어 두던 이름 없는 편지들. 아! 토요일 오후, 도서관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던 빛. 품에 안았던 걸 떠올리는 일은 따사롭기 그지없고. (…) 품에 안으면 무엇이든 소중해진다. --- 「품에 안는 사람」 중에서 우리(성소수자들)도 사랑한다. 어떤 사랑이냐면 편지를 주고받는 사랑,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 강가로 놀러 가는 사랑, 복도에서 마주치면 남몰래 한쪽 눈을 찡긋, 하는 사랑, 책가방을 들어 주는 사랑, 증명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랑, 극장에서 처음으로 손잡는 사랑, 눈 내리는 날 가로등 아래에서 입 맞추는 사랑……. ---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중에서 내가 친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도 그 분식집이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이 굴었고 우리는 달걀노른자까지 으깨 먹으며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이후로도 우리는 ‘둘리분식’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친구와 먹는 떡볶이가 변함없이 맛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친구는 그때의 우리를, (아마도) 자기 생의 첫 게이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 「떡볶이와 마주 앉는 사람」 중에서 그간 한번도 그래 본 적 없으나 유미에게 물어보고 싶다. 열일곱. ‘구루뽕’으로 앞머리를 하늘 끝까지 세우고 스프레이를 뿌려 대던 그때의 유미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느냐고. 학창 시절에, 안 보이는 곳에서도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냐고. 어떻게 살고 싶었냐고. 그때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아니 누구랑도 말 안 한 이유가 있느냐고. --- 「유미라는 사람」 중에서 살아갈수록 따끔한 일도, 뜨끔하는 일도 많아진다. 어느 땐 따끔한 일에도 뜨끔하고, 뜨끔해야 할 일임에도 짐짓 따끔하고 만다. 그런 게 상처를 더 곪게 만드는 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다. 상처의 규모를 잘 살펴 헤아리는 일, 작은 상처를 크게 만들지 않고, 큰 상처를 작게 만들지 않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의 지혜 중 하나는 아닐까? --- 「상처를 헤아리는 사람」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잊은 사람, 가슴 아픈 사람, 가슴이 철렁하는 사람, 가슴속에 고이 묻어 둔 사람, 걸어가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 한참을 멈춰 선 사람, 먹는 사람, 먹지 못하는 사람, 도전하는 사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 열두 살인 사람, 스물두 살인 사람, 서른둘, 마흔둘, 쉰둘, 예순둘인 사람…… 사람을 생각하는 일은 참 끝없다, 그렇지 수아야? --- 「수아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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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우리 반에는 없죠?”
아니! 그런 사람은 우리 반에도 있다 학교는 규율로 통제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장소이다. 다양성을 가르치면서 다양성이 존중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성소수자 같은 ‘다른’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지닌 청소년이 학교에 있으리라고 우리는 쉬이 떠올리지 못한다. 상상되지 않는 존재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남중, 남고를 다니는 6년 동안 “미스 김”으로 불렸던 김현 작가는 자신을 “소수자로 정체화하는 데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 우리 반에는 없죠?”라는, 질문이라기보다 ‘없어야 마땅하다’는 당위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운 선생님의 공공연한 말은 그를 일찌감치 “있으나 없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여기 있으나 여기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늘 나를 따라다녔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영향으로 나는 수면제를 모았고, 목을 매어 보기도 했다. 그 모든 일이 미수에 그치는 동안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 8쪽 아무 일도 없다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말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그런 사람’들은 긴 시간에 걸쳐 “생존자로 거듭”난다. 작가는 자신 같은 소수자는 물론 교실에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하지만 틀림없이 우리 반에도 있었던, 지금도 있을 청소년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썼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스스로) 알아채고 물어보고 이어지길” 바라면서.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역시 알아차려 주고, 물어봐 주고, 손 내밀어 주기를 바라면서. “태어나서 게이 시인 처음 봐요.” 10대 시절 나와 같은 사람이 실재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분식집에서 “친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책가방을 들어 주는 사랑, 증명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랑, 극장에서 처음으로 손잡는 사랑”을 하던 성소수자 청소년은 “오늘의 성공이 없었기에 내일의 성공이 있다고 믿”으며 “나에 관해 말하고 쓰기를 계속”하는 성소수자 성인이 되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던 시절의 소용돌이에서 몇 발짝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그 시절은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그때 그 상태로 멈춰 있다”. “태어나서 게이 시인 처음 봐요”라고 놀라는 청소년을 마주하며 작가는 ‘10대 시절 나와 같은 사람이 실재한다는 것을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2년 넘게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얼굴, 몸짓, 목소리에 나를 포개면서, 그들 또한 내 얼굴, 몸짓, 목소리에 그들을 포개어 보기를 바랐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 눈앞에 한 명의 성소수자로, 아주 구체적인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내 앞에 그렇게 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 98쪽 어쩌면 《우리 반에도 있다》는 어느 청소년에게 처음 만나는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실재하는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소수자 선배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작가는 글자 위에 목소리를 실어 주문한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데만 너무 기운 쓰지 말고 “존나 이기적이고 나쁜 사랑”도 하고 “바닥도 쳐 보라”고. 그 주문은 그때의 작가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에게 선물하는 사람, 느리게 실패하는 사람, 이름 붙이는 사람… 봄에는, 봄이니까, 몰랐던 사람을 생각하자 이 책의 목차는 ‘OO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돌을 보내는 사람, 품에 안는 사람, 느리게 실패하는 사람,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이름 붙이는 사람…. 이 산뜻한 ‘사람 열전’엔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탁월한 에세이스트 김현 특유의 사려 깊은 시선이 빼곡하다. 품에 안아 소중해진 것들의 목록을 나열해 보는 마음과 성공하는 이야기보다 포기하는 이야기에 기우는 편향과 “살아 돌아올 리 없는 사람들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다짐에 덩달아 따뜻하고 뭉클해진다. 다정한 마음으로 우리가 몰랐던 사람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게 된다. 봄에는, 봄이니까, 이 책과 함께 몰랐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사람’ 사이사이 소개하는 ‘계절의 책’들은 또 다른 사람과 책을 만나는 즐거운 사교의 장이 되어 줄 것이다. 해마 시리즈 소개 청소년에게도 에세이 읽는 기쁨을! 온갖 사연과 인생을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에세이 범람 시대다. 하지만 청소년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일까. 에세이는 주로 성인 독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이건 딱 내 얘기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를 청소년 독자에게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 에세이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울고 웃고 만나고 헤어지고 몰두하고 외면하고 좋아하고 싫어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의 총합이기도 하다. 기억은 우리 각각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장치이자,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머릿속 ‘해마’라는 장소이다. 기억이 입고되고 저장되고 재생되는 곳. 여기에서 청소년에세이 ‘해마’ 시리즈가 탄생했다. 작가 저마다의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뒤엉키고 화해하고 포개지면서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지닌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현재의 나를 만든 강렬한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며 청소년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에세이 읽는 기쁨을 한껏 누리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과 접속하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