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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졌다
김효선
사유악부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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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악부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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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이미 놓쳐버린 사람이 다시 온 것처럼

물론?,_
모두가 옳고 아무도 옳지 않다
불_
지옥의 두 얼굴
흙 _
내가 빚는 내 얼굴로 사라지기
태양 _
다가옴과 밀쳐냄
돌 _
허공에 공허를 뿌리는 이방인이 되어
바람 _
춤추는 혼돈의 별
비 _
의 안쪽
눈, _
이라는 경전

2부 어느 한 귀퉁이가 쓸쓸하고 아름다운 이름

뱀 _
단호한 세계와 여자의 바깥
나비 _
무거운 주머니는 날아오를 수 없다
사과 _
의 부족들과 우리가 선택한 오해
장미 _
울타리의 체제 혹은 체계
음악 _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꿈 _
불안과 동거

3부 아무도 오지 않아서 아무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유리 _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전화 _
너무 시끄러운 고독*
운동장 _
기억보존질량법칙의 순간
복도 _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집 _
멀리서 나를 부르는 빛
길 _
침묵으로 말하는 사람

4부 하나의 주머니에 두 손이 포개어질 때

손 _
아직 다 하지 못한 말
얼굴 _
오늘 나는 누구의 얼굴로 살고 있나
고수 _
작고 아름다운 점
커피 _
꿈을 부르는 열매
칼국수 _
거룩한 한 끼

저자 소개 1

2004년《리토피아》등단, 시집『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선정),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서귀포칠십리문학상> 등 수상. 현재 제주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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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53*202*20mm
ISBN13
9791198961754

책 속으로

제주에는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곶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과 나무숲을 이르는 ‘곶’이 합쳐진 말이다. 이곳에는 주로 용암류로 뒤덮여 있으며 그 틈에서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룬 형태다. 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그 아래 물길이 흐르고 있다는 말이다. 뿌리가 한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시간이 필수다. 이동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여기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다. 우리도 그렇게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겠지. 뿌리는 자신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모른 채 살아간다.
--- p.15 「모두가 옳고 아무도 옳지 않다」 중에서

신화로 만들어진 시공간을 섬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제주에는 신이 많다. 특히 제주를 창조했다는 설문대할망은 그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영향력이 세다. 섬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의 기운을 담고 있는 듯 신령스럽다. 자신만의 이상향을 건설하고 싶었던 여신. 섬에 있는 지명에는 하나같이 설문대할망의 숨결이 흐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초월적인 삶의 자세를 잉태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피와 살이 누군가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사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순간 내 피와 살에 섞여 흐르는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존재를 바라보다 결국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눈을 감는다.
--- p.30 「내가 빚는 내 얼굴로 사라지기」 중에서

영등할망은 해산물의 풍요를 가져오는 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 한림읍 귀덕리로 입도해 보름날인 2월 15일에 우도를 통해 제주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제주 어부의 배가 폭풍우로 인해 외눈박이 거인의 섬으로 가는 것을 영등할망이 구해 주었다. 이 일로 영등할망은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죽는다. 그때 머리는 소섬(우도)에, 사지는 한림읍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까지 밀려오게 되었다. 그 죽음을 기리기 위해 영등할망을 신으로 모시고 굿을 해주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영등할망은 영등굿 기간에 제주 바다를 돌아다니며 해산물의 씨를 뿌려주고, 어부나 해녀들이 비는 소원을 들어주고 간다고 전해진다. 영등굿은 영등할망이 머무는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치른다. 이때는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고기를 잡지 않는다
--- p.47 「바람」 중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하루 평균 20km를 걸으며 800km를 가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고행을 선택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바닥의 물집과 육체의 고통을 견디며 묵묵히 걷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과 수고로움을 무릅쓰며 걷는 걸까. 가끔 시간 날 때마다 절물 안에 있는 ‘장생의 숲길’을 걷는다. 산티아고 길에 비하면 턱도 없지만 11km가 조금 넘는 코스다. 다른 숲길에 비해 인위적으로 산책로를 조성하지 않아서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질퍽하면 질퍽한 대로 조금만 방심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움푹 파인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하는 건 다반사고 갈기갈기 찢겨 죽은 까마귀를 발견하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래도 동행인이 있어 안심이 된다. 혼자였다면 감히 걸어갈 엄두를 못 냈을지 모른다. 사람이 발길이 많지 않아 조금은 음산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어릴 때 그토록 숲길을 두려워했음에도 지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길을 찾는다.
--- p.147 「침묵으로 말하는 사람」 중에서

그녀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익숙하다는 듯 식당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면서 커피를 들고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그러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거의 울음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니? 방에서 안 나오면’. 그러더니 또 애타게 ‘하느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여자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어쩌다 혼자라는 중얼거림에 갇히게 된 걸까. 범상치 않은 중얼거림과 흐느낌과 호통이 뒤섞인 그녀의 일4부 하나의 주머니에 두 손이 포개어질 때181상. 벗어날 수 없는 생각과 언어들. 그녀에게 바깥은 없었다.

--- p.181 「칼국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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