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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희미한 존재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고립되고 지친 이 세대에 관하여
김고은
동녘 2026.02.10.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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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너의 혼맹을 만나며
존재클럽을 만나다│‘학이시습지’라는 방법에 관하여│마음을 저당잡히다

1장 점

* 그냥 세상에 없는 존재이고 싶어
* 혼맹
이미 죽은 사람들
나를 봐줘│존재하기의 공포│세계에 대한 믿음 부재│자기 혐오
삶에 브레이크를 걸다
브레이크│증발
개인이라는 허상
진짜 '나'라는 환상│시장과 경제적 주체│‘정상’ 생애주기│경쟁의 굴레
죽기 대신 버티기

2장 선

* 초라하고 장엄한 움직임
* 애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다시 태어나기
끝끝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사람이 싫다│상상과 집착│무기력│불안
영원히 제자리일 것 같지만
한국이 싫다│내가 설 땅은 어디인가│절대 떠날 수 없는 것으로부터
* 한국이 싫은 이유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패│은율│서로의 무게추가 되다│다시 태어났다는 신호
*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3장 면

* 과도기
* 재혼맹의 두려움
불화
성장하지 않는 사회│너무 작은 핵가족?? 거대해 보이는 혐오
연결
땅이 되어주기│도와주기│도망가기│싸우기

4장 입체

* 베이글과 눈동자
* 전환

나가며: 나의 혼맹에 관하여

저자 소개 1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진학했지만, 대학교의 공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중퇴했다. 그후 공부하는 인터뷰어(@goeunk1m).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11년째 공부 중이다. 얼떨결에 코 꿰여 시작한 동양 고전 공부가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다. 공동체에서 동양 고전을 공부하며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배운다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거기에 지금 여기의 삶과 사회를 바꾸어낼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을 통해 그러했듯,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있다.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진학했지만, 대학교의 공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중퇴했다. 그후 공부하는 인터뷰어(@goeunk1m).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11년째 공부 중이다. 얼떨결에 코 꿰여 시작한 동양 고전 공부가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다. 공동체에서 동양 고전을 공부하며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배운다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거기에 지금 여기의 삶과 사회를 바꾸어낼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을 통해 그러했듯,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있다. 인터뷰집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썼고, 『다른 이십대의 탄생』, 『낭송 사자소학』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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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94쪽 | 456g | 130*210*20mm
ISBN13
9788972972020

책 속으로

은둔고립청년 문제가 일종의 시대적인, 세대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고립 문제를 시대나 세대와 결부시켜 이론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실용적인 동기로 움직였다. 무력감, 절망, 불안, 고립, 자괴감 내지 혐오감을 통과하지 않고는 나와 나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우리 세대가 경험한 일종의 공통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은둔고립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에 내재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 p.29~31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친구 중에 자살한 이가 한 명만 있는 경우도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주위에 친구 사별자가 된 친구를 한 명만 알고 있어도 이 또한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능숙하게 친구 사별자를 챙기고 그들의 마음을 살필 줄 알게 된 이들이 늘고 있다. 마치 장년이 부모를 떠나보내듯 청년은 친구를 떠나보낸다. 전자에게 죽음은 자연의 섭리고 후자에게 죽음은 시대의 섭리다. 시대의 섭리란 것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 p.47

진짜 곤란함은 혼을 잃어버린 사람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데에서, 귀를 맞대야 한다는 데에서,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데에서 온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군가를 마주할 능력이 사라진 사람과 어떻게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 p.65~66

이미 가속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것, 굉장한 파열음을 내면서 온몸이 튕겨져나가는 것, 그래서 모든 걸 다시 돌아보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브레이크를 거는 힘은, 혹은 브레이크가 걸린 삶을 살아가는 힘은 분명 능력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 p.101

사람들이 행복해져야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 p.123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으로 복귀시킨다는 것은 문제 속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닌가? 은둔고립 청년에게 취업 교육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취업 교육을 받아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같은 문제를 마주한 뒤 다시 은둔고립청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 p.130

시공간이 사라진 존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려고 한다. 나도 남도 이 세계도 인식할 수 없는 존재가, 그럼에도 살아 있으려고 한다. 생존의 공포 속에서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된 존재가 그것을 버텨내려고 한다. 공동체가 없는 상태로 ‘개인’이 되라고 명령받은 이가 명령을 불이행하려고 한다. 경쟁에 입은 피해를 호소하면서도 그것을 재생산하는 굴레에 빠진 사람이 물리적 죽음으로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정상’ 생애주기에서, 관계망에서 자리를 박탈당한 이가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은둔고립청년이 삶을 버텨낸다는 말의 의미다.
--- p.157

은둔고립청년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살아가는 일, 즉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에는 역동과 앎이 있다. 실패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실패가 땅이 될 수 있다면 어둠과 함께 사는 일은 가능하다. 설령 시도했던 모든 것이 좌절되고 도돌이표를 찍는 듯 보일지라도 말이다. 만약 어떤 전환이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사기이거나 또다른 극단이다. 사기는 거짓이고 또다른 극단은 착각이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보이는 실패는, 돌아온 그 자리에서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낸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보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같은 자리임에도 전혀 다른 역동이 일어나게 된다.
--- p.251

지금은 세계가 붕괴되는 중도 아니고 종말을 맞이하는 중도 아니다. ‘사실’로 여겨져왔던 것이 사실은 ‘한 시대의 믿음’이었음이 밝혀지는 중이다. ‘자신감’으로 여겨져왔던 것이 사실은 ‘칼부림’이기도 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중이다. 이제 누가 책임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경제 성장을 외치며 계속해서 무덤을 쌓아올리는 이들, 디스토피아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책임을 지는 쪽인가 아니면 책임을 외면하는 쪽인가?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죽음의 감각을 깨달은 이들, 때로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죽음의 굴레를 끊으려는 이들은 책임을 외면하는 쪽인가 아니면 책임을 지는 쪽인가?

--- p.305

출판사 리뷰

‘그들-청년’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청년’을 이해하게 만드는 청년 당사자의 세대론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부하여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학제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대학을 자퇴하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배움을 이어오며 저자는 공부란 일상에서 세상을 만나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 안으로 가져와 곱씹으며 익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대상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분석하는 기존 학계의 방법이 아닌, 관계와 맥락에 녹아들고 그것을 자신의 삶 위로 가져와 만나는 방법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학자 샹뱌오(項飇)가 언급했던 ‘향신(鄕紳)’의 모습을 가져온다. 향신은 과거 중국의 지방 관리로, 공부와 정치 참여가 별개의 일이 아니었던 시기에 학자이자 지역 살림꾼으로서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하고 관계 맺으며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저자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대신 존재클럽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관계를 가꾸면서 은둔고립청년의 경험을 공부했다. 이 책에는 은둔고립청년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대화가 담긴 인터뷰와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담은 글이 뒤섞여 있다. 학제적 연구방법을 벗어나 다양한 도구와 언어, 접근 방식으로 구성한 저자의 글에는 공동체의 내부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생함과 내밀함, 진실성이 담겨 있다.

자신 및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더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없어진
청년 세대의 고립─혼맹을 진단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을 마주할 수 없다.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존재클럽의 은둔고립청년들은 각자 자신의 목소리와 언어로 자신의 삶의 궤적과 고립을 되짚는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혼맹(Soul blindness)’ 개념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진단한다. 혼이란 한 존재가 그의 신체나 언어를 넘어서 관계 위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혼을, 혼을 인식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관계 위에서 만나며 서로를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만약 혼을 잃고 혼을 마주할 능력을 잃는다면 그는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실존할 수 없고, 다른 이들이 그의 삶 위에 실존할 수 없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은둔고립청년들은 이 세계의 관계망에서 떨어져나와 고립된 이들이다. ‘혼’을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에 자신도 타인도 인지할 수 없게 되었고, 타인도 그를 인식할 수 없게 되었으며, 존재 자체가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없고,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며, 그렇기에 타인을 마주할 수 없고,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감각한다. 이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존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은둔고립청년은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일종의 죽은 상태 혹은 죽음을 경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아직 취약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 ‘점’에서부터?혼맹 혹은 죽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는 경쟁하며 타인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며 서로 혼을 주고받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경쟁 때문에 세상 속에서 붕 뜬 존재들에게 ‘진짜 자신’을 찾으면, ‘완벽한 파트너’를 찾으면, 정상성 속에 편입되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찾으면 된다고 끝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부추김은 더더욱 청년들을 혼맹과 고립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급속한 성장기를 거쳤던 한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성장과 성공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 ‘정상’ 궤도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후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다른 삶’의 양식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도구로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말하며,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의 시공간을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은둔고립청년은 ‘실패자’나 ‘낙오자’가 아니라
동의할 수 없는 삶에 브레이크를 건 역동적인 존재다


저자는 은둔고립청년을 ‘실패자’나 ‘이탈자’가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또는 경쟁 사회에 의해 내쫓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라본다. 경쟁에서 끝없이 이기고, 경제적 주체로서 노동과 생산을 해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정상’ 생애주기에 편입되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회에서,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몸으로 절실히 깨닫고 “자신의 삶에 브레이크를 건”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물리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사회의 시각으로 포착되거나 편입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도망치고 싸우고 있는 역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은둔고립청년은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존재이며, 이들에게는 이 시대에 어떠한 위험이 닥쳤음을 감지해낸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다른 존재’들에게는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경험한 폭력과 그 폭력을 재생산해야만 하는 굴레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은둔고립청년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살아가는 일, 즉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에는 역동과 앎이 있다. 실패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실패가 땅이 될 수 있다면 어둠과 함께 사는 일은 가능하다. 설령 시도했던 모든 것이 좌절되고 도돌이표를 찍는 듯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탈락’하고 ‘이탈’하고 ‘도태’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이들의 삶의 궤적을 짚으며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기를 제안한다. 또한 존재클럽 안에서 은둔고립청년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 맺고 갈등을 해결해갔던 과정을 보여주며, 실패하거나 ‘정상’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비난받거나 낙오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가능한 공동체, 즉 ‘뒷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은둔고립청년은 내가 발 디딜 구체적인 땅이 이 세계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다. 이미 이 구조 속에서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구체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그곳은 기존의 사회로부터 살짝 비껴난 곳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환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환대할 수밖에 없다.”

청년 당사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이전과는 다른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 당사자의 목소리와 함께 고립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진단하고, 우리가 서로를 인간답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양식, 관계와 공동체의 단서를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강요하는 청년의 상과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성장 신화’를 넘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와 관계망의 상상력을 촉구한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는 청년 당사자인 저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뿐만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의 ‘시대 감각’인 고립을 직시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짚으며 더 나은 세계와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죽음과 함께 사는 이들은 ‘지배 계급’을 ‘전율’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단결’하지도 않을 것이고, ‘공공연하게’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는 ‘감춰’질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하는 이 삶의 형식이 “다른 길”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에 이 존재가 파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뿐이다. 또 다른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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