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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진노를 사기 위해 꼭 무언가 잘못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천하무적 장수인 골리앗에게 도전하여 돌팔매로 그를 한방에 쓰러뜨린다는 이 성서 속 이야기는 따로 배운 적이 없어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주로 ‘약자와 강자의 싸움’에 대한 비유로, 스포츠나 비즈니스 등의 세계에서 줄기차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약자와 싸우는 강자’의 대명사인 골리앗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사였는지, 성서만 읽고는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육중한 신체에 무겁고 큰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좀더 잔인무도한 전사로서의 골리앗에 대한 설명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심지어 많은 도전자들을 때려눕히는 구절도 보이지 않는다. 승리를 거듭하기는커녕 말로써 도발만 했을 뿐, 전투라고는 다윗과 벌인 싸움이 유일하다. 그리고 유일했던 그 싸움의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대로다. 여기가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이 들어가는 지점이다. “골리앗은 사실 덩치만 컸지 마음 여린 병사가 아니었을까? 그 덩치 때문에 뜻 모를 싸움에 말려든 게 아니었을까?”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가정에 따라 골리앗은 잔인한 전사에서 가련한 병사가 되고 만다. 애초에, 창만 들고 서 있는데 저 멀찍이선 힘을 다해 돌팔매질을 해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식겁할 노릇인가. 죽은 후에 벌어진 일들은 더 처참하다. 때로는 패배자에게도 끌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어째서인지 골리앗에게는 그 마음들이 하나같이 인색했다. 그러니 그토록 많은 그림에서 골리앗은 목이 잘린, 혹은 잘리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게 아닐까. 어쩌면 톰 골드는 최초로 골리앗이란 패배자에게 끌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인 김경주, 골리앗의 외로움을 노래하다 흥미롭고 거룩한 성서 속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와 달리 『골리앗』은 다소 우울하고 외로운 느낌으로 흘러간다. 톰 골드는 귀여운 캐릭터들과 영국식 유머 때문에 가벼워질 수 있는 만화의 분위기를, 책 전체에 깔리는 갈색 빛 색채와 여운을 안겨주는 여백들로 적절하게 조절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시인 김경주는 『골리앗』에 깔려 있는 슬픈 분위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톰 골드가 구사하는 풍자적인 유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재밌게도 톰 골드와 동갑내기인 그는, 작가가 그려낸 거인의 쓸쓸함을 고르고 고른 시인 특유의 언어들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다윗과 골리앗이다. 하지만 톰 골드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정교한 흑백 일러스트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시인 김경주에 의해 옮겨지면서 『골리앗』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났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골리앗의 뒷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픽션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앞으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접할 때면, 달빛에 비친 조약돌을 가만히 바라보는 슬픈 병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