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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성의 언어
반양장
이수경
신생(원양희)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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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새로움, 그 발견에 예를 갖추다
―권박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
우듬지에서 부르는 리토르넬로
―김수우 시집 『뿌리주의자』
노동자들의 지장보살이 되다
―김해자 시집 『해피랜드』
레이스의 잔물결 가장자리로
―노혜경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
시 쓰기라는 고른판
―이소호 시집 『캣 콜링』
절단되는 언어, 자기-향유를 누리다
―조말선 시집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미안한 방향’이 향하는 곳
―하영란 시집 『미안한 방향』
미지의 그 무엇-되기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김수영의 시(1)
온몸의 시학에 나타난 시의 진솔성
―김수영의 시(2)
우리는 왜 횡단하는가
―김수영의 시(3)
의미장에서의 생활세계
―김수영의 시(4)
언어 어긋내기
―사투리시집 『인자 문 끼라 봐라』
지구가 보내는 시그널
―기후시집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
생명, 그 관계의 시학
―생명시집 『먼지였다가 연잎이었다가 구렁이였을』

저자 소개 1

의령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의대학교 대학원에서 들뢰즈의 철학 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에서 문우들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지금은 비영리공동체 ‘문화사랑백년어(무한서원)’의 대표를 맡아 인문 계간지 <백년어>를 발간하고 있으며, 회원들과 독서소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독서하고 글쓰는 행위를 통해서 공존과 상생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저서로 『들뢰즈의 안드로메다』, 공저 『사십계단 위의 카프카』, 『울프의 오래뜰』, 『경전 한 잎, 바람 한 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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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8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18g | 130*200*14mm
ISBN13
9791194345053

책 속으로

내용과 형식의 탈주

이게 시인가, 논문인가 권박의 시를 맞닥뜨리면 드는 생각일 것이다. 각주 없는 시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로 보이는 시집이 바로 『이해할 차례이다』 이다. 어떤 시는 본문 보다 각주가 더 많다. 그러나 각주를 읽어보면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보조적 장치나 단순히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설명이 아니다. 각주가 시로 느껴진다. 어떤 시는 오히려 본문 보다 각주가, 화자가 말하려는 시로 다가온다. 묘하다, 참.

시는 내용과 형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구조로 표현된다. 시의 내용과 형식은 시의 의미와 표현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함께 분석할 때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박의 시는 두 요소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새로움을 발산해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의 형식도 각주를 덧붙인 파격적인 시로 실험적인 해체시를 선보이고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도 시의 형식만큼이나 김행숙 시인의 언급처럼 초현실적이다. 우선 시의 의미를 발화하고 있는 내용을 향해 가보자.

내 장례식에// 몇 명이 왔니// 한꺼번에 접시들이 깨지는 방식으로 있는 힘껏 몸에서 하루가 떨어져 나갔을 때// 봤지? 담벼락에 앉아 있는 의식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죽음은 투명해지는 것.// 내가 내 얼굴에 손가락을 넣고 죽음을 깨달았을 때// (귀신은 쓸데없이 말이 많으니까) 들어 볼래? 이야기를 들어도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모르게 돼. 나의 말에 영원히 잠잘 수 없게 돼. 고백처럼 흉측해지게 돼. 말의 뜯어진 실밥. 더, 뜯어 볼래// 수화기는 침묵의 자세로 달리아는 화분의 자세로 나는 저녁의 자세로 얼굴 속에서 시계를 꺼내고 시계 속에서 거울을 꺼내고 거울 속에서 나를 꺼내도…… 신체 부위 중 어둠이 가장 많은 곳은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돼.// (나는) “담벼락에 앉아” (나를) “봤지.”// 저녁은 조문객.// 조문객은 관습.// 죽음은 (몇 명이 왔는지에 의해서) 어떤 사람이 되는 일./ 그러나 그것은 소문처럼 나만 모르는 나의 일./ 눈앞에 양들을 떠밀자./ 양의 뿔 같은 저녁을 세자./ 뚫는 양의 세계에 진입!// 그래도 묻게 돼./ “몇 명이 (안) 왔니”
--- 「내 장례식에」 중에서

“나는 담벼락에 앉아 나를 본다. 시계 속에서 거울을 꺼내고 거울 속에서 나를 꺼낸다.” 그리고 어둠을 알게 된다. 이 시를 읽으면 독자가 처음 느끼는 부분이 이상의 시를 떠오르게 한다는 사실이다. 「내 장례식에」라는 시는 두 편인데 다음 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나와 악수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른손과 왼손을 악수시켰다”, 분열되는 두 명의 ‘나’가 왠지 이상의 「거울」 속의 ‘나’와 겹친다. 거울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이상의 시처럼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고,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분열증자가 될 수밖에.

이름 없이 수많은 영민한 여성들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을 수 없는 탓일까. 시인의 시집 전체에 흐르는 가장 큰 주제가 ‘죽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영혼의 해방’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럴까. 시인은 ‘죽음’이라는 시의 주제를 통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작가들을 해방시키고 있는 듯하다. 죽음의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입장이지 않은가. 또한 죽음의 순간만큼은 이름을 가진 당당한 나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권박 시인에게 죽음은 단순히 위로나 슬픔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위한 죽음의 긍정이다.

시인의 「내 장례식에」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죽음이 존재한다. “정말 죽고 싶었는데, 망각이 위로가 되는 곳에서도 나의 우울은 2센티나 자랐지,/ 온몸이 붓지 않을 정도로만 실패한 나는 네 이름을 불렀는데, 주카이,/ 네 이름만 부르면 죽고 싶어, 모자 안에서 보다 더 모자 같아졌는데,//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마술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마술이기 때문일까?”(「공동체」),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오늘이 컷, 되어도 오늘인 이유를 물어보는 건 실패에게 ”왜 충실하지 못했니?“ 물어보는 것과 같지 않나?”(「리스트 컷(wrist cut」), “자정은 죽음의 잉여이고, 자정은 무녀처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므로, 자정은 끊어진 입술을 반복하고, 반복은 불안을 반복하고, 불안은 뼈대 없는 추측의 자세 같고,”(「자정은 죽음의 잉여이고」), “그 수많은 영민한 여성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여자가 남자와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때는 죽음의 순간뿐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마구마구 피뢰침」 각주) ….”

시인의 시집에서 고작 몇 페이지밖에 건너지 못했는데 죽음은 점점 더 진하게 다가온다. 각주에서는 죽음이라는 시어가 더 많은 양을 차지한다. 이렇게 죽음이 많이 등장하는 시집은 처음이다. 죽음의 향연 같다. 고대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제대로 살기 위하여 죽음을 노래하는 분열증자가 된다. “생은 설탕으로 만든 도마이고 그 위에 칼로 만든 기다림이 놓여 있습니다. 밤의 범위를 좁혀 나가다 보면 아침이 되듯 생의 범위를 좁혀 나가다 보면 그 무엇이 있을 것”(「사전편찬위원회」)을 알기에 때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때로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때로는 의식의 문턱을 넘어 죽음의 순간에 무덤에서 쫓겨나다가도 무의식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수많은 영민한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을 묵도한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시인이 밝힌 바 있듯이 ‘말하기의 미숙함’을 가진 이로서는 언어를 탈영토화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죽음은 삶보다 구체적이고, 관계보다 현실적이다”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죽음은 삶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깨닫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시인은 자신부터 장례식을 치른다. 「내 장례식에」라는 시는 4부의 끝에 두 편, 5부의 시작엔 이 시집의 제목이 실린 「장례의 차례」라는 시가 놓였다. 첫 번째 「내 장례식에」라는 시엔 “죽음은 (몇 명이 왔는지에 의해서) 어떤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시행도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어 ‘쿵’ 하게 하지만 “신체 부위 중 어둠이 가장 많은 곳은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돼”라는 시행도 눈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감정을 조절하면서 행동하고 감정에 충실했다고 믿으며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이끌었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어둠을 자라나게 하는 것인 줄 모르고. “목울대처럼 검붉고 캄캄하다 하수구에서는 지렁이 같은 슬픔이 울컥울컥/ 잘못은 무성 생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빛을 주입시켜도 어둠이 계속 자라난다”(「사과」).

그러니 어찌해야 할까. 비인간이 될 수밖에. 비인간은 상징계에서 소수자이고 시인은 소수자가 되어 끊임없이 생성해 나가야 하므로. 시인이 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끊임없이 생성해 나가는 것이다. 생성은 새롭게 변화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무언가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제대로 소수자가 된다. 끊임없이 배치를 바꾸어가며. 그것이 괴물이 되는 것이든, 비인간 무엇이 되는 것이든 카프카가 했던 것처럼 글을 쓴다. “구멍을 파는 개처럼 글을 쓰는 것, 굴을 파는 쥐처럼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의 저발전低發展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 자신의 방언을, 자기 자신의 제3의 세계를, 자신의 사막을 찾아내는 것”이다.(중략)

무언가가 된다는 것의 생성, 즉 ‘되기’는 ‘백인 되기’, ‘남성 되기’와 같은 다수의 지배적 존재 되기가 아니다. 들뢰즈/가타리의 ‘되기’는 소수자 되기, 비일상적 존재 되기이다. ‘동물-되기’, ‘아이-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비인간-되기’ 같은 주변적이고 이질적인 존재 되기를 함으로써 다수의 시선이나 관점에 안주하거나 매몰되지 않는 대신, 유동적이고 창의적 사유 및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투명해지는 것”(「내 장례식」)이므로 버지니아 울프처럼 “우리의 지각작용 속에 배어있는 잉여적이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부조리함, 비열함 등 주어진 순간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킨다.”

이젠 ‘각주’라는 독특한 표현을 취하고 있는 시의 형식에 대해 말해보자. 시인의 시들엔 각주가 그림자처럼 뒷받침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 새로운 실험적 형식이다. 「마구마구 피뢰침」, 「리벤지 포르노」 시 같이 본문 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각주’의 역할은 무엇을 의미할까. 논문에도 이처럼 긴 각주를 만나긴 어렵다. 철저한 조사의 흔적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 마치 마술사의 마술을 보듯 각주를 읊게 된다. 평소 추리소설과 마술을 좋아한다는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묘하게 각주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면에서 독자를 홀리게 했다면 권박 시인의 의도는 성공했다.

“세월호 사태부터 미투 운동, 탄핵, 여자연예인 디지털 성폭력 사건 등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회 문제들이 시의 근원을 고민하게 했다. 사회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와 관련해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이었다. 그 결과를 시에 반영해 시인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장치가 바로 각주”라고 권박 시인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사회 문제가 쉬울 순 없잖아요”라며 중요한 것은 “피해 입은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고 무의식을 시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많은 무의식을 본문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수없는 말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래서 택한 방법이 각주라는 형식이다. “감정의 무게가 시체처럼 떠”오르고(「장례의 차례」),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말을 진실이라고 전적으로 믿게 되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감각적 매혹”(「리스트 컷」 각주)으로 다가가기 위해 각주를 펼칠 수밖에.

각주는 관계적인 면에서도 파격적이다. 독자를 흔든다.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시를 읽는 방법에서도 전략적인 것이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영민한 여성들의 얘기가 각주에 실려 있다. 그런 면에서 탁월한 정치적 전략이다. 소수적인 문학의 특징이다.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직접적 연결, “오직 다수적인 언어 그 자체의 소수적인 이용을 그것의 내부에서 수립할 가능성뿐”인 전략.

카프카는 요람에서 아이를 훔치라고, 팽팽한 줄 위에서 춤추라고 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 안에서 사는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언어조차 잘 모르거나, 자신이 사용해야만 하는 다수적인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고 개탄해 하면서 이는 비단 소수적인 문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민자이고, 유목민이고, 난민자이다. 수많은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삶을 사는 이가 시인이다. 시인이 언어의 습관적 사용에 머문다면 기존 질서를 반복할 뿐 차이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풍부하든 빈약하든 각각의 언어 활동은 언제나 입·혀·이빨의 탈영토화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소리의 분절에 몰두해야” 한다. 각주의 이용은 각각의 시가 가진 배열, 문법, 리듬을 파괴하거나 변형해 낯설게 하고 새롭게 하여 시를 탈영토화의 장으로 안내한다.

--- 「새로움, 그 발견에 예를 갖추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은 의미를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 외부 흐름을 배치하고 접속하는 ‘배치자’의 역할을 하는 장인이다. 시인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리듬, 이미지, 말, 침묵, 감각 등을 조율하여 새로운 접속을 만들어내어 욕망의 흐름을 분절하고 배치하여 세계에 새로운 감각적 접속을 발명한다. 시인은 고정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접속하고 발생시키는 창조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의 ‘외부성의 원리’에서 출발해 현재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그레이엄 하먼, 마르쿠스 가브리엘 같은 현대 사상가들의 사유를 통해 현대시를 어떻게 분석해 볼 수 있을까 고심한 흔적이다. 그 흔적들을 기록하도록 허락한 시들에 고마울 따름이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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