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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마오쩌둥은 1911년, 6개월동안 새 공화국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 시기는 마오쩌둥에게 아주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1911년부터 1918년까지 마오쩌둥은 후난성의 중심 도시인 추앙샤에서 공부했다. 졸업할 때 마오쩌둥은 그 곳 보통학교 교사가 되어 있었다. 마오쩌둥은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냈다." 그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세계 지도를 보았고 그것을 자세히 연구했다." 마오쩌둥은 아담 스미스, 다윈, 존 스튜어트, 칸트, 괴테 등의 저서를 탐독했다. 마오쩌둥은 또 저서『윤리의 구조』를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관한 마오쩌둥의 독서는 칼 카우츠키의 계급투쟁, 커컵의 사회주의의 역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등에 그쳤다.
마오쩌둥은 1918년 추앙샤에서 활동적인 젊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새 시민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서리가 내리는 때에도 야외에서 잠을 잤고, 11월에도 차가운 강물에서 수영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신체 단련'을 목표로 행해졌다. "훈련은 가차없고, 혹독해야 한다." 당시 마오쩌둥은 이렇게 썼다. "말 잔등에 뛰어 올라타면서 동시에 사격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전장에서 저 전장으로 옮겨 다닐 수 있어야 하며, 한번의 함성으로 가히 산이 움직이고, 분노의 포효로 하늘색을 바꿀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가차없고 혹독한 생활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요. 고상한 것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이다." 이 시기에 마오쩌둥이 다른 젊은 활동가들과 달랐던 점은 그가 군중의 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념이었다. "우리 중국인들은 아주 거대한 고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억압이 더 심해질수록 저항은 더 강해진다.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이 저항 세력은 얼마 가지 않아 폭발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황금기, 우리의 빛나는 전성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pp.4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