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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망상
권혜영
북다 20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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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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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애정망상
작업 일기 : 지금은 없는 달달함을 위하여

저자 소개1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 데뷔작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가 선정된 바 있으며, 소설집 『사랑 파먹기』, 단편소설 『애정망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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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2g | 110*172*10mm
ISBN13
9791170612575

책 속으로

“이것은 귀지입니다.”
귀지를 제거하지 않고 살면 피지 분비물과 때가 거대하게 뭉쳐 시커메질 수도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더러운 인간아, 귀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의사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수치심에 젖어 눈길을 피했지만……. 의사는 모를 것이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매일 귀 청소 봉사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 p.10

나의 고막 남차진구 이름은 세진이다. 세진은 활동명일 것이다. 세진의 실제 이름을 나는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인스타 계정도 모른다. 댓글란을 훑다 보면 어떤 팬들은 세진의 이런저런 개인적인 정보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몰라도 상관없었다. 앞으로도 알아볼 생각은 없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었다.
--- pp.21-22

내가 귓속에 이어폰을 꽂아야만 의미 있는 존재로 형상화됐던 그였는데. 이제는 내 집 안 곳곳에서 멋대로 나타났다가 허락 없이 사라졌다.
즉, 내가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목소리가 들리게 됐다는 뜻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일이 성가시게 됐다.
--- p.24

왕자의 제1목표, 애시를 찾는다. 제2목표, 애시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실론으로 돌아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임의의 몸이 필요하다. 그러니 몸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 갖추어지도록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긴 시간 동안 왕자가 내게 풀었던 이야기의 요지였다.
하지만 남자의 신체 일부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까. 내 입장에선 어지간히 곤란한 임무였다.
--- p.34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같은 톤의 어둠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가람은 어둠의 농도를 짙게 만든 반면, 나는 어둠을 외면했다. 두꺼운 모포를 만들어서 외부 세계로 어둠이 노출되지 않도록 꽁꽁 싸맸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갈래의 마이너스형 어른으로 자랐다. 특히 ‘남자’ 또는 ‘사랑’이라는 함숫값이 적용됐을 때, 우리가 발산하는 어둠은 색채와 질감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 pp.60-61

가람은 우후죽순 나동그라진 신체 조각들을 소중히 주워 와서 사람의 형체대로 맞춰 나갔다. 마치 전 연인들과 재회의 시간을 가지기라도 하는 듯했다. 손을 어루만지며 오랜만이야, 하고 인사했다. 귓불을 더듬더니, 곧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 속삭였다. 정말 보고 싶었어. 배를 보고는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운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네, 말하며 회한에 젖었다. 마침내 하나의 완전한 신체의 형태처럼 퍼즐이 맞춰졌을 때 나는 가람이 그것을 향해 하는 말을 들었다.
“다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까 정말 좋다.”

--- p.78

출판사 리뷰

《사랑 파먹기》 권혜영 작가
신작 로맨스 단편소설과 작업 일기

‘달달북다’의 열한 번째 작품은 권혜영의 『애정망상』이다. 2020년 『실천문학』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작가는 ‘이 계절의 소설’(문학과지성사)에 선정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작 『사랑 파먹기』(민음사, 2023)를 통해 “환상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가 환상을 위해 복무할 때”(이희주 추천사)를 효과적으로 보여준 권혜영은 인물들을 기묘한 자리에 세워두고 일상과 비일상을 짜릿하게 교차시키며 인물들이 슬픔 너머의 현실을 비로소 마주 볼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권혜영은 이번 소설 『애정망상』에서는 ‘고막 남자친구’와 가상의 연애를 즐기는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일방적인 사랑으로 점철된 애정, 망상과 함께 실체도 상처도 없는 새로운 연애의 영역을 선보인다.

실체도 상처도 없는 새로운 연애의 영역
귓속에 존재하는 나의 고막 남자친구

“현실 남자에게는 이제 아무 감정 없음. 사랑 없음.
이해 없음. 의미 없음.”

『애정망상』에서는 ‘일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사건, 사랑’, 로맨스×비일상을 키워드로 하여 ‘현실 남자 울렁증’을 가진 주인공 ‘지나’의 ASMR 콘텐츠 고막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그린다. 고막 남자친구와의 평화로운 연애를 즐기던 어느 날, 지나가 이어폰을 귀에 꽂아야만 재생되던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전자레인지에서, 베개에서, 집 안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지나는 어플에 오류가 생겼거나 자신의 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지구로 떠난 사랑하는 여자친구 ‘애시’를 찾으러 온 다즐링 행성의 왕자였다.

다른 이의 목소리가 나의 신체 기관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건 처음이었다. 무서운데 희한하고, 이상한데 자극적이었다. 사고는 정지되었는데 마치 뇌세포에 경련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혀가 엉켜 들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키스를 나누는 듯했다. 왕자도 나와 같은 느낌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건 내가 신체가 있어서 느끼는 감각일 테니까. (52쪽)

왕자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제1목표, 지구에 온 애시를 찾는다. 제2목표, 애시와 함께 행성으로 돌아간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왕자는 지나에게 부탁한다. “남자 염색체를 가진 신체의 일부를 구해”(27쪽) 오라고. “손톱, 타액, 터럭”(28쪽) 같은 미미한 것이면 된다고 하지만, 남자 울렁증을 가진 지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온전히 갖기 위해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지나는 남자친구 문제를 겪고 있는 오랜 친구 ‘가람’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설상가상 가람이 가지고 있는 충격적인 전남친 컬렉션을 보게 된다. 과연 지나는 도둑맞은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되찾고 평화롭던 가상 연애를 만끽할 수 있을까?

일방적 사랑으로 점철된 애정과 망상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분투

이게 다 비정상적으로 분비된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왕자는 알까. (33쪽)

『애정망상』은 두 여자, 지나와 가람의 각기 다른 애정과 망상을 여실히 담고 있다. 지나가 현실의 남자에게서 벗어나 고막 남자친구와의 일방적 사랑으로 넘어간 데 비해 가람은 여전히 쌍방의 연애, 쌍방의 고통에 묶여 있다. 두 여자가 펼치는 애정과 망상을 살펴보고 있자면, 애정이란 얼마나 다종다양하고 다채로우며 각기 다른 망상의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권혜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애정이라는 이름의 망상과 망상이라는 이름의 애정을 담아냈다. 작가가 사랑의 ‘달달함’에 대해 진솔하게 고민한 이야기는 「작업 일기 : 지금은 없는 달달함을 위하여」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달달북다’는 12명의 젊은 작가가 로맨스×칙릿(김화진, 장진영, 한정현), 로맨스×퀴어(이희주, 이선진, 김지연), 로맨스×하이틴(예소연, 백온유, 함윤이), 로맨스×비일상(이유리, 권혜영, 이미상)의 테마를 경유해 각별한 로맨스 서사를 선사한다. 독자들은 오늘날 각기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작가의 말


말하자면 나는 실제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사랑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을 뿐……. 종이 속에 갇혀 있는 인간들의 사랑 이야기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는 셈이다. 내 머릿속에서만 구현 가능한 ‘로맨스’에는 심장이 반응했다.

이 완벽한 무정형의 상태. 심리적으로 동떨어진 거리감. 앞서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한 이야기의 형태로 즐길 수 있었다. 로맨스라는 비일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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