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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보석
옮긴이의 말 - 버림받은 두 '작은 보석'의 이중주 |
Patrick Mod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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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한 소녀의 성장기
1968년 『에투알 광장』으로 등단한 이래 파트릭 모디아노가 두 해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신작을 발표해온 지도 어느덧 마흔 해가 다 되어간다. 한 사람의 작가이기를 넘어 하나의 '세계'이자 '현상'으로 자리잡기까지, 모디아노는 오직 하나의 주제 즉 "바스라진 과거, 지워져버린 생의 흔적을 찾아 수수께끼 같은 삶의 고갱이로 침잠해 들어가는 인간"을 그리는 데 세월을 바쳐왔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일관된 스타일로 그려와서인지, 그를 두고 "거대한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집필하는 작가"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2001년작 『작은 보석』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저편으로 떠나는 한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 동안 모디아노가 천착해온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작 『신원 미상 여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여성화자의 입을 빌려 말하기'는 이 소설에서도 계속된다. 갓 사춘기를 지나 성년의 문턱에 다다른 젊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 역시 같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제목과는 달리 『작은 보석』은 잊은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위협당하며 점점 무너져 내리는 현재를 그린 악몽 같은 소설이다('작은 보석'은 프랑스어로 '우리 아가'라는 뜻도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열쇠”(‘라 크루아’와의 인터뷰에서)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성년이 되기 위해 소녀가 하나의 문을 닫은 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디아노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인간 존재의 현실을 구체적 시간과 공간으로 직조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일요일 저녁의 인적 드문 뒷골목, 아이들이 없는 황량한 놀이공원, 어둡고 스산한 기차역 주변…… 『작은 보석』의 테레즈는 피폐해진 전후의 파리를 몽유병자처럼 떠돈다. 불로뉴 숲에 버려진 길 잃은 강아지 같은 소녀의 이야기는 슬프다 못해 비통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작가는 한마디 과장도 신파도 없이, 나직하고 억제된 목소리로, 불필요한 수사를 제거한 단단한 금강석 같은 문장으로 서술한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한 곡의 노래 같은 그의 소설들을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왜 모디아노는 한 곡의 노래를 끊임없이 변주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일까. “내가 쓰고 있는 책들은 결국 어느 날인가 쓰게 될 한 권의 ‘진실한 책’에 가닿기 위한 것입니다.”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하나의 진실을 위해 구도하듯 글을 쓰는 작가의 여정은 상처에 상처를 거듭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과 닮아 있다. 그 집요함과 한결같음 때문에라도 이 작가의 행보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살아내기 위하여,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수께끼 같은 삶의 고갱이로 침참해 들어가는 한 젊은 영혼의 표류기 언제나 ‘나’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모디아노의 소설은 종종 작품에 드러나는 자전적 요소로 주목받기도 한다. 20여년 전 『썩 괜찮은 녀석들 De si brave garcon』에 스쳐 지나가듯 등장한 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쓴 『작은 보석』 역시 그렇다. 1950년대 파리 근교에 살았던 모디아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던 한 소녀를 모티프로 작가가 탄생시킨 인물이다.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옷을 입고 있는 가난한 소녀의 주위를 떠돌던 기이한 아우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작가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아 이렇게 『작은 보석』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세계2차대전 종전 후, 모든 가치가 상실된 시절에 태어나고 성장한 작가의 문학적 양분이 된 것은 ‘고아의식’이었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일정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찾아 헤맨다. 스스로를 고아로 규정지은 인물들이 근원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모디아노는 과거와 화해하기 위해서 근원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모디아노에게 자신의 근원,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여행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이미 시효가 소멸된 신분증”처럼 덧없을지라도, 위태위태한 현재를 지탱해줄 유일한 버팀목이다. 『작은 보석』의 테레즈 역시 같은 이유로 ‘몇몇 보잘 것 없는 추억을 긁어모아 마지막으로 유년기의 흔적들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런 점에서 테레즈는 1972년작 『외곽도로』의 주인공 ‘나’를 연상시킨다. ‘잃어버린 아이’로서 아버지를 찾아 헤매고, 그 초라한 모습에 실망하지만 끝내 혈육의 끈을 놓지 않는 ‘나’는 테레즈의 남자 쌍생아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외곽도로』의 ‘나’가 아버지와의 유대관계를 확고히 하기로 결심하는 데 반해, 테레즈는 결국 엄마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홀로서기를 택한다(그녀는 엄마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까 고민하다 뒤돌아 계단을 내려온다). 자살을 기도한 그녀가 깨어나는 병실이 신생아실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테레즈는 말한다. “그날부터 내게도 삶이 시작된다는 신호가 그러고도 오랫동안 귓가에 쟁쟁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안개 같은 현실에 직면한 주인공들을 그린 전작들과는 달리, 모다이노는 『작은 보석』에서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아마 그래서 이 소설을 ‘슬픔과 화해의 소설’('라 크루아')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