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크레마클럽 EPUB
eBook 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 EPUB
가격
15,400
13,860 15,400 쿠폰혜택가
YES포인트?
77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카드뉴스7
카드뉴스8

상세 이미지

소개

목차

장미 La Rose
백합 Lys
치자나무의 독백 Monologue du gardenia
난초 Orchidee
등나무의 행실 Moeurs de la Glycine
튤립 Tulipe
‘파우스트’ 『Faust』
악취 Fetidite
금잔화 Souci
라케와 포토스 Le Lackee et le Pothos
은방울꽃 Muguet
붉은 동백 Camelia rouge
온실 재배 히아신스 Jacinthe cultivee
아네모네 Anemone
자투리 Broutilles
관리실 입방아 속 아도니드 L’Adonide chez la concierge
자네트 Jeannettes
약초 Medicinales
쇠발 아룸 L’Arum pied-de-veau
양귀비 Pavot
헬레보어 Ellebore

작품 해설_일흔다섯 청춘이 선사하는 꽃다발
그림 해설_라울 뒤피의 정원에서 피어난 콜레트의 문장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연보

저자 소개 4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Sidonie-Gabrielle Colette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콜레트는 일곱 살에 발자크를 비롯해 코르네이유 등 프랑스의 고전을 탐독한다. 전직 군인이자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부모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히 집 안뜰의 정원에서 관찰 기술을 터득한다. 부르고뉴의 숲과 정원, 그 향수는 평생 콜레트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남편 윌리(Willy)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그리고 출판 업자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파리의 문학계와 음악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부르고뉴의 거친 악센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젊은 아내의 글쓰기 능력에 놀란 Willy는 그녀를 쉐도우 대필작가로 이용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당시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클로딘의 단발머리가 도처에서 튀어나와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1906년 자신의 글에 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 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후 콜레트는 뮤직홀에서 당대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가 된다. 그녀의 의상, 그리고 동료 여배우와의 키스 등으로 쇼는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06년 윌리와 헤어진 후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바로 출간을 앞둔 「les vrilles de la vigne 포도덩굴손」이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정원과 숲의 기억, 그리고 당시의 파트너인 마틸드 드 모니(미시)와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콜레트는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성취도 이루기 시작한다.

1912년 콜레트는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Henry de Jouvenel을 만나 결혼한다. 외동딸 Colette Renee de Jouvenel을 두었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40세의 나이에도 당시 16세였던 남편의 아들 베르트랑 드 주브넬 (Bertrand de Jouvenel)과 5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낸다. 이때의 이야기가 1920년 소설 '셰리'로 출간된다. 소설은 베르트랑 드 주브넬과 관계를 맺기 몇 년 전인 1912년에 구상했다고 해서 환상이 현실이 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과는 1923년에 이혼) 1910년대 후반엔 신문의 평론 기고와 연극 각색에도 참여하고 Maurice Ravel과 음악 작업도 함께하면서 배우, 작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벨 에포크의 유명 인사가 된다.

1929년엔 대공황 속에서 생계를 위해서 파리의 rue de Miromesnil 에 '미용 연구소' 일종의 뷰티샵을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들의 피부관리를 직접 해주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 해 콜레트는 자신보다 16살 적은 나이의 세 번째 남편인 Maurice Goudeket을 만나 결혼한다. 전쟁 중에는 남편 모리스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자 비시 정부의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인물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수용소에서 구출해낸다.

고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녀는 주로 침대에서 수많은 신문에 글을 쓰고 소설을 출판한다. 그녀의 비정치적 성향과 재정적 필요로 인해 독일 점령기의 협력주의 신문, 페탱주의 신문에도 글을 썼고 지하 언론의 저항 세력으로부터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글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점령기의 일상, 전시의 여성들의 삶의 고단한 풍경을 써나갔을 뿐이다.

1945년엔 만장일치로 공쿠르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49년에는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다. 명성을 얻으려면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한 그녀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작가로 남는다. 1954년 8월 3일 사망 후 가톨릭교회의 장례식은 거부당했지만, 프랑스는 여성 사상 최초로 국가 장례로 콜레트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했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다른 상품

그림라울 뒤피

관심작가 알림신청
 

Raoul Dufy

1877년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태어났다. 1895년 르아브르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그림을 시작한 초기에는 주로 노르망디의 풍경을 수채화로 그렸다. 1900년 1년간의 군 복무 후에 파리로 가서 그림 공부를 이어갔으며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같은 인상파 풍경 화가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앙리 마티스의 〈호사·정밀·쾌락〉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참다운 의미를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야수파 운동에 참여했고 밝은 색채와 대담한 윤곽이 돋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이후 또 다른 스타일인 입체파 화풍의 그림을 그렸고 1920년 무렵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찾아냈
1877년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태어났다. 1895년 르아브르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그림을 시작한 초기에는 주로 노르망디의 풍경을 수채화로 그렸다. 1900년 1년간의 군 복무 후에 파리로 가서 그림 공부를 이어갔으며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같은 인상파 풍경 화가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앙리 마티스의 〈호사·정밀·쾌락〉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참다운 의미를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야수파 운동에 참여했고 밝은 색채와 대담한 윤곽이 돋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이후 또 다른 스타일인 입체파 화풍의 그림을 그렸고 1920년 무렵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찾아냈다. 그는 속필速筆을 유감없이 구사했고 보트 경주, 길거리 축제 등을 모티브로 하여 삶의 기쁨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뒤피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상업 예술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렸고 태피스트리와 도자기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1950년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손이 약해져서 작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52년 제2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회화, 판화, 도예, 조각, 일러스트, 태피스트리, 패션 디자인, 무대 장식, 실내 장식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뒤피는 1953년 3월 23일 일흔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설이소영

관심작가 알림신청
 

빅쏘

매일 미술 작품을 탐독하는 사람. 십여 년간 『하루 한 장 인생그림』,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미술에게 말을 걸다』,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등 여러 권의 미술서를 쓴 미술교육인이자 미술에세이스트다. 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는 미술교육학을 홍익대학교에서는 미술사학을 공부했으며, 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빅피쉬아트’, ‘조이뮤지엄’, ‘소통하는그림연구소’를 운영하며 학교 밖 미술교육이 삶의 모든 시기에 필요하다고 믿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미술교육을 실천하는 일에 힘
매일 미술 작품을 탐독하는 사람. 십여 년간 『하루 한 장 인생그림』,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미술에게 말을 걸다』,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등 여러 권의 미술서를 쓴 미술교육인이자 미술에세이스트다.

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는 미술교육학을 홍익대학교에서는 미술사학을 공부했으며, 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빅피쉬아트’, ‘조이뮤지엄’, ‘소통하는그림연구소’를 운영하며 학교 밖 미술교육이 삶의 모든 시기에 필요하다고 믿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미술교육을 실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아트메신저 이소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예술이 멀리 있는 지식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어루만지는 감각이 되기를 꿈꾼다. 예술이 사람의 일상과 마음에 닿는 그 미세한 순간을 믿으며, 그 가능성을 글과 말로 길어 올리고 있다.

이소영의 다른 상품

고려대학교에서 철학 및 불문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낭테르 대학교에서 2024년 「‘나’를 재발명하기: 1872년의 랭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랭보 사전』 집필에 참여했으며, 옮긴 책으로 『랭보 서한집』, 이브 본푸아의 『우리에게는 랭보가 필요하다』, 콜레트의 『식물 에세이』(근간), 토마 슐레세의 『모나의 눈』(근간) 등이 있다.

위효정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10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69.65MB ?
ISBN13
9788931025163

출판사 리뷰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 꽃에 대한 무한한 애정
싹트고 꽃피는 황홀한 봄에 부르는 꽃에 대한 찬가!


“흔한 패배에 불과한 죽음에서보다는
개화의 순간에서 심오한 드라마를 찾는 편이 낫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1947년 봄, 한 다발의 꽃에서 시작된
콜레트의 감각적이고 지적인 식물에세이!


《셰리》와 《여명》, 클로딘 시리즈 등을 쓴 프랑스의 국민 작가 콜레트는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이자 프랑스에서 국장을 치른 첫 번째 여성이었고 작가, 배우,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파란만장하고 분망한 삶을 살았다. 사랑, 성, 관능, 자유는 콜레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자주 언급되는데, 주제가 무엇이건 콜레트 작품에는 언제나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 신선하고도 적확한 표현력이 살아 있었다. 특히 자연 묘사에 재능이 남달랐고 그중 식물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콜레트에게 나무와 풀, 꽃은 의식주만큼이나 삶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수많은 작품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거처들은 언제나 집 건물보다는 거기 딸린 뜰이나 텃밭, 주변의 들판과 오솔길과 숲이었다. 이 책은 1947년 봄, 한 다발의 꽃에서 시작되었다. 스위스의 출판업자 앙리 루이 메르모가 콜레트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 꽃다발을 보낼 테니 그 답으로 꽃의 ‘초상’ 몇 편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콜레트는 들판의 초목을 그리워하면서도 관절염 때문에 침대를 떠날 수 없었기에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1년 후인 1948년에 22편의 글이 묶여 출간되었다. 원래는 초판부터 라울 뒤피의 삽화를 곁들일 예정이었지만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화가의 데생은 1951년 호화장정본에야 실릴 수 있었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
황홀한 봄에 부르는 꽃에 대한 찬가


콜레트 문장의 핵심은 감각이다. 콜레트는 감각적이고 예리하며 섬세한 문체로 식물에 대한 박학다식한 수다를 펼친다. 프랑스 문학이론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콜레트의 문장을 ‘언어의 촉각화’라고 표현하며 콜레트의 글이 자연과 여성성, 감각을 매개로 한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형성했다고 논했다. 난초를 나막신이나 낙지에 빗대어 표현하고 동백 수림의 ‘붉은 등이 한꺼번에 켜지는 순간’, ‘마지막 숨을 내쉬’듯 지는 작약의 죽음, 튤립 꽃송이의 ‘무거운 궁둥이’가 줄기 위에 용케 자리 잡은 모습 등에서 보고 맡고 느끼는 콜레트만의 특기가 어김없이 발휘된다. 감각을 총동원하여 꽃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콜레트는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꽃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식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20세기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 콜레트!
콜레트 산문 미학의 절정이자 프랑스 산문 미학의 전범


《봄의 이름으로》는 콜레트 산문 미학의 절정, 나아가 프랑스 산문 미학의 전범 중 하나로 꼽힌다. 비유와 암시가 촘촘하게 박힌 문장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화제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콜레트의 추억담, 꽃과 관련된 풍습, 토막상식, 문학적 여담, 심지어 식초 레시피까지 각종 지식이 한데 어우러지며 문장 굽이마다 숨어 있는 흥밋거리를 발견하느라 지루할 새가 없다. 또한 꽃의 외양을 묘사하다 어느새 기억 속을 헤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원래의 화제로 돌아오는 등 자유롭게 갈마드는 화제 사이에서 자꾸 갈피를 놓쳐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 꽃과 풀, 나무를 즐기는 가장 적합한 보법일지 모른다. 이 책은 콜레트가 살아온 시대와 환경 속에서 자연과 식물, 꽃을 탐구하고 기록한 여정이며,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책 속의 초록 세계는 단순히 꽃의 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감정, 시간, 기억의 흐름을 보여준다.

피카소와 호크니가 사랑한 빛과 색채의 화가 라울 뒤피!
유려한 선과 화사한 색채의 수채화와 흑연 드로잉 28점 수록


《봄의 이름으로》에는 감각적이고 섬세한 콜레트의 글을 시각 언어로 번역하듯 식물에 리듬과 생명력을 부여한 라울 뒤피의 그림 28점이 수록되어 있다. 1951년 호화장정본에 들어 있던 그림들로, 뒤피는 패턴을 그리듯, 식물의 감정을 번역하듯 선과 색으로 식물의 리듬을 다시 불러낸다. 콜레트와 뒤피, 두 사람은 프랑스 예술계의 전혀 다른 지형에서 출발했지만 이 책에서는 마치 오래전부터 한 정원에서 함께한 사람들 같다. 뒤피는 1910년대 초부터 문학과의 협업에 깊이 몰두했고, 그가 오랫동안 다뤄온 자연이라는 주제는 이 작품에 이르러 식물이라는 구체적인 얼굴을 갖는다. 꽃과 잎, 덩굴과 과일은 선으로 단순화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활기차면서도 자신감 있는 붓의 움직임, 투명하게 겹쳐 칠하는 수채의 농담, 여백이 살아 있는 구도는 뒤피가 식물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책은 콜레트와 뒤피의 경쾌한 대화이며 언어와 미술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리뷰/한줄평4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