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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기 9
2 소년기 97 3 청년기 219 4 중년기 339 5 노년기 375 작품해설 어떻게 인류는 괴물이 되었는가- 안세진(문학평론가) 411 작가의 말 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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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의 특징 첫 번째, 다른 종을 괴롭힌다. 두 번째, 같은 종도 괴롭힌다. 세 번째, 세 번째는 음…… 이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세상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다. 아니 동물이라는 거다.
--- p.11 말하자면 나는 그들에게 신인류였던 것이다. 나의 발견에 전 세계가 뒤집혔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일 먼저 하나의 일에 열광했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누군지 나의 근원에 대해 공부하고 탐구하는 일이었냐고? 천만에. 여기서 호모 사피엔스의 또 다른 ‘종특’이 나온다. 전 세계엔 대작명(大作名)의 시대가 펼쳐졌다. 즉 ‘호모 사피엔스’의 ‘사피엔스’처럼, 그들은 ‘호모’라는 학명 뒤에 따라올 나의 이름을 짓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나를 뭐라고 부를지 정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말이다. 마치 이름을 지어야만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처럼. --- p. 17 사랑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원래부터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씨앗을 뚫고 툭, 발아하는 것일까. 아니며 애초에 씨앗조차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마법처럼 뿅, 생겨나는 것일까. 툭일까 뿅일까. 툭이든 뿅이든 그 도화선은 무엇일까.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한 남자가 공중에서 떨어진 아기를 암컷 고릴라에게 건네는 일 같은 것. 그리고 그날 밤 그 일을 기록하며 ‘사랑’ 이라는 단어를 일기장에 꾹꾹 눌러쓰는 일 같은 것. 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 p. 161 나는 종종 내가 엄청나게 성공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단 한 번의 성취로 인생이 완전히 역전되는 것이다. 나는 박수갈채를 받는다. 인간들 가장 위로 올라가 군림한다.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없다. 모든 지긋지긋한 악연의 사슬을 끊는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 자유를 가지고서 뭘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 p. 222 하지만 요양 병원에서 본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적이거나 경제적이지 않았고 유희하지도 않았다. ‘사피엔스’라는 뜻처럼 지혜롭지도 않았다. 그들은 직립조차 못 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설 수조차 없었다. --- p. 301 이 쇼의 이름은 ‘호모 쇼(Homo Show)’. 하지만 숨겨진 진짜 이름은, ‘프릭 쇼(Freak Show)’. 기형 쇼. 기형이나 장애 있는 인간들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쇼. 인간들은 옛날부터 그 쇼를 즐겨 왔다. 이만한 구경거리가 또 없다. 인간들이 웃는다. 곰팡이 같은 웃음이다. (……) 나는 그들의 웃음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하나하나 구경한다. 그렇다. 진짜 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 무대 아래에서 벌어진다. 쇼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다. 당신들만 그걸 모른다. 당신들이 프릭이다. --- p. 344 그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나를 돌보고 보살핀다. 내 입에 음식을 넣어 주기도 하고 잠을 잘 때면 춥지 않게 꼭 껴안아 준다. 그렇게 늙고 병이 든 나를, 늙고 병이 든 그가 살린다. --- p. 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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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류가 보여 주는 인간의 조건
에티오피아 밀림의 한 동굴에서 조난당한 사육사에게 처음 발견된 ‘인류 2호’는, 경기도 외곽의 허름한 동물원인 정글북파크에서 인간과의 동거를 시작한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인류 2호’의 생애 주기를 따라가는 이 소설은, 나이듦에 따라 점차 좁아지는 공간을 통해 착취에 기반한 인류의 삶까지 함께 조망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효용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만 인정받고, 인정받아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류 2호’ 역시 인간의 문법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인류 2호’의 노력은 모두 실패한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를 구원하지도 못했고, 엄마와도 같은 정숙 씨의 치매를 낫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패의 끝에서 그는 처음의 동굴로 되돌아가고 그곳에서 조건도, 대가도 없는 돌봄을 받는다. 그것은 생명의 ‘가치’란 증명이나 인정 없이도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 준다. 모든 것이 자본과 효율로 치환되는 시대에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인류의 존엄을, 우리는 ‘인류 2호’와 함께 들어간 원시의 동굴에서 확인하게 된다. · 삶에 서툰 사람들의 돌봄과 사랑 『인류 2호』는 세상에 없는 신인류의 이야기인 동시에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기의 ‘인류 2호’는 말을 할 때 노래를 부른다. 그의 말은 인간들에게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인류 2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오랜 기간 중증 치매를 앓고 있어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 정숙 씨, 그녀에게 일생을 바친 말 없는 사육사, 말을 더듬는 언어학자 로빈,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 주는 말만 내뱉는 인류학자 제인, 말은 많지만 제대로 된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가 조작가. ‘인류 2호’의 친구들은 좀처럼 ‘정상적’인 발화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다’고 지탄받는 자신만의 언어를 버리지 않고, 그 결점과 함께 변화해 나간다. 그들이 변화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최재영은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으로 ‘이상한’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또 안쓰럽게 그려 낸다. 『인류 2호』는 다양한 인물들을 경유하여 우리에게 자기 자신의 서툴고 이상한 면을 조금 더 사랑해 주기를, 그리하여 타인의 이상함도 돌보아 주기를 넌지시 권한다. · 작가의 말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게 미덕인 것 같은 요즘이다. 이에 나는 소심하게 반기를 든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더 필요로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소설을 읽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이다. 또 그 소설 중에서도 이왕이면 『인류 2호』를 읽으면 좋다고 말이다. 문득 나는 말을 좀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 말고 다른 작가가 쓴 ‘작가의 말’ 속의 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며 끝맺어 본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인간이라는 종의 가장 긴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흐흐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