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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언어, 문학
동녘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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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책소개

목차

푸코 작품 약어 6
일러두기 8
서문_쥐디트 르벨 10

1. 광기와 문명 33
2. 광기와 문명-1967년 4월 튀니스의 클럽 타하르 하다드에서의 강연 55
3. 광기와 사회 84
4. 문학과 광기-[바로크 연극과 아르토 연극에서의 광기] 98
5. 문학과 광기-[레몽 루셀 작품에서의 광기] 122
6. 현상학적 경험- 바타유에게 있어서의 경험 138
7. 문학 분석의 새로운 방법들 144
8. 문학 분석 166
9. 구조주의와 문학 분석-1967년 2월 4일 튀니스의 클럽 타하르 하다드에서의 강연
186
10. [언어 외적인 것과 문학] 243
11. 문학 분석과 구조주의 267
12. 『부바르와 페퀴셰』-두 가지 유혹 295
13. 『절대의 탐구』 323

옮긴이 해제 349
찾아보기 369

저자 소개 3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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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Paul Foucault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출생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51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장 이폴리트, 루이 알튀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조르주 캉길렘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55년부터 스웨덴 웁살라 대학,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1년에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 클레르몽페랑 대학과 1968년 뱅센 대학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사상사 교수로 재직했고, 1984년 파리에서 타계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정치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출생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51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장 이폴리트, 루이 알튀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조르주 캉길렘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55년부터 스웨덴 웁살라 대학,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1년에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 클레르몽페랑 대학과 1968년 뱅센 대학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사상사 교수로 재직했고, 1984년 파리에서 타계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문학 이론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권력/지식’과 ‘주체화’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탐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간은 언제나 중요한 사유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그가 1960년대 중반 창안한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도시공학과 건축학, 공간 연구 등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지은 책으로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1?앎의 의지』(1976), 『성의 역사 2?쾌락의 활용』(1984), 『성의 역사 3?자기 배려』(198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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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미셸 푸코에 있어서 역사·담론·문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성과 철학』, 『들뢰즈 사상의 분화』가 있고, 옮긴 책으로 『이성의 역사』, 『주체의 해석학』,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공역), 『나, 피에르 리비에르』, 『예술과 다중』, 『미셸 푸코의 휴머니즘』, 『안전, 영토, 인구』(공역)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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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셸 푸코의 철학적 삶으로서의 파레시아>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에서 푸코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집필 중이다. 미셸 푸코의 《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담론과 진실》, 《정신의학의 권력》,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마네의 회화》의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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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64g | 135*210*23mm
ISBN13
9788972971993

책 속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본질적으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병리적 사실로 간주되지 않았고, 소위 원시적인 문화들에서는 오늘날에도 의학적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종교 현상 등으로 해석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을 전복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광기는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현상으로, 몇몇 특정한 문화(부분적으로는 그리스-로마 문명, 보다 전면적으로는 이슬람 문명, 그보다 더 전면적으로는 [우리 문명])만이 광기에 의학적 위상을 부여했습니다. 광기의 의료화는, 광기라는 현상을 해석하는 가능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 p.38

광대라는 인물은 오늘날 자취를 감췄습니다. (…) 그렇지만 진실하면서도 거짓인 말, 진지하진 않아도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말의 양의적 역할, 그리고 힘을 갖지 않지만 유포되는 모든 진실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폭로하는 말의 역설(…) 이런 주제는 아시다시피 우리 문명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결국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진실을 말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기 위한 것도 아닌, 일종의 공허하고 허황된 말입니다. 문학가, 소설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자는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사물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뭔가를 말하고 공허 속에서 말합니다. 문학의 말은 우리 세계에 있어서 방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의 화제, 우리 과학의 화제, 우리 철학의 화제가 갖는 둔중함이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폭로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무언가는 사물 아래 잠재하는 일종의 진실 혹은 [사물-옮긴이] 저편에 있는 진실입니다.
--- p.70

17세기 유럽 사회는 광인과 광인이 아닌 사람을 분리한 게 아니라, 실제로는 노동하는자로부터 노동할 수 없는 자를, 즉 경제적 규범에 속하지 않고 또 그것에 따르지 않는 자를 분리해낸 것입니다. 불구자, 방탕자, 노인 등이 포함된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광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분할이었고, 따라서 이것은 이성과 비이성의 분할이 아니라 노동과 비노동, 노동과 무위의 분할이었습니다.
--- p.79~80

사실 아르토가 연극에서 찾으려 한 것은 공허를 메울 무언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공허의 극한까지 답파해, 그 공허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야생 상태의 확언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잔혹연극에 필수적인 첫 번째 기술은 말을 목소리로, 목소리를 신체로, 신체를 제스처와 근육으로, 심지어는 골격으로 복구시키는 것입니다. 착각을 일으키는 언어의 힘을 가장 육체적인 것, 절규에 가까운 것으로 전면적이고 체계적이며 폭력적으로 낙하시키는 것입니다. 말을 단어의 마법에서 일종의 헐떡임과 죽음의 무도로 되돌려놓는 것입니다.
--- p.112

아르토에게 환각의 연극은 연극 내의 한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연극의 열림, 파열, 심연이었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파롤 내부에서 문학이 무엇인지를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을 통해 문학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적나라한 존재로, 문학보다 훨씬 더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로 되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문학의 지고한 분신인 광기의 단순한 비명으로 되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 p.120

그런데 20세기에, 아마도 말라르메 이후, 특히 초현실주의자들과 그 동시대의 저자들 이후 문학이 발견하는 것은 문학이 언어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학은 이제 더 이상 다소 변형된 언어로 다소 새로운 사물들을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문학의 역할은 이제 언어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언어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드러내며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어학자들의 용어를 사용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현대문학은 이미 구성되어 있는 랑그에 속하는 파롤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만들어낸 랑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것에 물음을 던지며 에워싸는 파롤이다. 자기 자신의 랑그를 내포하는 파롤이다.
--- p.134

현재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는 양상의 자율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양상은 대상, 사물, 기호, 표식의 경제적 생산 양상이 아니라, 그 표식과 기호가 표식으로서, 기호로서 서로 간에 견고한 것이 되는 양상인 것입니다. 핵심은 기록으로서의 기록을 결정하는 체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으로서의 기록에 관한 학문을, 어원학을 이용해-제가 어원학에는 그리 능하지 않지만-그리스어 동사 데익누미deiknumi로부터 파생된 데익솔로지deixologie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데익솔로지는 기록으로서의 기록에 관한 일반 학문일 것이고, 결국 그것이 바로 구조주의가 현재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해 구조주의는 기록으로서의 기록의 내적 제약에 대한 분석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구조주의는 온갖 것에 참견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p.191

이제 문학 분석은 과거에 자신을 위치시켰던 글쓰기-소비의 축에서 벗어나 더 이상 글쓰기와 독서의 관계가 아니라, 글쓰기와 글쓰기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즉 문학 분석은 이제 본질적으로 작품이라 불리는 주어진 언어로부터 새로운 언어를 구성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언어는 일차적 언어로부터 얻어졌으면서도, 일차적 언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언어입니다. 따라서 이제 비평의 문제는 19세기 비평의 문제와 다릅니다. 일반적 독자와 특히 이상적 독자가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고 평가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비평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작품의 언어에 어떤 변형을 가해야만, 그렇게 변형된 언어가 그 작품에 대해 말하고 그에 관한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는가.
--- p.196

마지막으로, 제가 이렇게 가능한 작업의 방향들을 간략히 제시한 것은, 구조주의가 특정한 교조적 입장이나 이미 확정된 특정 방법과 결부되어 있기는커녕 대단히 무한한 방식으로 열려 있는 탐구의 영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류가 자신의 주변에 축적해놓은 자료의 집적체-문학도 그 일부인데-를 우리가 전부 탐색해내기 전까지는, 우리가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 기록으로서의 기록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구조주의는-단지 기록에 관한 학문인 것이 맞다면- 계속 생명력을 가질 것입니다. 아무튼 어떤 경우라도 구조주의를 어떤 철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특정 방법론과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 p.207

현대의 비평이 왜 블랑쇼의 고독한 말에 의해 올바른 길로 인도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줄곧 언어 체계 속의 언어 외적인 것의 현존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이 현존의 부재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자신이 작품의 중심부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작품과의 친밀성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작품의 불가분한 바깥으로서 자신을 내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바깥이, 작품이 끊임없이 조장해내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비롯되는 저 바깥을 향해 그 무엇보다 더 잘 열려 있을 수 있었다.
--- p.250

현실의 언어에서는 말하는 주체의 위치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바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은 의문시될 수 있지만, 그는 그저 말하는 자이고 그것으로 끝이다. 반면에 (…) 광기는 말하는 주체가 특이한 위치를 점유하는 담론이다. 그 안에서 그는 전적으로 현존한다. 왜냐하면 그의 광기, 즉 광인으로서의 그의 존재가 그가 말하는 바 내에서 완전히 정의되고 실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이 주체는 그 담론 내에 부재한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언표를 단언하는 말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부재의 자리에 공백이 군림하며, 거기서 우리는 “광인”을 확인하게 된다. 이 “광인”은 우리가 정확히 통제하기 어려운 모호성으로 인해 담론의 특성이자, 그 담론을 발화하는 사람의 특이성이자, 그 사람의 내부에 자리 잡은 언어 외적인 것이 된다.
--- p.263~264

그러나 문학은 전적으로 자신의 내부를 향한 언어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합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해 펼쳐지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걸어가는 발걸음 아래서,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경계 위에서, 자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언어 외적인 것을 생성해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문학의 본질은 발레리보다는 아르토의 경험 쪽에서, 야콥슨의 분석보다는 오히려 블랑쇼의 비평 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문학을 자기 자신 위에 겹쳐져 이중화된 언어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어떤 “바깥”에 의해 가공된 언어, 언어 바깥에 있지만 언어 자체로부터 온 것이나 다름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언어로 간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이란, 언제나 자기 고유의 외부 경계 쪽으로 이주해가는 중에 있는 언어일 것입니다. 문학을 존재하게 하는 이 공백, 이 외부를, 비평이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 p.277

발자크 소설의 힘은, 이 절대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과학 자체의 은유로 삼는다는 데 있습니다. 왜 두 성의 소멸 지점을 탐구하려는 걸까요? 그것이 지식의 가장 높은 차원의 형태라서? 그렇지 않다면, 서구에서 지식이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지식은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으며, 이 알고자 하는 욕망은 관계가 부재하는 욕망에 대한 욕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지식을 욕망한다는 것은,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욕망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 지식은 항상 성 현상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배제하려 했습니다.

--- p.331~332

출판사 리뷰

사회를 구성하는 항상적 기능, 광기

〈광기와 문명〉에서 푸코는 광기를 개인의 병리로 이해하지 않는다. 광기는 모든 사회에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기능이며, 사회는 광기와 이성을 분할함으로써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를 구성한다. 이성은 광기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이성으로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기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이 스스로를 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특정한 위치로 조직되는 항이다.〈광기와 문명-1967년 4월 튀니스의 클럽 타하르 하다드에서의 강연〉에서 푸코는 광인으로 구분되는 지속적인 특징들을 제시하며, 광인의 분할이 원시 사회부터 현대 사회까지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일상적 관습 속에서 이루어지던 분할이 17세기를 기점으로 의학적 조치인 감금 등을 통해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식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광기와 사회〉에서 푸코는 법, 도덕, 노동, 의학의 규범 속에서 광기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위치 지어지는지를 분석한다. 광기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사회가 광기와 비광기를 구분하면서 부여한 자리라는 것, 이러한 자리는 권력과 규범의 작동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그는 광기를 사회 질서의 외부적 요소로서가 아니라, 그 질서를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서 고찰한다.

언어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광기

〈문학과 광기-바로크 연극과 아르토 연극에서의 광기〉에서 푸코는 광기를 문학의 주제가 아니라, 언어의 질서를 흔드는 힘으로 파악한다. 바로크 연극에서 광기는 재현 가능한 대상이고 따라서 관객에게 보여지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아르토 연극에 이르면 광기는 더 이상 재현되지 않고 몸짓, 외침, 리듬으로 전환된다. 즉 이때 광기는 인물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언어가 자신의 규칙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된다. 따라서 푸코에게 문학은 광기를 묘사하는 형식이 아니라, 언어가 스스로의 한계와 충돌하는 하나의 장소인 것이다.〈문학과 광기-레몽 루셀 작품에서의 광기〉에서 푸코는 루셀의 작품이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언어 내부의 형식적 규칙에 따라 거의 자동적으로 생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루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결합되느냐이다. 이러한 글쓰기에서 주체는 전면에 서지 않으며, 텍스트는 주체의 표현이 아니라 언어가 스스로를 조직하면서 산출하는 효과로 나타난다. 푸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루셀의 글쓰기와 광기가 맺는 구조적 친연성을 파악한다. 문학에서 광기는 인물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언어가 자기 규칙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형성되는 위치이며, 이로써 문학은 현실을 재현하는 장이 아니라 언어가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실험하는 장으로 재정의된다.〈현상학적 경험-바타유에게 있어서의 경험〉에서 푸코는 전통적인 현상학에서의 경험과 바타유가 말하는 ‘한계체험’을 대비한다. 현상학적 경험은 주체가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바타유의 한계체험은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언어와 사유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경계에 접근하는 운동이다. 푸코는 이러한 한계체험을 통해 광기, 언어, 문학이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동일한 경계 위에서 함께 문제화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기록으로, 의미에서 구조로

〈문학 분석의 새로운 방법들〉에서 푸코는 전통적 문학 비평이 작품의 생산 과정, 작가의 의도, 표현의 의미에 집중해왔음을 비판한다. 이러한 비평은 텍스트를 하나의 결과물로 보고 그 배후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 머문다. 반면 새로운 방법론은 텍스트를 하나의 ‘기록(문서)’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이 어떤 규칙과 구조 속에서 배열되는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누가 썼는가가 아니라,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성립하는가이다.〈문학 분석〉에서 푸코는 작품을 의미나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담론적 조건 속에서 언표들이 결집되어 나타난 효과로 파악한다. 따라서 분석의 대상은 작품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성립할 수 있었던 조건과 규칙이다. 문학 분석은 해석이 아니라, 작품을 가능하게 한 담론적 배치를 기술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이후 『지식의 고고학』으로 전개될 담론 분석이 문학 영역에서 먼저 실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구조주의와 문학 분석-1967년 2월 4일 튀니스 강연〉에서 푸코는 전통적 문학 비평이 작품을 기원, 원인, 생산 조건으로 설명해온 방식을 비판한다. 그러한 설명은 작품을 저자의 의도나 사회적 맥락으로 환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푸코는 구조주의를 목적이 아니라 전략으로 사용해 주체·역사·의미를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텍스트의 내적 작동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은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며, 분석은 생산의 계보가 아니라 배열과 작동의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언어 외적인 것과 문학〉에서 푸코는 문학을 언어 체계 내부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를 자율적 체계로 분석했지만, 그 결과 문학이 언어의 특수한 사용 사례로 축소되는 문제가 생겼다. 푸코는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언어 외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언어 바깥의 현실이 아니라, 언어가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자 언어 규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차원이다. 문학은 언어 규칙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 규칙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밀어붙이며 언어의 성립 조건 자체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문학은 언어 내부가 아니라, 언어와 그 조건이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담론이다.〈문학 분석과 구조주의〉에서 푸코는 구조주의와 문학 분석의 관계를 정리한다. 구조주의는 작품을 저자의 표현이 아니라 기호들의 관계와 배치로 보게 함으로써 주체 중심 비평을 해체했다. 그러나 구조가 자율적 체계로 고정될 경우, 문학은 다시 폐쇄된 형식으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푸코의 관심은 구조 자체가 아니라 구조가 작동하는 사건성에 있다. 결국 문학 분석은 구조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구조의 발생 조건과 작동 방식을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바르와 페퀴셰-두 개의 욕망〉과 〈절대의 탐구〉에서 푸코는 플로베르와 발자크를 통해 근대 지식의 욕망을 분석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고 체계화하려는 이성의 욕망은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광기와 닮아간다. 여기서 광기와 이성은 대립 항이 아니라, 동일한 탐구 충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결과로 나타난다. 푸코는 이를 통해 문학이 근대 이성의 구조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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