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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람과 사람
두 세계의 탄생 왜 태어났니 도미에의 그림자 아술의 경우 케빈의 경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부모님, 당신을 고발합니다 2부 동물과 사람 달리기의 시간 노찬성과 에반 ‘비명(悲鳴)’을 찾아서 슬픈 불고기 언더 더 스킨 미술관 옆 동물원 3부 사물과 사람 할머니 방 다락방과 편지 마당 말하는 사물들 나를 닮은 사물들 어머니의 단화 그 고장의 이름 4부 예술과 사람, 혹은 사랑 글렌 굴드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생명 예찬과 인간성 상실 저녁 여덟 시의 정전 당신을 맡고 싶다 돌봄 스위스행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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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한 개체를 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일이면서 가장 특별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일이다. 생명(삶)을 출산하는 건 동시에 죽음도 출산하는 것이니까. 한 개체가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개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슬픔, 고통, 좌절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자녀는 부모에게 물을 수 있다. 왜 나를 낳았는지. 하지만 그 전에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물을 수 있다. 왜 아이를 낳으려는지. 나 아닌, 나와 다른, 내가 될 수 없는 존재를 왜 태어나게 하려는지.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맞이할 기쁨과 행복, 고통과 슬픔을, 삶과 죽음을 왜 세상에 내어놓으려는지. --- pp.26-27 반려동물을 맞이한다는 건, 늙음과 죽음과 슬픔이 적힌 편지를 미리 받아 드는 일과 같다. 그 편지의 첫 문단엔 기쁨과 즐거움, 사랑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겠지만 결국 마지막 문단엔 죽음과 슬픔의 말이 쓰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존재는 세상에 남겨진 자에게 슬픔을 남긴다.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미안함도 남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세상을 떠난 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책임을 다하며 그가 만족할 만큼 잘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남겨진 자는 세상을 떠난 자에게 언제나 미안하다. 그리고 언제나 후회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주어진 ‘책임’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겨우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충분히 슬퍼하고 용서를 구할 준비가 되었을까. 혹은 그것이 준비가 가능한 것이기나 할까. 아직 잘 모르겠다. --- pp.89-90 왜 어떤 동물은 전 지구적 관심과 연민을 받고 왜 어떤 동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음식이 될까. 왜 어떤 죽음은 슬픔이 되고 왜 어떤 죽음은 쾌락이 되는 걸까. 단지 그것이 야생 동물과 가축이라는 차이 때문일까. 같은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의 원본인 귀여운 동물들과 장엄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축은 오직 고기로 대상화되어 있을 뿐 어떤 사랑도 연민도 받지 못한다. 정말 서글픈 일은 그들이 단지 죽어서 누군가의 음식이 된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더 큰 슬픔은 그들이 누군가의 음식이 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진다는 데 있다. 그들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맛 좋은 고기가 되기 위해, (이제는 더 이상 필수 영양소의 섭취가 아닌) 누군가의 감각적 쾌락을 위해 태어나고 사육된다는 데 가장 깊은 슬픔이 있다. 기쁨과 슬픔을, 행복과 불행을,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공감하고 소통할 줄 아는 존재가 토막 난 살덩이가 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로 태어나고 사육되고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이 실은 가장 큰 비극과 슬픔이다. --- pp.106-107 내가 삶을 마감하면, 내가 가르친 수많은 시처럼 누군가 내 삶에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주제문’을 적어 줄까. 만약 묘비명이 있다면 주제문 비슷한 걸 써 놓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묘비명은커녕 기일에 대해 생각할 후손이 없는 내게 ‘주제문’이 있을 리 없다. ‘생명 예찬’이나 ‘인간성 상실’ 같은 주제 의식을 게으르게 정의하기보다 시와 소설의 세계에 내 몸을 맡기고 온전히 감각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문학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면, 내 삶이라는 작품 역시 특별한 의미나 주제가 없어도 소박하게 완결될 것이다. --- p.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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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반려동물, 육식 등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을
하지 않은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동안 우리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무엇인가를 ‘사고’ ‘먹고’ ‘가고’ ‘보고’ ‘하게’ 하는 일에 열중하고 몰두하게 한다. 하지만 점차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와 팬데믹 이후, 우리에게 다른 시선과 세계관이 요구되고 있다. 바로 사지 않고, 먹지 않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고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일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세상과 지구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인 경우가 많다. 결국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무엇인가를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는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적이고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비출산, 비건, 동물과 육식, 반려문화, 사물, 예술 등을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과 포스트 휴머니즘의 철학적 배경으로 이야기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출산과 비출산의 문제를, 2부에서는 비거니즘과 동물을 다룬다. 3부에서는 사물과 공간을 통해 포스트 휴머니즘의 문제를 다루며, 4부에서는 모든 문제의식을 종합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의 특징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다루고는 있으나, 통계와 자료에 기반한 정보성, 혹은 사회학적 스타일의 글로 적힌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글은 아는 것에만 그칠 뿐, 그 문제를 감각하고 제대로 느끼지는 못한다. 이 책은 소설처럼 사건과 감정, 그리고 표현에 집중한다. 저자는 명시적인 주장과 설득이 아닌, 내밀하고 사적인 경험과 감각과 감정을 통해 독자와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고자 한다. 편리와 편의가 극대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에 무엇인가를 먹거나 사거나 보거나 하는 일은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하다는 듯 출산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고, 육식을 하고, 물건을 산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하지 않은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저자는 “깊은 변화는 그 멈춤, 중단, 혹은 하지 않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도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한 발짝씩 ‘하지 않는/하지 않은/하지 않을’ 세계에 동참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