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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기
죽은 병사를 위한 발라드 한밤의 북소리 2. 베를린 도시의 정글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2세의 생애 인간은 인간이다 서푼 짜리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 쿨레 밤페 어머니 3. 망명 둥그런 머리와 뾰족한 머리 카라 부인의 소총 제3제국의 공포와 비애 용감한 어머니 사천의 선인 푼틸라 씨와 그의 종복 마티 아르투로 우이의 막아야 할 출세 시몬 마카드의 환상 2차 세계 대전의 슈봐이크 코카서스의 분필 동그라미 갈릴레이의 생애 4. 귀환 코뮌 시절 베를린 사람들의 앙상블 5. 그 다음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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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협상 끝에 브레히트와 바이겔은 그들 자신의 극단 '베를린 사람들의 앙상블'을 창설할 수 있는 허가를 얻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배우와 작가 세대를 모집한다. 브레히트는 그 일에 몰두해서 동독 극장들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제공하는 임무를 스스로 맡는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고전 연극으로부터 많은 작품들을 개작한다. '베를린 사람들의 앙상블'은 서푼짜리 오페라가 공연되었던 장소를 주무대로 삼게 된다. 그 극장은 여전히 예전의 자리에 건재해 있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곧 공식적인 견책을 받는다.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너무 실험적인 데다가 노동자 관객들이 소화시키기에는 너무 냉소적이고 형식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반응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당시 사회주의 사실주의 연극의 공식적인 강령으로 받아들여지던 소련의 제작자인 K.S.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론으로부터 크게 어긋난 것이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연극은 배우에게 그가 맡은 배역에 대한 친밀한 실제적 경험을 요구하며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듯이 연기에 몰입하도록 요구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의식의 방해를 혐오했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극론에 대한 대규모 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서 서사극이 비판되었다. 브레히트는 대립하는것을 피했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은 공존할 수 없었다. 1953년 6월 스탈린의 사망 직후, 동독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작업 조건에 저항해 시위를 벌인다. 곧바로 시내 중심가로 이어진 이 시위는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진압된다. 6월17일의 봉기 이후에 작가 동맹의 위원장은 스탈린가에서 전단을 뿌렸다. 민중은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정부의 신뢰감을 잃어버렸으며 다시 신뢰감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민중을 해산하고 새로운 민중을 뽑는것이 더 쉽지 않을까?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투이-부패된 지식인'를 동양적 이야기(튜란도 혹은 화이트워셔들의 위원회)로 바꾸어 다시 상연하도록 만든다. 1955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 평화상을 받는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작품들은 서방 세계에서 공연이 금지된다. 브레히트의 마지막 생애 몇 년은 거의 갈릴레오적 내적 은둔으로 이어진다. 그는 버코우에 있는 시골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종말을 앞에 둔 초시계처럼 일을 했다. 동베를린에 있는 그의 가족은 휴그놋 묘지 건너편, 차우센가(현재 공문서 보관소가 있는)에 있는 그의 극장으로부터 10분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브레히트는 그의 사무실에서 무덤을 볼 수 있었다. 브레히트는 1956년 8월14일 사망했다. 그 다음날 그는 납으로 만든 관에 넣어져 묻혔다. --- pp.177-1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