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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나무는 살아있다, 당신이 살아있듯
길가 사는 나무 아름다움을 주고 멸시를 받다 - 화동 북촌로5길 | 벚나무 앞선다고 멀리 가랴 - 삼청동 북촌로5길 | 칡·오동나무 이제야 보이나요 - 소격동 삼청로 | 비술나무 흰 나무, 검은 나무, 잿빛 꽃 - 재동 북촌로 | 백송·독일가문비나무 붉은 집의 푸른 외투 - 원서동 율곡로 | 담쟁이 느티나무는 다 기억한다 - 신문로2가 새문안로 | 느티나무 개나리 진 날, 봄도 져버렸다 - 송월동 송월로 | 개나리 얼룩덜룩하다고 떨쳐버릴 텐가 - 용산동 이태원로 | 양버즘나무 봉황은 왜 벽오동에 깃드는가 - 동숭동 동숭길 | 벽오동 공원 사는 나무 나 하늘로 돌아갈래 - 낙산공원 | 가죽나무 | 소리 없는 종소리 - 삼청공원 | 때죽나무 | 높은 넋을 기려 - 선유도공원·서대문독립공원 | 양버들 제가 뭘 잘못했죠 - 안산공원 | 아까시나무 망토를 메고 롤러를 타자 - 여의도공원 | 피나무 어떤 이름이 더 어울려요 - 마로니에공원 | 가시칠엽수 세월이 다 해명한다 - 삼청공원 | 귀룽나무 호숫가의 하늘가 나무 - 호수공원 | 구상나무 이제 그만 떠나련다 - 남산공원 | 소나무 궁궐 사는 나무 봄은 성대하게, 가을은 찬란하게 - 경복궁 | 꽃개오동·화살나무 낭창거리는 앞뜰 - 경복궁 | 말채나무 나무는 봄마다 회춘한다 - 창덕궁 | 회화나무 그리움, 나날이 익어감 - 창덕궁 | 감나무 으쓱한 어깨, 들썩한 궁둥이 - 창경궁 | 느릅나무 우리 결혼했어요 - 창경궁 | 혼인목 가까이 오지 마시오 - 덕수궁 | 주엽나무 나도 엮이기 싫었다고요 - 덕수궁 | 등나무 선홍빛 기억, 꽃으로 피어나고 - 동묘 | 배롱나무 신들의 정원, 민초의 나무 - 종묘 | 물박달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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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인간보다 위대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무너져가는 인간성이 다소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흐릿해지는 끈기에 풀을 보탰다. 더불어 내가 떠돌던 서울은 어찌 움트고 성장했는지, 지금은 어떠한 도시인지, 이 부박한 땅에 왜 그 나무의 씨앗이 도착했는지, 어떤 파란을 이기고 저만해졌는지 살피면서 서울과 서울 사는 나무에 대한 정情이 깊어졌다. 이 책이 우리가 밟고 선 땅, 그 땅에 뿌리내린 우리 곁의 큰 생명, 나무를 올려다보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생명과 인간에 대한 마음이 ‘한 뼘’ 넓어지기를.
- 저자 서문 중에서 가을이 깊어졌다. 버찌를 다 내어준 벚나무는 아홉 자식 다 키우고 막내아들 장가들던 날, 기쁨과 설움이 뒤섞인 얼굴로 옷고름 말아 쥐고 춤추는 어미의 심정을 안다. 이제야 살 만한데 기력이 다했다. 아린 마음은 이파리에 스미는지 벚나무는 단풍이 참 곱다. 벚꽃 보러 간 자리가 곧 단풍놀이 할 데다. 제 할 일 다 한 엽록소가 물러가고 카로틴, 안토시안 같은 색소가 활개를 치는 것이 교과서에 나오는 단풍의 원리지만, 샛노란 잎에는 봄날의 설렘을, 새빨간 잎에는 여름의 열기를, 여전히 푸른 잎에는 ‘나 아직 젊다’는 만추의 저항을 담으려 한 것이 단풍의 진정한 연유일지 모른다. - 33쪽 '아름다움을 주고 멸시를 받다' : 화동 북촌로5기 벚나무 중에서 가을, 담쟁이를 지금(地錦, 땅을 덮는 비단)이라 부르는 연유가 경동교회 담벼락에 매달려 있다. 태양을 연모해 그 빛을 닮아간 황금빛 이파리는 만추의 양광을 되비쳐 찬란하다. 가을이 지상과 이별할 무렵, 담쟁이도 잎몸을 떨구기 시작한다. 대개의 나뭇잎이 잎사귀째 지는 것과 달리 담쟁이 이파리는 잎몸 먼저, 잎자루가 그 다음에 진다. 담벼락에 기대어 처절하게 올라간 생과의 이별이니 그 마음이 단번에 끊어질까. - 87쪽 '붉은 집의 푸른 외투' : 원서동 율곡로 담쟁이 중에서 생김처럼 향기 또한 저만의 것이다. 타고난 모든 것은 신(神)의 선사(膳賜)다. ‘씁쓸해서 못 먹겠다, 냄새 나서 못 먹겠다, 그러니 가짜!’라고 하거나 말거나 가죽나무는 하늘 향해 쑥쑥 자란다. 신들보고 어린 순 똑 따먹으라고. - 148쪽 '나 하늘로 돌아갈래?' 낙산공원 가죽나무 중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꽃은 중매쟁이에게 잘 보인다. 정작 잘 보이고 싶은 건 다른 나무에 달린 암술이나 수술, 암꽃이나 수꽃일 텐데 곱게 차려 입고 꿀까지 바치는 중매쟁이다. 바람과 물이 중매한다고 덜 서러울까. 만지지도 못한 임과 자식만 낳는 건 나무의 비애일까, 축복일까. “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갈 텐데, 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 텐데”. ‘잡초’의 노랫말은 산천초목의 애창곡이 될 만하다. 하나 그래서 한자리에 붙박인 줄 알았던 나무는 큰 자유를 얻는다. 씨앗이 못 갈 곳이 그 어디인가. 누가 나무를 감히 정적(靜的)이라 평하는가. 나무는 바람 따라 강물 따라 벌나비 따라 무한히 이동한다. - 265쪽 '봄은 성대하게, 가을은 찬란하게' : 경복궁 꽃개오동·화살나무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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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더듬다
이 책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무 이야기다. 제호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서울’은 ‘나무’와 함께 책의 큰 축이다. 서울의 흔한 길과 그 길이 지나는 동네, 서울을 숨 쉬게 하는 크고 작은 공원,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에 역사성과 균형감을 선사하는 조선의 궁궐까지 서울의 근간을 이루는 공간이 주 무대다. 어찌하여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살게 되었는지 연유를 되짚으며 자연스레 나무가 살아가는 길과 공원, 궁궐의 내력을 들여다본다. ‘서울의 개나리 개화 시기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라는 물음은 종로구 송월동 1번지 서울기상관측소와 ‘계절 관측 표준목’ 개나리의 존재, 그 개나리에 꽃이 세 송이 이상 활짝 펴야 한다는 개나리 개화 조건으로 이어진다. 송월동 1번지는 현재 뉴 타운 개발 구역에 둘러싸여 도심의 섬이 되었고, 개나리는 졸지에 뉴 타운을 관측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나무를 바라보던 오랜 시선을 그 나무가 선 자리로 옮겨 서울의 지평과 서울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서울의 나무를 보듬다 거대하나 부박한 도시, 서울에서 나무는 생명이기보다는 물체에 가깝다. 간판 가린다, 그늘 드리운다, 낙엽 많이 진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가지치기를 당하고 댕강 베어진다. 툭하면 손발이 잘리고 여차하면 참수 당한다. 면적 대비 생산성을 들이대며 치솟는 땅값에 나무 선 자리조차 탐내는 이들도 숱하다. 당장 돈벌이를 해오지 않는 나무는 고장난 전봇대 비슷한 취급을 받곤 한다. 특히 길가에 선 나무의 운명은 더 가혹하다. 매연에 온 줄기가 새카매지고, 종일 소음에 시달리며, 밤이 내려도 환한 가로등과 간판 불빛에 잠들지 못한다. 겨울이면 꼬마전구에 칭칭 감긴 채 “따뜻하지?” 기똥찬 소리를 듣는다. 사람은 나무가 주는 무한한 은혜를 받으면서도 떨어진 꽃과 잎과 열매를 쓸어 모아 일반쓰레기로 분류할 뿐이다. 누구든 길가에 사는 나무, 공원과 궁궐에 사는 나무를 찬찬히 오래 살피면 그 아름답고 위대한 생명력에 탄복한다. 나무는 아무리 가혹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제 선 자리를 탓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치욕 속에도 고고한 자존으로 수평과 수직으로 커나간다. 지난해 봄부터 마련한 겨울눈으로 어김없이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잎을 키워 그늘을 넓힌다. 실한 열매를 맺어 인류의 뱃속과 종족의 내일을 보전한다. 이리 위대한 나무는 머나먼 데 있지 않다. 고개만 돌리면 손닿는 자리, 바로 당신 곁에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 사는 나를 가다듬다 서울에 사는 나무가 처한 각박한 현실은 곧 서울에 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번다한 도심에서 생존하는 일은 나무나 사람이나 고되고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은 입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하고 다리가 있어 달아나기라도 하건만, 나무는 그 모두를 고요히 받아들여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담대하고 현명한 나무는 시간과 자연을 따르며 순리를 받아들인다. 억지스러운 인간은 허다해도 억지스러운 나무가 없는 이유다. 사람은 가진 것 없다고, 인물이 못하다며 다른 사람 얕잡아 보듯이 못 먹는다고, 뿌리를 넓게 퍼뜨린다고, 냄새가 지독하다고 ‘나쁜 나무’라 부르며 멸시하지만, 나무는 제게 든 모든 생명을 순순히 보듬어준다. 나무의 생에 비추어 사람의 생을 바라보라. 햇빛과 물과 공기만으로 푸르고 높이 자라는 나무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하며 헛된 것을 내놓는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