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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우리의 긴 작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여보세요? 왜 전화했어? 커피 우리, 목욕할까요? 주방 함락 화장실 대참사 불면의 밤 2장 하루를 버티는 법 여행 하루를 버티는 방법 그냥, 산책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 약 먹이기 작전 병원 가는 날 요양기관 입소 전야 3장 안녕, 오랜만이야 노래를 들으며 입원 나의 우울증 극복기 지원단 결성 서명할 사람이 없다 돌봄의 주체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 추신 추천의 말 |
鄭秋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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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볼 수 있었지만, 예전처럼 열렬히 반겨주는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습관적으로 말을 걸고 수다를 떨어도 그는 좀처럼 내 말을 귀담아듣거나 대꾸하지 않았다.
--- p.7 푸보의 기억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너질 일만 남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 도대체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이 잔인한 병 앞에 함께 서 있는 것 외에,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p.44 “심호흡하자, 심호흡.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 그이는 환자잖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럴 수도 없는 상태야. 침착해야 해. 침착해.” 그러는 동안에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집에는 나만의 공간이나 사생활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 p.69 언제부터일까? 우리의 고통이 시작된 때가. 그는 이해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협조할 수 없어서 고통스럽고, 나는 그런 그를 보는 게 가슴 아프고 막막해서 고통스러웠다. --- p.143 우리는 또다시 그의 하의를 가위로 잘랐고, 그는 선 채로 몇 번째인지도 모를 용변을 보았다. … 예전부터 이런 일이 생길 때면 그의 다리에 묻거나 밟아서 청소하기 힘들어질까 봐 용변을 최대한 손으로 받아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미처 손을 뻗기도 전에 이런 일을 겪어본 적도 없는 딸 란란이 먼저 아무 망설임 없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아빠를 향한 딸의 사랑이 보였다. --- p.152 나는 조명 빛을 마주 보고 서 있던 탓에 푸보가 바로 앞까지 온 후에야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반면 그는 내 얼굴을 일찍이 보고 있었을 텐데도 나를 향해 그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주 작은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안녕, 오랜만이야.”그 순간 눈치챘다. 그는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 p.159 그는 이제 나를 모른다. 내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자신의 원래 집은 어디였는지도. 그런 그의 마음속에 이제 무엇이 남아 있을까? 우리의 딸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리워하는 무언가가 있을까? --- p.162 “엄마, 너무 슬퍼 마세요. 아빠 반응을 그렇게 담아두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우리는 지금처럼 계속 아빠를 사랑하고 있으면 돼요. 아빠도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알고 계실 거예요. 분명 그래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사세요.” --- p.162 ‘누가 돌보는 게 더 좋은가’에 대한 대답은 사실 가족이 결정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요양기관에 대한 오해가 많아요. 가정에서 가족들이 돌보는 것이 요양기관의 전문 인력에게 맡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줄로만 알고 있죠. 사실, 누가 돌보는가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반드시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어요. --- p.204 어느 순간, 포근한 햇살 아래에 있던 푸보의 눈빛에 서서히 생기가 돌더니, 천천히 한쪽 손을 뻗어 란란의 외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치매 아빠가 마침내 딸을 알아봤다는 둥 호들갑 떨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치매는 돌이킬 수 없는 병이라는 걸. 이제는 그가 잘 먹고 잘 자고 몸 아픈 데 없이 평온하게 살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 p.228 그동안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있던 책임을 내려놓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다. 나에게 남은 책임은 푸보가 나를 필요로 할 땐 배우자가 되고, 딸이 나를 부를 땐 엄마가 되어주는 것뿐. --- 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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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학자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지성과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어떤 비극 한 부부가 있다. 평생의 연구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언어학자 정추위,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일하며 성실히 가족을 지탱한 푸보. 가난한 미국 유학 생활 시절부터 40년 넘게 동고동락한 이 부부에게는 수십 년 이어온 중요한 루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매일 아침에 푸보가 내어 온 커피를 마시며 대화로 하루를 열고, 퇴근 후에는 한데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것. 하지만 언젠가부터 푸보는 말이 짧아지고 침묵에 빠진다. 그에게 치매가 덮쳐온 것이다. 좋아하던 커피를 수십 잔 내려 집 안 곳곳에 두거나, 매일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댔고, 방향감각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남편이란 이토록 슬픈 존재구나. 아무런 대답 없는 가족이란 이토록 상처가 되는구나. 사람은 아직 있는데, 나의 반쪽은 사라지고 없구나….”(8쪽) 그는 살아 있지만 몸만 이곳에 있을 뿐, 마음은 이미 세상을 떠나가고 있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대만 역시 마찬가지다. 집안에 고령의 환자가 생기면 전처럼 젊은 손아랫사람의 간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의 배우자가 첫 번째 책임자가 되는 환경이다. 『아주 느린 작별』은 노년의 배우자가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돌본 기록이라는 점에서 치매 부모를 돌보는 자식 혹은 의료계 종사자가 쓴, 여타의 책과는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68세의 나이로 집에서 남편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헌신과 사랑을 쏟지만 남편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한다. 한평생 연구에 매진한 부부가 쌓아온 빛나는 지성, 깊은 유대 관계도 삶에 밀려오는 비극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배운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몸소 느낀 저자는 자신의 생에 덮쳐온 이 커다란 상실을 전력으로 마주하기로 한다. 대만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에세이로, 불행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아름답게 펼쳐 보이며 읽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국내 유명 사진작가 GABWORKS의 작품을 곳곳에 수록하여 이야기의 여운을 더한다. 인생의 필연적 이별을 마주하며 언어학자가 상실에 붙이는 새로운 의미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나에게 기나긴 작별 인사를 건넬 때, 어둡고 긴 터널을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걷는 일.”(114쪽) 질병, 죽음…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겪는다. 대체 이 상실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이 책은 치매라는 상실의 경험을 단지 개인적 고통으로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두려움과 공감의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온몸으로 경험한 이 필연적 상실을 심장에 사무치는 슬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써 내려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좌절하지 않으며 사랑과 의지의 태도로 그 시간을 견뎌낸다. 잃어가는 언어와 기억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은 가족을 향한 사랑과 끝내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생의 의지였다. 저자는 마침내 자신이 겪은 상실에 새로운 의미를 붙인다.“그가 우리를 보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슬프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일 때면 우리도 마주 웃었다. 그를 사랑하는 지금의 우리 모녀에게는 그의 어떤 대답도 필요치 않다”(161쪽) 함께 쌓은 사랑과 기억은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며, 어떤 보답도 필요치 않는다. 독자는 이 책에 기록된 생생한 삶의 체험을 통해‘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상실’을 미리 마주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별 이후에도 생은 계속되니까 아픔의 끝에서 다시 나아가는 삶 상실 이후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저자는 남편의 병세가 심해지자 서둘러 은퇴하고 24시간 대기조, 전천후 보호자가 된다. 그사이 자신의 몸과 마음도 병들어간다. 그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노년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푸보를 돌보기 전은 물론 돌보는 과정에서조차 남편은 있으나 동반자가 없는 나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조금도 해두지 않았음을 깨달았다.”(9쪽) 돌봄과 간병은 한 개인의 삶을 소진시키는 고통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보여주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을 건넨다. 저자는 자신과 딸을 영영 알아볼 수 없게 된 남편을 힘겹게 받아들이며 작별을 고한 뒤 혼자 살아가야 할 시간을 마주할 힘을 낸다. 지인으로 이루어진 ‘추위 지원단’을 결성해 위급 상황시에 그들이 자신을 대신해 대처할 수 있게 인적 지원망을 마련하기도 하고 그간 애써 외면해 온 치료를 받는 등 인생 곳곳을 손본다. “그동안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있던 책임을 내려놓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다. … 앞으로의 나는 미련 없이 나 자신으로 돌아가 꾹꾹 눌러 담아도 부족하기만 한 여생을 즐길 것이다.”(230쪽) 이 책에는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삶의 의미와 존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세계가 사라지고 그 아픔 끝에서 홀로 일어서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과 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을 통과해 낼 사람들,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삶을 다시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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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구자로서는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천착했고, 노년내과 의사로서는 진료실에서 치매를 경험하는 분들의 경과를 조각조각 경험했다. 왜 정신행동증상이 생기는지, 앞으로는 무슨 일들이 있을 것인지를 설명해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깊은 고통 앞에서 의학적 조언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병의 경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저마다 다른 고충을 온전히 공감하는 건 늘 어려운 숙제다. 그런 점에서 언어학자인 작가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은 이 기록은, 데이터와 진료 기록만으로는 결코 엿볼 수 없는 치매와 돌봄의 세계를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보인다. 한때 지성으로 빛나던 한 사람이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이 단절되고, 익숙했던 모든 것을 잃으며 마치 거꾸로 아기가 되어가는 듯한 모습은 치매라는 병의 본질을 아프도록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기억 상실이 아닌, 한 사람의 세계가 소멸하는 과정이다. 모든 치매 환자가 이토록 빠르고 험난한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질병의 통계나 단편적인 증상 너머에 있는 한 인간과 그 가족의 존엄, 사랑, 슬픔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치매를 오롯이 마주하고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정희원 (의사, 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저속노화]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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