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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외)
범우사 200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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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비아총서

책소개

목차

1. 실종자
황색 사과
새로운 운명권
구월이의 진심
여자는 여자로 머무른다
무언으로 반항하는 아이
조용하고 검소한 미남 청년
아들이 필요한 한국
젊은 시절의 광채
어느 날 밤의 동화
기나긴 계절풍
수심이의 편지
겨울밤 눈 녹는 소리

2. 탈출기
동경, 사랑 그리고 화해
압록강
만주평야
남경행
상해
남쪽나라
눈병
인도양
지부티
담배
여름에서 봄으로
목적지

3.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중환의 시초
진리를 사랑하고 윤리에 순종하고
끝없는 사색의 장난
여행 후의 요양소

저자 소개 2

1899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명은 이의경이다. 해주보통학교 졸업했으며, 1919년 3ㆍ1 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갔다. 1920년 5월 26일 독일에 도착하여 뷔르츠부르크 대학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28년에는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곧 창작 활동에 열중한 그는 주로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과 이야기들을 독일의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고, 독일 문단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미륵은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1948년부터 뮌헨 대학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학을
1899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명은 이의경이다. 해주보통학교 졸업했으며, 1919년 3ㆍ1 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갔다. 1920년 5월 26일 독일에 도착하여 뷔르츠부르크 대학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28년에는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곧 창작 활동에 열중한 그는 주로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과 이야기들을 독일의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고, 독일 문단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미륵은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1948년부터 뮌헨 대학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덮친 병마로 1950년 3월 20일 독일 뮌헨 교외의 그래펠핑에서 타계하였다. 저서로 『무던이』,『이야기』,『실종자』,『탈출기』, 『압록강은 흐른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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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독·한 자연주의문학의 비교연구』『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독문학용어사전(공저)』『제외한인 작가연구(공저)』『한국의 독일문학수용 100년(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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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9쪽 | 422g | 153*224*20mm
ISBN13
9788908032149

책 속으로

우리들은 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고,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수암은 곧잘 '나'를 '미악'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가 'ㄹ'과 '으'를 발음할 수 없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는 습자지로 연도 곧잘 만들었다. 우리들은 집 안에 세운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나와 수암은 훈장에게 맞아가면서 공부했다. 연을 만들려고 습자지를 함부로 써 버렸기 때문에 훈장 앞에서 우리는 바지를 높이 걷어 올려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들었으므로 공부가 우리 둘보다 훨씬 앞섰다. 수암과 나는 꼬마 아이들과 함께 '삼강 오륜'과 짧게 간추려진 한국 역사책을 배웠다. 우리는 가끔 종각이 있는 놀이터에 가 놀았다. 그 곳에서 다른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구월에게 이끌려, 연극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약 삼십 명의 탈을 쓴 광대들이 음악에 맞추어 온 거리를 통해 북문 앞 노천 극장까지 행진하는 그 무리들 속에 휩쓸렸다. 무수한 사람들이 성벽 위의 문루며, 무대를 둘러싼 높은 언덕이며, 그늘진 큰 나무 아래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설날에 우리는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놀음을 즐겼다. 그러나 항상 놀음에 진 수암은 고집 불통이었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불공을 드려 준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아주 먼 지방에서 온 할머니였다. 그는 자그마한 사내아이었던 나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 내 어머니도 그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그가 비록 나를 낳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내 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나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p.62

나는 어렸을 때 한번 어머니 몰래 산에 갔던 일이 있다. 학교 친구들하고 소풍 갔다가 그날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집과 우리가 갔던 산 중간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동경과 근심 그리고 후회로 가득 차서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웠다.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어머니 곁을 떠났다. 우리 어머니는 고집이 너무 세었고 자식들이 유복하기만을 항상 바라고 계셨다. 그리고 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유약하다느니, 너무 다정다감하고 너무나 불안정해서 누가 뭐라고 하면 얼른 유혹될 형이라고까지 하였다. 나는 본래 사람을 성격에 따라서 분류하는 것을 싫어했다. 다시 말해서 경쟁의 현실 세계를 경멸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잊고 다 버릴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즉 나의 책들, 내 방, 집, 고향, 친지, 벗, 그리고 친척들을 용감하게 저버릴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부담스러웠고, 나를 억누르고 굴복시키는 무거운 짐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떠나버렸고, 또한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 하나 내가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동양인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대한 책임인 '자식의 의무'였다.

많은 부모들 중에는 좋지 못한 분들도 있어서 자식들이 어른들에게 복종하지 않았으리라는 나의 생각과 내가 어머니에게 거역하는 것과는 사실상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옛날에 배운 것처럼 천벌에 대해서 나는 잠시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아니, 나에게는 분명히 천당이나 영혼이 없었고 사람이 죽으면 그저 그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내가 마치 다 해진 옷을 벗어버리는 것 같은 미신이었다. 터줏자리와 신전, 그리고 장례 예식 등은 내가 보기에는 그저 웃음거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나 자신에게는 그저 천하게만 여겨졌다.

---pp.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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