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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I II III IV V 알베르 카뮈 연보 |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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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날인 4월 18일 아침, 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던 의사는 더욱 핼쑥해진 미셸 씨를 발견했다. 지하실에서 다락방까지, 열댓 마리의 쥐들이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웃집들의 쓰레기통은 그것으로 가득 찼다. 의사의 어머니는 놀라지 않고 그 뉴스를 받아들였다.
“이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다.” 그녀는 검고 부드러운 눈에, 은발의 작은 여인이었다. “너를 다시 만나니 행복하구나, 베르나르, 쥐들 따위가 이걸 방해할 수야 없지.” 그는 동의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모든 게 쉽게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 p.28 《서른다섯 살쯤으로 보인다. 평균 키. 벌어진 어깨. 거의 사각형의 얼굴. 짙고, 곧은 눈이지만 턱이 돌출되어 나왔다. 견고한 코는 균형이 잡혔다. 검은 머리칼은 아주 짧게 잘렸다. 입은 거의 언제나 다물어져 있는 두툼한 입술과 함께 아치를 이룬다. 그을린 피부, 검은 머리칼과 항상 어두운 색이지만 잘 어울리는 양복이 얼마간 시칠리아 농부를 연상시킨다. 그는 빠르게 걷는다. 보폭을 바꾸지 않고 보도로 내려서지만, 세 번에 두 번꼴로 가볍게 뛰어올라 반대편 보도에 오른다. 그는 운전하는 동안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코너를 돈 후에도 종종 방향등을 그대로 남겨둔 채 달리곤 한다. 언제나 맨머리다. 견문이 넓어 보인다.》 --- p.49 “나는 알죠. 그리고 분석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소. 나는 의료 경력의 한동안을 중국에서 보냈고, 20여 년 전 파리에 있을 때, 몇 가지 사례를 보았소. 하지만 그때는 감히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소. 여론, 그건 신성한 거요. 공황 상태가 되면 안 되죠. 무엇보다 공황 상태가 되면 안 되오. 어떤 동료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건 불가능하다, 이게 서양에서 사라졌다는 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요, 그건 누구라도 알고 있소. 죽은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오. 자, 리외, 당신 또한 내가 아는 것처럼, 잘 알고 있지 않나요?” --- p.56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생활은 모범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우리 도시 어디에서도 흔치 않은, 바른 의식의 용기를 가진 이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털어놓았던 작은 진술들은 사실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은 선함과 애정이었다. 그가 자신이 돌봤던 유일한 일가친척인 그의 여동생과 조카들을 사랑하고, 2년에 한번씩 프랑스를 방문하기 위해 떠나는 것을 밝히는 일도 낯을 붉힐 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회상하면, 그가 아직 젊었을 때 돌아가신, 슬픔이 찾아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동네에서 오후 5시면 부드럽게 울리는 동일한 종소리를 좋아한다고 밝히길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감정을 떠올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소한 말은 그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결국, 이러한 어려움이 그의 큰 걱정을 더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선생님, 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는 만날 때마다 매번 말했었다. --- p.70 늙은 천식환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숨을 좀 더 편히 쉬는 듯했고, 병아리콩을 하나씩 세며 한 냄비에서 다른 냄비로 옮기고 있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의사를 반겼다. “그래서, 선생님, 이거 콜레라인가요?” “그 말을 어디서 들으셨어요?” “신문에서요, 라디오에서도 그러던데요.” “아닙니다, 콜레라는 아니에요.” “아무튼,” 노인은 매우 흥분해서 말했다. “열심히는 하네요, 흥, 관리놈들!” “그 말은 믿지 마세요.” 의사가 말했다. --- p.89 그사이, 모든 교외 지역으로부터 봄이 시장으로 오고 있었다. 수천 송이 장미들이 시장의 바구니 속에서 시들었고, 노변을 따라, 잘 가꾸어진 향기는 도시 전체에 퍼져 떠다녔다. 외관상으로는, 변한 게 없었다. 전차는 출퇴근 시간이면 항상 가득 찼고, 낮 동안은 비어서 더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타루는 그 작은 노인을 지켜보는 중이었고, 노인은 고양이들에게 침을 뱉고 있었다. 그랑은 그의 비밀스러운 작업을 위해 매일 밤 집으로 갔다. 코타르는 쳇바퀴 돌듯 맴돌고 있었고 예심판사 오통 씨는 여전히 그의 동물 가족들을 이끌고 다녔다. 늙은 천식환자는 콩을 옮겨 담고 있었고 때때로 침착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신문기자 랑베르를 볼 수도 있었다. 저녁이면, 똑같은 군중들이 거리를 메웠고 영화관 앞은 줄이 늘어졌다. 한편으로는, 전염병이 줄어드는 듯 보였고, 며칠 동안, 사망자는 약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고 나서, 갑작스레 급격하게 증가했다. 다시 사망자 수가 30명에 다다른 날, 베르나르 리외는 지사가 “저들이 두려워하고 있소”라며 그의 손에 넘겨준 전보 공문을 보았다. 급보는 전하고 있었다. “점염병 상황을 선포하라. 도시를 폐쇄하라.” ---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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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서 시작된 번역가의 항해, 이제 『페스트』에서 별빛처럼 다시 빛난다
『페스트』는 1947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이후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소설이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 소설이 현실의 레지스탕스와는 상징적 거리감을 지닌다고 비판했으며, 이에 대해 카뮈는 “『페스트』는 단지 1940~45년에 국한된 알레고리가 아니다”라고 직접 반박한 바 있다. 새움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이번 『페스트』는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번역의 윤리를 실천한 한 번역가의 문학적 여정이자, 번역을 통한 철학적 독해의 모범 사례로서 독자들에게 다시금 읽히기를 기대한다. 역자의 말 10년 전까지만 해도 ‘카뮈’는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겐 빛나는 별이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난해하고 어둡기만 한 별이었다. 특히 『이방인』을 두고 누구도 재미있다, 잘 읽힌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철학서를 읽듯 한 줄 한 줄을 밑줄 그으며 읽는다고 자랑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누구도 『이방인』을 두고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독자들의 이해력이 높아져서라고 믿겠지만, 사실은 그때의 책이 쇄를 거듭하면서 문장 문장이 바로잡혀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나 역시 여러 번 재번역을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작품의 짧은 양과 단순한 문장 덕분이었다. 그리고 9년, 카뮈는 내 인생행로의 북극성이 되었고, 지도가 되어 나를 지금의 길로 인도했다. 『이방인』이 워낙 논란이 되었던 책이기에 누군가는 내 다음 번역 작품은 당연히 이 책 『페스트』가 될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이후 프랑스어 작품 『어린왕자』를 번역하고 나서는 오히려 『1984』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등의 영어소설을 번역했던 것이다. 매 권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모두가 결국 ‘이방인’이라는 별이 밝혀준 이 책으로의 노정은 아니었을까. 서로 다른 언어들끼리의 변환으로서의 번역이라는 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준비과정으로서의. 그만큼 이 책은 어렵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어렵다는 것이다. 양도 그러하거니와 작품 속 문장들이 『이방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문이 많거니와 수려하면서도 깊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방인』이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포용하고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황’으로 보여주는 측면이 강했다면, 『페스트』에서는 의사 리외를 통해 인간의 연대와 행동, 헌신, 실존적 윤리를 ‘문장’을 통해 보여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그에게 대중적 열광 외에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기기도 하는데, 그는 수락 연설에서 보편성을 강조한다. “예술은 제게 고독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통의 기쁨과 고통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도록 의무지웁니다. 그것은 예술가를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진실에 복종시킵니다. 그리고 종종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느껴서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선택한 사람은, 곧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만 자신의 예술과 그 다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가는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없어서는 안 되는 아름다움과 자신을 떼어낼 수 없는 공동체 사이의 중간에서 자신을 제련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가 어떤 것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심판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바로 그랬다. 그의 말마따나 이 책 『페스트』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페스트』 역시 초기의 이방인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잘 읽히지 않는 책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양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역시 번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앞서 낸 같은 책 『역병』 역시 다시 보니 번역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당연히 잘 읽히지 않았다. 의욕만 앞서 서두른 결과일 테다. 그런데 이런 말이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반발을 살 거라는 것도 나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10년이 지나 다시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래도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가야만 하고, 갈 수 있는 길의 지도가 되고, 어두운 밤길의 작은 별 하나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쁠 일은 없을 것이다. 편집자의 말 _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한다” 지금까지는 카뮈의 책을 읽으려면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읽어봐야지, 도전해 봐야지” 하는 결심 같은 것이 전제되었다. 어렵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서 번역가의 『이방인』이나 『페스트』는 그런 결심이 전혀 필요 없다. 몰입할 시간과 공간만 있으면 된다. 다만 조금 진지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전염병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전염병은 단지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카뮈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이다. 페스트(역병)가 창궐하는 도시에 갇힌 인간들의 다양한 면면, 인류애, 인간 위에 군림하는 법과 제도, 온갖 모순(카뮈는 이를 ‘페스트’라고 본다)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의 고통 등을 다루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이정서 번역가는 원작의 문장 구조 그대로, 쉼표 마침표까지 살려내는 것을 중시한다. 왜 그럴까. 읽다 보면 안다. 작가와 함께 걷고, 쉬고, 멈추고, 한탄하다 보면, 작가의 숨결과 깊은 속내가 우리에게 더욱 육박해 온다. 또한 직역은 딱딱하고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시라. 분명히 “이런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게 번역해낼 수 있을까” 밑줄 긋고 싶어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