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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11
1. 나라를 무너뜨린 왕비들 15 2. 빛에 중독된 시대 17 3. 성소수가 먹고 살아가는 모습들 19 4. 한국인이면 LA다저스를 응원합시다 21 5. 성교육을 해달라고 민원합시다 23 6. 문학과 애국심 25 7. 이토록 친밀한 타인 28 8. 이 땅에 살기 위하여 30 9. 양자역학과 마음의 혁명 33 10. 폭력의 시대와 동안거 35 11. 트럼프와 미국의 4B 운동, 한국의 페미니즘 37 12. 사회통념과 알권리 39 13. 한국 의료는 민주주의의 열망이었다 41 14. 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43 15.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46 16. 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48 17.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50 18. 미완의 1980, 밝혀야 할 2024 54 19. 탈핵과 노벨 평화상 56 20. 악의 무리를 쳐부수고 나면 58 21.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60 22. 공직자의 명예 62 23. 여성의 발자취를 지우려는 사람들 64 24. 유토피아(Utopia), 유토피아(有土彼我) 66 25. 을사년, 을사년, 그리고 을사년 69 26.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길 71 27. 사회 보호하는 시민, 보호할 민주주의 73 28. 불가능성에서 찾아낸 가능성 75 29. 파시즘의 두 얼굴 78 30. 거센 불길 속 지향해야 할 수평선 80 31. 농업판 전세사기 뒤통수 맞는 청년농민 82 32. 마음으로 필사하는 사회계약 84 33. 아는 어른 86 34. 북핵 정책의 재검토 필요성과 방향 88 35. 차 없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정책 90 36. 보수화된 청년 남성이란 환상서 빠져나오기 92 37. 왜 다시 성장인가 94 38. 너나 없이 주름투성이 알몸들, 마음이 편해진다 96 39. 정년 연장 실마리, 임금 체제 개편으로 찾아야 99 40. 나는 여기에 없습니다 101 41. 우체국 미소 천사는 웃기 힘들다 104 42. 배터리 산업, 국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106 43. 꿈과 꿈! 108 44. 각본 없는 현실 드라마 111 45. 진실의 순간, 진심의 순간 113 46. 연금과 은퇴 연령 갈등 115 47. 청소년 사이버 도박, 개인 일탈 문제 아냐 117 48. 어떤 역사의 죽음 118 49. 오냐 오냐가 능사가 아니다 121 50. 보험사 고무줄 회계 논란, 중요한 건 낙관도 보수도 아닌 설명 책임 123 51. 온실가스와 지구 온난화 125 52. 정치와 문화 127 53.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129 54. 정치의 저질화를 막으려면 131 55. 진정한 계몽, 보편성 추구하는 과학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133 56. 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세계 138 57. 문제 해결의 열쇠 프레임 142 58. 걷기가 근로자의 날을 만든다 144 59. 행복을 찾아가는 당신의 루틴은? 146 60. 마지막 선거라는 마음으로 149 61. 과학기술 사이 쉼표 하나 151 62. 차이는 손이 아닌 발에 있다 154 63. 대법원장고 대법원 전원 합의체 157 64.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강 159 65. 이익균점권을 생각하다 161 66.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164 67. 나는 누구인가? 168 68.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을 찾아서 171 69. 감정적 투표는 정권을 부패시킨다 174 70. 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178 71. 오늘 찍은 사진이 내일의 기억이 될 때 181 72. 소년법 폐지만이 정답인가 183 73. 일과 죽음의 사회 185 74. 21세기 감염병의 주인공이 된 바이러스, 인간이 초래한 건 아닐까 188 75. 분노라는 정치적 자원 193 76. 차별금지법, 능력주의 논쟁의 출발점 197 77. 살려고 뭉친다는데, 소도시· 농촌도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199 78. 간첩조작 피해 유우성 보복 기소한 검사가 검찰수장이 되면 206 79. 더불어(語) 사전 212 80. 모두의 빵과 장미 214 81.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되살려야 216 82. 공영방송 거버넌스, 도 개혁 입법 쟁점되나 218 83. 두 기억의 35주년 220 84. 중동의 낙태법 뜨거운 감자 222 85. 뜻밖의 말들 224 86. 목격 226 87. 엘비스, 의존성 장애의 비극 228 88. 서민의 시존 위협, 국가는 알까 231 89. 국립현대미술관 갈지자 행보 233 90. 반지하, 피한다고 끝이 아니다 235 91. 불쌍한 놈, 위험한 놈 237 92. 대통령은 여전히 선거 중 239 Ⅱ. 나가는 글/241 참고문헌/245 주석/247 |
金龍洙,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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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먹고 마시는 것, 음식 문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 즉 하루 한 잔 꼴이다. 커피 전문점 매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espresso) 원두도 선택해서 즐기는 맞춤형 고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제 마실 만큼 마셨는지, 더 스페셜(special)한 커피를 찾고 있다. 한 압력으로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 신속하다’의 뜻이다.‘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현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존재하기 전인 1880년대에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뜻은, 고객의 주문에 맞추어(expressly) 추출한 신선한 커피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가루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9~11bar의 압력으로 뜨거운 물을 가하여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한 고농축 커피’를 의미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들이 음식 예찬과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로 바뀌고 있다. 방송 또한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명언처럼 굳어진‘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란 말도 음식의 쾌락에 기반해 나오지 않았는가. 이는 프랑스인들이 고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계통의 질환이 적고 건강하게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탐식은 더 이상 죄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탐식이 죄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미각적 쾌락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선(善)인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랑스인과 관련된 역설을 이르는 말. 본래는 문화적ㆍ사회적 차원에서 프랑스인의 비상식적인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1980년대 이후 프랑스인들이 동물성 지방을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 비하여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탐식과 미식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르망디즈(gourmandise)는 탐식, 미식, 식도락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한때 구르망디즈는 음식을 무조건 탐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고, 심지어 탐식은 간음을 낳는 죄로 여길 정도로 부도덕한 단어였다. 그러나 점차 이 단어는 맛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즐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구르망디즈에서 착안한 용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위(胃)를 의미하는 가스트로(gastro)와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미식가를 지칭한 가스트로노미는 잘 먹는 기술과 방법으로 도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하며 먹는다는 뜻이다. 음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선악이 달라진다. 문제는 도를 벗어난 무절제와 과잉에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Rabelais, F.)의 대표작‘가르강튀아(Gargantua)’에 등장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과잉이었다. 그는 폭식, 폭음이라는 과잉이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중세 세계에 만연한 부조리임을 폭로했다. 『문학』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Rabelais, F.)가 지어 1534년에 간행된 풍자 소설. 전 5권으로 된, 프랑스 르네상스의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권으로, 체력과 식욕, 지식욕이 뛰어난 거인 가르강튀아가 중세 말기의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흥미진진하게 풍자ㆍ비판한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는 인간이 행하는 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잉이라고 했다. 과잉이 왜 악일까. 과잉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잉은 본질을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과잉은 좋은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쾌락으로 몰아넣는 거짓이자 악이라고 했다. 탐식을 인간의 내면적 삶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 수도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5-399)이다. 그는 인간을 내적으로 타락시키는 8가지 악덕을 열거하면서, 첫 번째 자리에 탐식을 놓았다. 그는 과잉이 낳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했다. 우리는 탐욕과 과잉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탐욕과 과잉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탐식과 과잉이 진실한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인간(人間)은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이다. 문화(文化)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이다. 이 책은 사람의 본성과 관계지어 사회 전체 구성원의 생활 양식과 행동 양식 및 그 기반이 되는 물질적, 정신적 소산과 관련이 있는 것을 누리는 인간 문화와 인간 행동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2025년 6월 海東 김용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