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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과 보물
윤준호
난다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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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증보판 서문 20세기 브랜드를 21세기 청년들에 바칩니다
서문 그것들이 말했다

1
ABC포마드
가정표양말
갓표바늘
고바우
공병우 타자기
금성라디오

2
나훈아
낙타표 문화연필
눈표냉장고
닭표간장
당원
대구 사과
동춘서커스단
락희치약

3
명랑
문교 흑판
박가분
반달표 스타킹
범표 운동화
베스타나볼
비둘기호
뿌리깊은 나무
4
산토닌
삼강하드 혹은 쮸쮸바
삼중당문고
삼천리호 자전거
삼표연탄
삼학소주

5
선데이 서울
소년중앙
소월 시집
수인선 협궤열차
시민아파트
신선로표 미원

6
아 대한민국
악수표 밀가루
엑슬란 내의
역전다방
영자의 전성시대
오케레코드
온양온천장

7
왔다껌
원기소
원조와 짝퉁
월남치마
유엔성냥
이명래고약
이뿐이 비누

8
전원일기
제일고보
종로서적
주택은행
천연당사진관
최인호

9
파고다극장
포니
풍년라면
한강 모래
화랑담배
화신백화점

저자 소개 1

윤제림

충북 제천이 낳고 인천이 키워주었다. 동국대 국문과에서 말과 글을 배웠으며 같은 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했다. 1987년 소년중앙문학상에 동시가,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삼천리호 자전거』,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동시집으로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산문집으로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 『카피는 거시기다』, 『고물과 보물』 등이 있다.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 권태응문학상,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
충북 제천이 낳고 인천이 키워주었다. 동국대 국문과에서 말과 글을 배웠으며 같은 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했다. 1987년 소년중앙문학상에 동시가,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삼천리호 자전거』,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동시집으로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산문집으로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 『카피는 거시기다』, 『고물과 보물』 등이 있다.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 권태응문학상,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 서울예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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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652g | 150*210*22mm
ISBN13
9788954634021

책 속으로

비유컨대 포니는 우리의 밭에서 우리 씨로 길러낸 첫번째 과실이었습니다. 당연히 달고 맛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줄을 서서 사 먹었습니다. 첫해에 국내 수요의 55퍼센트를 차지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1978년에는 65.7퍼센트까지 점유율을 높이게 되지요. 성능과 스타일이 나무랄 데가 없는데다 우리 고유의 모델이란 프리미엄으로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자동차 수출의 신호탄(1976년, 에콰도르)을 쏘아올린 차도 포니였습니다. 그러니 그 조랑말이 어찌 끔찍이도 예쁘고 귀여운 ‘애마愛馬’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포니」중에서

빙과 시장을 흔드는 결정적 사건들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줄을 이었습니다. 그 신호탄이 저 유명한 ‘부라보콘’의 탄생. 아이스크림이 그 딱딱한 ‘께끼나 하드’ 시장을 녹이기 시작하지요. 입안에 넣으면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과 열심히 깨물거나 빨아야 하는 것의 대결.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의 싸움이었습니다. 좋은 맛을 보면 더 좋은 맛을 찾게 되는 법.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 땅의 아이들도 슬슬 ‘골라 먹는’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됩니다. ‘부라보콘’을 먹을까, ‘누가바’(1974)나 ‘바밤바’(1976)를 먹을까? 아니면 ‘아이차’(1975)? ‘쮸쮸바’(1976)? 제가 지금 그 시절의 꼬맹이라면 무얼 먹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상점의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한참을 행복한 고민에 빠질 테지요. 그것은 마치 그 시절 빙과류의 대표 브랜드 하나를 뽑아보라는 주문처럼 쉽지 않은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쮸쮸바’를 먹겠습니다. 연필 모양으로 생긴 ‘펜슬형’ 빙과의 대명사, 쮸쮸바. 오늘날까지도 통하는 이름이지요. 같은 종류로 나이도 한 살 더 먹은 ‘아이차바’가 있지만 ‘아이차’는 ‘쮸쮸’를 이기기 어렵지요. 선택의 저울이 대번에 기웁니다. 이름의 힘입니다. ---「삼강하드 혹은 쮸쮸바」중에서

‘종로서적’. 그것은 제가 속해 있는 세대에게는 단순한 책방 이름의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KFC거나 롯데리아입니다. 그것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이름입니다. 그것은 302호 강의실이거나 정독도서관입니다. 그것은 비디오방이거나 멀티플렉스입니다. 그것은 PC방이거나 게임방입니다. 그것은 인터넷이거나 아마존입니다. 그것은 백과사전이거나 선생님입니다. 아니, 종로서적은 그 모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찍힌 종이로 표지를 곱게 싼 책을 들고 다니면 저절로 ‘이 나라 지성인의 1퍼센트’쯤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 풍경〉이 그려진 그 포장지 말입니다. 생전 소설책 한 권 사 읽지 않는 녀석일수록 기를 쓰고 ‘종로서적에서 보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촌놈들일수록 더했습니다. 경인선 통학생이었던 제 경우만 하여도 등굣길 전철 안에서 동창생이라도 만난 날이면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으란 듯이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야, 다섯시쯤 종로서적으로 나와.” ---「종로서적」중에서

그것은 ‘20세기의 소금’입니다. 아니, 어쩌면 ‘인공의 눈과 얼음’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연일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 이름은 ‘눈표’입니다. ‘금성 눈표냉장고’. 1965년생이니 국산 냉장고의 나이도 이제 오십이 넘어갑니다. 냉장고의 등장은 여름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여름철 얼음 구경’은 설탕 바른 고드름처럼 싱겁기 짝이 없는 ‘아스께끼(아이스케이크)’ 아니면 새끼줄에 매달려 수박 한 통을 따라온 얼음 한덩어리가 고작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눈표냉장고’는 부엌과 밥상의 개벽을 불러왔습니다. 시들고 죽어가는 것들의 목숨을 다만 며칠이라도 연장시켜주던 우물 냉장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절이고 삭히고…… 간장 된장 고추장의 힘을 빌리고…… 석 달 열흘을 널어 말리고. 시간의 ‘자연법’에나 의지하던 식생활의봉건주의가 끝났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눈표냉장고」중에서

출판사 리뷰

20세기 브랜드를 21세기 청년들에 바칩니다!
윤준호 에세이 『고물과 보물』


시인 이름 윤제림. 카피라이터 이름 윤준호. 극히 닮은 듯 각기 다른 듯 이 두 삶의 패턴을 평생에 걸쳐 묵묵히 양손으로 그려내고 있는 그가 제 직업과 제 작업의 장점을 극한대로 살려 몹시도 흥미로운 책 한 권을 펴냈다. 원고의 절반 이상을 증보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책의 제목은 『고물과 보물』. ‘20세기 브랜드에 관한 명상’이라는 부제 아래 광복 70년을 맞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가지 우리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특유의 익살맞으면서도 따뜻한 문체로, 더불어 투명하면서도 날카로운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빨리, 너무 높이, 너무 멀리 와’ 있는 우리나라 우리의 삶. 엄청난 속성의 성취감에 취해 ‘전진’은 하되 ‘후진’은 못하면서 우리가 얻은 것이 있다면 물질적 풍요일지 모르나 잃은 것이 있다면 그 풍요 속의 빈곤, 도통 ‘행복’이란 감정을 느낄 줄 모르게 된 ‘무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 윤준호가 21세기에 와 20세기에 우리들 지척에 놓여 있던 브랜드들을 하나하나 불러낸 데는 그것이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날일 테고 나아가 내 어린 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나아가려면 ‘어제’의 나를 반추해보는 일이 의무라는 것!

“자신의 식사가 얼마나 별난 것이었는지 사진까지 찍어가며 자랑하는 친구에게 그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느냐 물으면 쉽게 답을 못합니다. 전화기가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서 동서남북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며 신기해하던 선배가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눈뜨면 문자메시지를 찍어 날리고 쉼 없이 메일을 주고받는 젊은이가 외롭다고 눈물짓습니다.”
―「증보판 서문」에서

너무나 흔해서, 너무나 빤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놓인 채 만만하게 이름이 불릴 것이라 생각했던 브랜드들, 그러나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브랜드들. 한때 우리가 열광했던 브랜드의 열기는 언제부터 누가 식혀놓은 걸까. 아 그것…… 하고 손을 뻗으면 닿았던 물건들,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20세기의 브랜드들, 결국 고물이 보물이 되는 데는 우리들 정신의 즉흥성이, 우리들 심신의 가벼움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새것을 좋아할 수는 있으나 해묵은 것, 때 전 것들이 그렇게 너절하고 고약한 것만은 아님을 우리들은 왜 모르고 컸단 말인가.

우리나라 관허1호 화장품으로, 삼십여 명의 종업원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는 박가분. ‘경성부 연지동 270번지’에 살던 한 여인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그 언저리에 아들의 호를 딴 연강홀이 들어서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기업이 재계 순위 10위쯤을 차지할 만큼 커다란 회사가 되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박가분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유통시키던 사람들의 이름이 함께 떠오르는 까닭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방물장수입니다. 소위 보부상褓負商들의 한 무리로 보상褓商, 곧 봇짐장수를 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장터를 중심으로 장사를 다녔습니다만, 여자 행상의 경우는 집집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기도 했지요.
―「박가분」에서

연탄은 희생과 겸양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렇게 소중한 운명을 타고나서도, 연탄은 그 누구한테도 젠체하거나 비싸게 굴지 않습니다. 거지 아이의 동전 몇 개에도 제 몸을 내줍니다. 1970년의 어느 연탄 광고에는 이런 카피가 보입니다. “해마다 서울 백만 가정의 겨울을 지킵니다.” 아, 일 년이면 몇 장이나 되는 연탄이 스스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한 것일까요. 모든 연탄 광고가 한결같이 ‘화력 좋고 오래 탄다’는 것을 강조할 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탄은 그 뜨거운 불속에서 얼마나 참고 견뎠을까요.
―「삼표연탄」에서

‘영자의 전성시대’. 조선작의 소설이면서 김호선의 영화인 그 제목은 어쩌면 그때 그곳에서 오늘의 여기까지 이 땅의 여성들이 타고 온 버스가 경유해온 날들의 이름일 것입니다. 영자는 승객의 이름이면서 차장의 이름입니다. 아니, 길의 이름이면서 버스의 이름입니다. 식모살이하다가 순결을 잃고, 공장에서는 희망을 잃고, 버스 차장을 하다가는 팔을 잃고…… 더 잃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되었을 때 사랑을 얻고 어머니가 되는 이름, 영자.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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