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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카라의 삶 (788-820 A. D.)
옮긴이의 제5개정판의 글 제1장 아르주나가 슬퍼하다 제2장 지식의 길 제3장 행위의 길 제4장 지식의 길의 계보 제5장 행위의 포기(산야사, 세상의 포기, 수도자)의 길 제6장 명상의 길 제7장 신에 대한 지식 제8장 불멸하는 절대자에게로 가는 길 제9장 최고의 지식과 비밀 제10장 신의 거대함 제11장 신의 우주적 모습 제12장 헌신(박티) 제13장 들과 들을 아는 자 제14장 세 구나들의 구분 제15장 지고한 영 제16장 영적 성향과 물질적 성향 제17장 세 유형의 믿음 제18장 포기와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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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주나는 연민에 휩싸였고, 낙담하고 괴로웠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악마 마두의 살해자이신 마부 크리슈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2. 1」 중에서 오, 쿤티의 아들(아르주나, 위대한 궁수)아! 현자들은 이 신체를 들(크세트라)이라 하며, 이 신체를 아는 자(크세트라갸)를 들을 아는(지켜보는, 목격하는, 이해하는) 자라고 한다. --- 「13. 2.」 중에서 오, 바라타! 나는 모든 들들을 아는 자임을 알라. 들과 들을 아는 자의 지식을 나는 진정한 지식이라 여긴다. --- 「13. 3.」 중에서 구다케사! 나는 모든 존재들의 가슴(붓디, 미간, 지성, 이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나(아트만, 영, 빛, 지성과 이해는 나의 그림자)이다. 나는 모든 존재들의 시작, 중간 그리고 끝이다. --- 「10. 20」 중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는 사람은 태어남을 피할 수 없다(탄생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의 끝은 탄생이다). 그대는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 --- 「2. 27」 중에서 그것(아트만)은 (여섯 가지 변화들인) 태어남, 존재, 성장, 변형, 쇠퇴, 죽음이 없다. 어떻게 그것이 신체가 죽을 때 죽을 수 있겠는가? --- 「2, 20」 중에서 나(아트만)는 상처입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도 않는다. 이것은 물에 젖지도 않으며, 바람에 마르지도 않는다. 이것은 영원하며, 모든 곳에 있으며, 변치 않으며, 움직이지 않으며, 견디어 내고 있다. --- 「2. 24」 중에서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이것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는 알라. 그 불변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파괴할 수 없다. --- 「2. 17」 중에서 비실재(프라크리티, 마야, 항상 변화하는 세상)는 존재를 가지지 않고(존재하지 않고) 실재(Sat, Is, 신성 혹은 불성, 영, 순수한 의식, 신, 보는 자, 목격자, One, 아트만,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는 바탕, 시간 너머의 존재)는 비존재를 가지지 않는다(항상 존재한다). 진리를 보는 현자들은 이 두 사실들을 알고 있다. --- 「2.16」 중에서 모든 것들에 스며들어 있는 공간이 미세하여 어떤 것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듯이, 나(아트만) 역시 모든 신체들에 있어도 오염되지 않는다. --- 「13. 33」 중에서 태양도 달도 불도 그것을 빛나게 할 수 없다. 그곳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결코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최고의 거처이다. --- 「15. 6」 중에서 이 최고의 거처는 지각되지(현현하지) 않는 것, 파괴될 수 없는(무한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이 나의 최고의 거처이다. 나는 거기에 있다. 그것에 이른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 「8. 21」 중에서 자만과 무지로부터 자유로운, 애착이라는 악을 극복한, 늘 나(아트만)에 헌신하는(명상하는), 욕망을 뒤로 한, 쾌락과 고통 같은 이원성들을 완전히 초월한, 망상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변화들 너머에 있는) 그 영원한 상태에 이른다. --- 「15. 5」 중에서 경전의 가르침들을 버리고, 욕망의 충동들에 따라 행위 하는 사람들은 지상의 행복도, 천상의 기쁨도, 삶의 최고의 목표(해방)도 놓칠 것이다. --- 「16. 23」 중에서 모든 소멸하는 존재들 안에 동등하게 존재하는, 그들이 소멸할 때도 소멸하지 않는 하나(Super Soul)를 보는 사람이 바르게(진정으로) 보고 있다. --- 「13. 28」 중에서 가장 충만한 봉사, 완벽한 믿음(헌신), 최대의 항복에 의해서만, 그대는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볼 수 있으며, 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오, 아르주나! --- 「11. 54」 중에서 사람들은 믿음을 필히 지니고 있다. 오, 바라타! (삿트바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신을, 진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라자스적인 사람들은 이 세상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타마스적인 사람은 이 세상이 지옥일 것이다.). 그가 가진 믿음이 바로 그 사람이다. --- 「17. 3」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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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영성은, 삶의 지혜는 베다들에 담겨 있다고 한다.
베다들을 주문하니 두꺼운 20여권이었다. 독파할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였다. 베다들의 방대한 내용들을 신 크리슈나가 요점만 간략히 정리한 것이 바가바드 기타라고 한다. 인도의 수많은 성자들을 탄생시키고 오늘날에도 간디, 헤르만 헤세, 소로 등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위대한 성자들로 변모시킨 세계의 고전이다. 우선 수트라들만 있는 것을 구해 읽어보았다. 대단히 어려웠다. 그래서 주석서가 있는 샹카라의 바가바드 기타를 번역하여 자세히 보고자 하였다. 샹카라는 논리가 너무나 정연한 분이시다. 32세에 세상을 떠난 분이시니 30세 전후의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의 주석서를 놓치지 않았다.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글 중간 중간에 간혹 나오는 가상적인 주제를 두고 가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어려워 삭제를 했다. 매 수트라의 해석은 새로운 용어로 다듬기도 했다. 샹카라는 바가바드 기타의 주석서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유명한 기타 샤스트라는 모든 베다 가르침의 진수를 요약하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 가르침의 명료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여러 주석자들이 주석을 달았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가지각색의 그리고 매우 상반되는 학설들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나는 기타의 엄밀한 의미를 정하기 위하여 간략한 주석서를 쓰기로 하였다.” 그 책을 독파하고 싶었다. 대학교 교수로서 연구와 강의 부담은 컸다. 경전을 탐독할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 나는 자동적으로 은퇴할 것이다. 그 조용한 시간에 바가바드 기타를 음미할 것이다. 은퇴한 지 12년이 되었다. 이제야 바가바드 기타의 전체 구조가 보이지 않는가......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크게 두 부류의 구도자를 상정하고 있다. 기타의 질문자인 아르주나. 그는 세상에 살면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다. 또 다른 부류는 세상을 떠난 즉 출가한 수도자들이다. 그들은 가정을 떠나 전적으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출가를 이 책에서는 산야사라 한다. 찾고자 하는 점에서는 둘은 같다. 산야사의 삶이든 세상의 삶이든 평화에, 즉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한다.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생각이 없으면 진리가 드러난다. 또 한 유형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현자들이다. 진리에 이른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는 아트만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아트만은 자아가 아니다. 아트만은 자신과 우주의 중심인 그 무엇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붓다가 깨달았을 때의 붓다의 상태이다. 마음으로는 지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논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다. 신이라는 개념은 좀 복잡하다. 신은 크리슈나, 쉬바, 라마, 알라, 예수 혹은 붓다 등의 이미지들일 수 있다. 그것들은 형상을 가진 신의 모습이다. 그러한 형상과 하나가 되면 그는 유상 사마디에 들어간 것이다. 유상 사마디는 궁극은 아니다. 궁극은 무상 사마디에서 보인다. 그때는 크리슈나, 쉬바, 예수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한 물건이라고 하는 것 같다. 신이나 한 물건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음으로는 궁극은 그려볼 수 없다. 무상 사마디에 이르면 진리가 보인다. 수행의 끝을 어떤 경전에서는 무상 사마디의 체험이라 한다. 또 어떤 경전들에서는 무상 사마디의 체험 이후에야 진정한 수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옮긴이는 후자를 지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